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사람의 생활을 빚어내는 그릇 역할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철골, 콘크리트, 마감재 등의 다양한 건축 자재가 쓰인다. 이때 사용되는 자재들의 공정 과정 속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며, 수명을 다한 후에는 폐기물로 사실상 잠재적인 쓰레기가 된다. 집과 건물이 완성되기까지에는 생각보다 자연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만, 대부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Recycling Oriented Society’ 전시 전경

DDP 갤러리문에서 열리고 있는 ‘Recycling Oriented Society’전은 지난 2020년 DDP오픈큐레이팅의 공모에서 1순위로 선정된 전시이다. ‘집과 디자인(Design for Home)’이란 주제로 주거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디자인적으로 고찰한다. DDP오픈큐레이팅은 신진 크리에이터의 모집과 발굴을 소개하는 자리이며 이번 전시로 16번째를 맞이한다. 

신소재 연구가 소개와 연구결과를 선보이는 ‘Recycling Oriented Society’ 전

에코 디자이너 물고기, 바이오 디자이너 정김도원, 아트 디렉터 최솔이 등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크게 2개의 섹션과 세부적으로는 5개 섹션으로 나눠 구성된다. 신소재 연구가 소개와 연구결과로 새롭게 만들어낸 오브제 섹션이 마련된다. 전시대 위에는 섹션별 설명이 적힌 하얀 천이 설치되어 있지만 리플릿과 전시대 위 QR코드를 통한 오디오 도슨트도 가능하다.
작가들은 좋은 생산, 좋은 소비, 좋은 버림 등의 메시지를 담아 건축, 도자, 자연 폐기물 등을 활용한 미래의 집에 관한 연구를 소통하고자 한다. 

전시된 작품들은 자유롭게 보고 만져볼 수 있다.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가득한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자유롭게 만져 볼 수 있으며 냄새를 맡고 앉아볼 수 있다. 요즘처럼 비대면이 주를 이루는 일상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이자, 기존 원료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신소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Recycling Oriented Society’ 전시 전경

작가 최솔이는 도시의 재질이란 주제로 폐기물을 재가공해 완성한 벽돌을 선보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건축재료와 이에 따른 도시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지속 가능한 소재에 대한 벽돌에 관련된 연구의 결과물들을 소개한다. 건축 자재로 쓰고 버려진 폐유리, 폐목재, 폐펄프, 폐도자 시멘트로 완성한 4가지 종류의 새로운 건축재료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그중 유리를 섞어 만든 벽돌과 타일은 인테리어 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작가 물고기의 작품이미지

정형화되지 않은 모양의 그릇들은 작가 물고기의 작품이다.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는 흙에서 쉽게 썩지 못한다. 이는 도자기 표면에 유리질 성분을 입히고 1,250℃가량의 고온에서 단단하게 결합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대부분 친환경적 사물로 인지하는 도자기와 기존 도자 시장에서 발생하는 도자 폐기물의 문제점에 대해 집중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버려진 도자기를 분쇄해 점토로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친 후 손으로 직접 그릇을 빚어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쓰임을 잃은 도자기들로 새롭게 완성된 컵과 접시는 기존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어 보인다.

다양한 자연 폐기물을 통해 바이오머티리얼을 선보인 작가 정김도원의 작품 이미지

정김도원 작가는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플라스틱의 남용과 무분별한 폐기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전시를 통해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머티리얼 연구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보리 껍질, 짚, 전분, 밀, 닥, 콩, 버섯 균류, 흙, 한천, 소금, 셀룰로스, 양파 껍질, 오렌지 껍질, 달걀 껍데기 등의 45가지의 자연 폐기물을 다양한 입자로 분쇄하고 결합한 점토와 슬립을 전시한다. 작가의 손을 거쳐 견고하게 완성된 신소재들은 땅에서 자연 분해되거나 다시 부서져 재료가 되는 순환을 이룬다.

거실, 주방, 서재 등의 공간을 모티브로 마련된 제품들

마지막 섹션인 ‘R-Home’에서는 가구, 조형물, 항아리, 그릇, 인센스 홀더 등 폐기물 신소재로 완성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실, 주방, 서재를 모티브로 마련된 공간마다 바닥에는 화산사, 자갈 등이 깔려 있어 자연적인 소재를 밟아가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이 가능하다. 

디자이너들은 건축재료들이 건물의 수명이 다한 후 재사용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폐기물로 만든 신소재에 관해 연구했다.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역으로 버려지는 것 중 우리 생활과 가장 가까운 주거공간에서 버려지는 것들에 주목해 폐기물을 활용한 신소재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지속 가능한 신소재로 디자인된 집을 통해 관객들에게 환경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늦은시간까지 운영되는 DDP 갤러리문 외부 전경

‘Recycling Oriented Society’전은 ‘밤에 여는 미술관’ 콘셉트로 저녁 9시까지 운영되며,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전시장 내에서 풀벌레 소리가 틀어진다. DDP홈페이지(ddp.or.kr)를 통한 사전예약제로 진행되며, 전시는 4월 16일까지 무료로 펼쳐진다. 

글_ 한혜정 객원기자(art06222@naver.com)
사진제공_서울디자인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