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컬쳐 | 인터뷰

애니메이션 세상의 길 여는 배경디자이너 

2021-06-15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주인공의 움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배경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조혜민 디자이너는 디즈니TV애니메이션에서 배경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화가로 활동하다 애니메이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유학을 선택, 애니메이션 세상의 길을 여는 배경디자이너가 된 조혜민 디자이너에게 배경디자이너의 역할과 작업 이야기를 들어본다. 

 

조혜민

조혜민 디자이너

 

 

조혜민 디즈니TV애니메이션 배경디자이너 interview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미국 디즈니TV애니메이션에서 2018년부터 배경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조혜민(햇조)입니다. 도미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타파리’ 또는 ‘오혜민’이라는 필명으로 만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참여한 작품으로는 <신족가족> 만화판(작화), <바람의 화원> 만화판(각색 및 콘티), <세실고> 1학기(콘티 및 작화)가, 제작한 작품으로는 <시티오브플라워>가 있어요.

 

디즈니TV애니메이션은 어떤 곳인가요?


제 현재 직장인 디즈니TV애니메이션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소속의 TV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로 1985년에 설립됐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작품을 제작했고 지금도 제작 중이에요. 

 

저는 어릴 때 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다람쥐구조대>를 보려고 매주 일요일 아침 아주 일찍 일어났었어요. 그래서 여기서 일하는 기분이 더욱 각별해요. 최근작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아울하우스>, <그래비티 폴즈>, <라푼젤 시리즈>, <프린세스 스타의 모험일기>가 있어요. 제가 작업하는 <빅시티그린즈>도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어서 좋아하고요. 

 

<세실고> 1학기

 

<시티오브플라워>

 

<신족가족>

 

 

한국에서 웹툰 작가로 오래 활동을 하셨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바꾸셨어요. 특히 <세실고>는 인기가 좋았는데 그래서 결정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세실고>의 인기에 대해서는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요. <세실고> 1학기 후기 만화에도 썼듯이 원래 유학을 결심한 건 <세실고> 연재 준비 전이었어요. 유학 준비를 시작하려던 2010년 말에 대원씨아이 측에서 <세실고> 작화 제안이 들어왔고, 양혜석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니 너무 좋아서 작업을 하고 가기로 했어요. 당시에는 1년 반에서 2년가량의 연재분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을 미루기로 했고요.

 

<세실고>가 잘 되고 있는 시점에서 애니메이션 업계로 이동하는 걸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림을 배운다는 데 대한 열망과 너무 늦기 전에 가야 한다는 초조함에 등을 떠밀린 것 같아요. ‘잘 그리게 되고 영어도 좀 하게 되면 뭔가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딱 맞지 않나 싶어요(웃음). 애니메이션의 배경디자인을 진로로 정한 건 학교를 1년쯤 다닌 후였고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만화는 멈춰있고 애니메이션은 움직인다? 그리고 거기서 독자/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이 갈라진다고 봐요. 만화는 독자의 상상을 요구하는 매체입니다. 우선 칸과 칸 사이의 빈자리 사이를 연결하는 것부터 독자가 상상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요. 만화에서 주어지는 정보는 칸, 그 안의 그림과 말풍선, 때로는 독백, 그리고 의성어와 의태어, 이 정도뿐이죠. 만화를 읽는 독자들은 이 정보의 여백을 채우면서 스토리를 즐기죠.

 

예를 들어 주인공이 강남역에서 폰을 들여다보며 신호등을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는 얼굴 클로즈업, 이 두 컷이 있다 치면,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강남역, 혹은 간 경험이 있는 비슷한 길거리의 소음을 떠올릴 수 있고,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에서 주인공이 폰을 거의 놓칠 뻔하면서 깜짝 놀라 돌아보는 움직임을 느낄 수도 있지요. 만화를 읽는 독자는 이러한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몰입하게 돼요.

 

애니메이션은 그에 비하면 관객에게 주는 정보의 양이 엄청납니다. 대사, 목소리, 연기톤, 캐릭터디자인, 캐릭터 애니메이팅, 배경디자인, 소품디자인, 라이팅, 음향효과, 배경음악, 타이밍 등등이 우연히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구성이 되죠. 디자인, 소리, 움직임, 대사의 타이밍, 내레이션 등 스토리가 관객에게 닿기 위해서 이 길이 최선이라는 선택을 제작자는 계속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의 관객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본다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이렇게 제작자가 송신하는 이러한 막대한 정보를 수신하고 끊임없이 의도를 분석하면서 스토리에 몰입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로 인해 어려우셨던 점은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저런 차이가 있는 만큼 제작 현장도 달라서 초기에 헷갈린 부분이 있었어요. 만화는 소수의 창작자가 제작 전반을 총괄하고 애니메이션은 반대로 아주 세세하게 분업화되어 있어요. 만화를 그릴 때는 우선 캐릭터를 그려놓고 배경을 추가하는 순서로 작업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 컷이 표현해야 하는 스토리를 캐릭터로 대부분 해버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거든요. 말하자면 주인공이 정원에 앉아서 봄바람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장면이라면 여기서 저는 고요히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의 얼굴과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에 집중해서 작화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의 외양은 캐릭터디자이너, 캐릭터의 연기 지정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캐릭터의 움직임은 애니메이터의 몫이고 배경페인팅은 페인터분들이 하시니까, 배경디자인 담당인 저는 그걸 모두 제외하고서 오로지 선화와 명암만으로 평화로운 봄바람이 불어오는 정원을 디자인해야 하는 거죠. 이런 업무상의 차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장점도 있어요. 만화 작업으로 인해 손이 빠른 장점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연재는 속도와 마감과의 싸움이라 우선 물리적으로 손이 빠르고, 만화에서 몇만 개의 컷을 작화하면서 화면구성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애니메이션 배경의 구도를 결정할 때도 망설임이 없는 편이에요. 만화를 하면서 투시법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배경을 디자인 작업에서 투시를 잡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도 장점이네요.

 

배경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나요? 


배경을 그린다고 하면 캐릭터 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납작한 그림을 그린다고 연상할 수도 있을 텐데, 제 현재 직함은 원어로는 ‘location designer’로, 캐릭터들을 위한 촬영 현장을 디자인한다는 느낌이 더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요.

 

배경디자이너의 주요업무는 당연하지만 캐릭터들이 있을 공간 디자인인데요,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들을 위해 새 공간에 대한 러프 디자인(프리 디자인)과 보드 완성 후 촬영에 필요한 배경 완성이라는 두 부분을 담당하게 돼요. 말하자면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들이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현장을 잡아 놓고, 촬영 계획이 다 잡힌 후 결정된 카메라앵글과 샷크기에 따라 현장을 구체화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주인공이 대형마트에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가정하고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볼게요. [주인공이 유제품 코너를 지나간다. 저지방 우유를 찾아 유심히 칸을 들여다본다.] 하고 시나리오가 나왔다면 배경디자이너들은 이 유제품 코너가 어떤 모습일지 컨셉을 잡는 일을 하게 돼요. 재미있는 선택을 많이 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우유갑들이 열 맞춰 쫙 늘어서 있는 걸 그려서 모든 선들이 가로세로로 단정하게 그어진, 고급 수입품 전문 대형마트의 아주 잘 정리된 유제품코너라는 느낌을 줄 것인가? 아니면 우유갑의 간격과 동선을 랜덤으로 흐트러뜨려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만지작거리고 정리한 지도 좀 시간이 됐다는 그런 생활감을 부여할 것인가? 또, 이 코너를 일정한 크기의 네모난 우유곽으로 꽉 채워 이곳을 정돈하는 사람의 완전무결함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500ml와 1L, 2L짜리를 섞고, 동그란 모양의 요구르트와 삼각 우유도 같이 넣어 다양한 크기와 형태가 있는 유제품 코너를 디자인할 것인가? 러프 단계지만 여기서 장소의 생김새와 분위기가 결정되고 상당 부분의 디테일도 잡히게 돼요.

 

이 러프를 통해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들은 유제품 코너가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고 보드에 들어가고요, 보드가 나왔을 때부터는 배경디자이너는 철저히 보드에 따라 작업을 합니다. 만약 보드가 ‘주인공의 어깨너머로 카메라가 가로로 팬하면서 유제품코너를 훑다가, 주인공이 대사를 할 때 맨 위 칸의 큰 우유팩들로 클로즈업’ 이렇게 나온다면 팬 길이만큼의 캔버스를 열고, 보드에서 지정된 주인공의 크기와 카메라 높이를 적용해서 유제품 코너를 구체화하는 거죠. 러프 단계에서는 없었던 디테일도 넣을 수 있고요. 세일가 스티커를 붙이거나, 실제로 있는 우유 브랜드의 패러디를 할 수도 있고, 냉장 칸 안쪽의 나사못이 하나 빠져 있는 것도 클로즈업으로 보인다면 그릴 수 있어요. 주인공이 있는 이 공간이 관객에게 구경할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해요.

 

이렇게 구체화된 디자인을 선화로 완성하고, 페인팅하기 편하도록 레이어를 정돈한 PSD 파일을 페인팅 팀에 넘기는 것까지가 제 현재 팀에서의 배경디자이너의 업무입니다. 참고로 배경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애니메이션 제작팀마다 조금씩 다른데, 저는 이전 직장(오드봇의 머펫베이비스 팀)에서는 배경디자인과 페인팅을 둘 다 맡았고, 현재 직장(디즈니TV의 <빅시티그린즈> 팀)에서는 흑백 선화 배경디자인을 전담하고 있어요.

 

조혜민 디자이너가 배경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빅시티그린즈>

 

머펫베이비스팀에서 배경디자인과 페인팅을 담당한 조혜민 디자이너

 

 

배경디자이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배경디자이너 친구들을 만나서 역시 배경디자인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이파이브 했었는데요. 배경디자인은 말하자면 세계관의 캐리커처 같은 거예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떤 느낌인지, 어떤 것이 허용되고 어떤 것은 안되는지를 비주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스토리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큰 부분을 담당해요.

 

예를 들자면 <톰 앤 제리>의 카메라가 낮고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된, 옅은 연필 라인에 경쾌한 수채톤으로 그려진 배경들은 이 세계관에서는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라고 속삭이며 말머리를 침대에 넣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게 해주죠. 그리고 이 세상의 집들의 굴뚝에서는 몽실몽실한 만화풍의 연기가 뿜어져 나올 것이고, 아무리 높은 데서 떨어져도 캐릭터가 납작해질지언정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요. 이런 느낌을 그림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즐거워요.

 

또, 배경디자인을 한다는 건 제가 그린 배경이 정확히 그대로 TV 브라운관에 나온다는 거예요. 자기 작업물을 그대로 남에게 선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제격이지요. 그리고 배경 한 장을 끝내는 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하나를 완료했다는 성취감을 금방금방 얻을 수가 있어요. 

 

웹툰을 하셨기 때문에 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할 것 같은데, 본인만의 장점이나 작업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한국에서는 그리 체감하지 못한 부분인데, 이쪽 업계로 오니 선화의 퀄리티를 자주 호평받아요. 만화 원고는 선화가 깔끔하지 않으면 인쇄가 어렵기 때문에(인쇄 만화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프로로서 9년, 아마추어 시절까지 합치면 거의 15년을 선화를 훈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정확하고 깔끔한 선을 칠 수 있게 된 것이 경쟁력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지금 일하고 있는 <빅시티그린즈>에 채용된 것도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스타일이 선화 위주이고 제가 그걸 잘 맞출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혜민 디자이너의 개인 작업 과정. 영화 프레임 스터디를 하는 조혜민 디자이너는 이 작업에서 원 장면의 조명 디자인, 캐릭터의 인상 과장되게 표현하기 등에 초점을 두었다.

 

먼저 원 캐릭터 형태와 배경을 작업한 후 캐릭터 디자인을 위해 다양한 인상을 살려본다. 

 

좀 더 디테일하게 러프를 그린 다음,

 

분위기에 맞게 채도를 올리는 등, 자신에게 와닿는 느낌의 변화를 캐치하는 훈련을 한다.

 

 

디즈니TV애니메이션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나요? 


처음에 트위터를 통해서 지원을 했어요. 요즘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디자이너를 찾는 리크루터나 아트디렉터가 자주 보이는데요. 필요한 포지션에 걸맞은 아티스트를 발견해서 컨택하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거꾸로 ‘아티스트 찾음, 포트폴리오와 연락처를 리플로 달아주세요/메시지 주세요’라고 포스팅해서 지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그 안에서 선발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마침 팔로우하고 있던 아트디렉터 분이 그런 구인 트윗을 하셨기에 메시지를 보냈고, 그 후 디즈니TV 채용팀에서 연락을 받아 테스트를 거쳐서 입사하게 됐어요.

 

디즈니TV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장점, 일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아티스트들이 영감을 얻도록 회사 차원에서 돕는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원 재택근무 중인 상황에서도 동물구조협회와의 영상통화를 해서 동물 라이브드로잉 세션을 갖거나, 페인팅 세트를 집에 보내주면서 영상통화 페인팅 클래스를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회사에서 계속 격려 받고 응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행운이라고 느낍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의 장점은 역시 일이 재미있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애니메이션이라는 최종 형태로 완성하기 위해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열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거든요.

 

또, 특별히 <빅시티그린즈>에서 배경 디자인을 한다는 것의 장점은 배경에 일상의 디테일을 넣는 것을 중시한다는 건데요. 앞서 언급한 ‘강남역에서 폰을 들여다보며 신호등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장면을 예로 들자면 로드숍들 앞의 가장자리가 살짝 닳은 연예인 입간판, 보도블록이 어긋나게 눌려있는 모습, 꽉 찬 쓰레기통 옆에 넘쳐서 떨어져 있는 일회용 커피컵과 슬리브, 페인팅이 닳은 횡단보도를 넣으면 아트디렉터와 팀원들이 그걸 하나하나 짚으면서 이 디테일 정말 좋다고 언급을 해주는 식이에요.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그린다, 사람이 살고 있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지금 일에서의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새 배경을 받을 때마다 어떤 디테일을 넣을지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요.

 

한국에서의 웹툰작가, 미국에서의 애니메이션 업계의 디자이너 이 두 직업을 비교해 주신다면요?


양쪽의 작업공정을 다 경험해본 입장에서 돌아보자면, 웹툰작가는 자기의 스토리를 자신이 비주얼화하기 위해 작업하고, 애니메이션업계의 디자이너들은 쇼러너(showrunner: 텔레비전 시리즈물의 기획과 제작 책임자)나 감독의 스토리가 비주얼화되는 걸 돕기 위해 작업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로 보입니다. 만화의 동력은 소수의 창작자의 에너지이고, 애니메이션의 동력은 쇼러너/감독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유학이나 해외에서의 디자이너 생활에 대해 SNS를 통해 소통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 명성 있는 대형스튜디오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려면 유학이 필수인가? 학부 유학이 좋을까 석사 유학이 좋을까? 외국인으로서 비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하는 질문들을 가장 많이 받아요. 

 

자주 언급하게 되는 점은 유학의 단점 쪽인 것 같아요. 저도 하긴 했지만 유학한다고 다 잘 되는 건 절대 아니니까요. 재능도, 실력도 있는데 타이밍이 안 좋아서 취직을 하지 못했거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귀국하는 유학생 친구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다 보니, 유학은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지출이고 가장 활발하게 창작할 시기를 몇 년 잃는 것이기도 하다는 리스크를 강조하게 돼요.

 

또, 간혹 대형 스튜디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일하는 것을 꿈으로 가지신 분들, 다른 건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지망생분들에게 인내를 가지시라는 말씀을 종종 드리는데요, 극장판은 인원을 적게 뽑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실력순으로 뽑는 것도 아니거든요. 애초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니까 실력순으로 줄을 세울 수도 없고요. 일정 이상의 포트폴리오가 마련되고 나면 그 후로는 인맥,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판, 이런 게 중요해지는 거죠. 업계에 갓 입문하자마자 극장판에서 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꽤 난이도가 있는 일이니만큼 극장판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손안에 있는 일을 훌륭히 해내서 레벨 업과 평판 상승을 도모하는 것이 더 빨리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디즈니TV애니메이션처럼 규모가 큰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준비할 것은 자신의 최고의 작품을 담은 포트폴리오, 그리고 외국인 신분일 경우 비자 혹은 비자를 승인받는 데 충분한 자격이에요. 포트폴리오와 테스트로 일정 이상의 화력을 증명하고 나면 그다음 관문은 프로패셔널함, 그러니까 프로로서 작업을 일정 퀄리티 이상으로 완수하기 위한 성실성, 시간관리, 팀원들과의 소통, 업무 이해력 등의 능력들이겠네요. 애니메이션은 대인원과의 팀워크이고, 작업이 넘어가는 순서가 명확해서 한 파트가 밀리면 스케줄이 밀려버리기 때문에 정말 중요해요.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상대적으로 회사의 규모에서 자유로운 편이에요. 프리랜스 기반으로 고용이 이루어져 애니메이션 하나가 끝나면 그 스튜디오와의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경력이 좀 되시는 애니메이션업계 분들은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크고 작은 회사들을 넘나들어 오신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큰 회사나 작은 회사나 준비해야 하는 것은 포트폴리오, 마감 엄수, 좋은 평판 정도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목표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반 년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던 게 생각나네요. 현재 직장에 입사하기 전 인터뷰를 할 때 아트디렉터 분께서 아티스트로서의 목표가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저는 '별로 구체적인 건 없다, 그냥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라고 했는데, 사실 대답하면서도 이런 맥빠지는 대답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난처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 외로 이 분이 끄덕이시면서 '나도 어쩌다 보니 애니메이션 업계로 왔고 승진을 목표로 삼지 않았지만 아트디렉터가 되었다, 흐르는 대로 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일단은 흐르는 대로, 지금 잡히는 일을 잘 하고, 더 잘 하기 위해 배우며 있어보고 싶습니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조혜민
 

facebook twitter

#디즈니 #TV #애니메이션 #배경디자이너 #만화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