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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지구 생명들의 건강한 공존 위한 바람, 로테이트

2021-04-07

반짝이는 표면, 부드러운 형태, 강렬한 색상. 오묘한 색과 형태의 사물들이 마치 신비로운 바닷속 생물들 같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 저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닮았다. 

 

이 작품들을 선보인 건 스튜디오 로테이트(ROTATE)의 나영 작가다. 나영 작가는 1인 작업실 로테이트를 운영하며 자투리 소재 등 버려지는 폐자원을 활용한 아트워크를 선보인다. 

 

로테이트 로고 이미지

 

 

‘천천한 것, 작은 것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버려지는 것을 다시 보고 업사이클링하는 나영 작가는 로테이트에 ‘순환과 공존’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가 바라는 건 자연과 모든 생명들 간의 조화로운 삶이다. 그러한 마음이 바탕이 된 아트피스들은 자유롭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세 개의 달>, <고래의 숨>,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어느>와 같은 시적인 제목도 인상적이다. 이 제목들은 버려지는 것들이 만들어낸 조형적 아름다움과 함께 깊고 넓은 이야기들로 퍼져나간다. 

 

쓰레기에서 탄생한 작품을 보고 우리는 감탄하지만, 작가는 쓰레기를 발견하는 순간 이미 그것이 지닌 새로움과 변화의 가능성을 직감한다. 그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로테이트의 홈페이지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까지 열린 로테이트 나영 작가의 전시 '죽음 없는 바다_ I'm in the eternal life' (사진출처: www.instagram.com/studio_rotate)

 

 

빛나는 바닷속 풍경을 떠오르게 한 작품들은 지난달까지 영등포시장역 크리에이티브 샘에서 열렸던 나영 작가의 전시 출품작들로, 실제 바다에서 수집된 어업도구와 같은 해양 쓰레기부터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옷걸이, 병뚜껑 같은 생활 쓰레기들로 만들어졌다. 

 

쓰레기를 특별하게 대하는 나영 작가가 보여준 쓰레기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은 우리의 삶과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ROTATE는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요?


작업실에 이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든 것을 팔기도 하는 작은 가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름을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 '지구가 자전한다'라고 할 때의 ‘자전(Rotation)’이라는 단어를 가져와 작업실 이름으로 짓게 되었어요. 지구가 스스로 회전하며 살아있다는 데서 느껴지는 자립의 힘, 그리고 그 힘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을 연결하고 순환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에요.

 

<당신과 유토피아>, 높이 37cm, 자투리 목재 업사이클링 모빌, 2018

 

<당신과 유토피아>, 높이 약 70cm, 자투리 목재 업사이클링 모빌, 2018 

 

 

로테이트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작업은 크게 ‘순환과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어요. 이를 기반으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오가는 다양한 방향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취급'을 받는 존재, 현대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쓰레기’라는 재료를 가지고 회화, 설치, 영상, 상품 등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맞는 매체로 풀어내고 있어요.

 

지난달까지 열린 전시는 어떤 전시였나요? 


이번 전시는 임종은 큐레이터님이 기획한 ‘다음 역은 사이 숲’이라는 전시였어요. 도시라는 공간, 그리고 도시를 대표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숲'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자기만의 숲으로 릴레이 개인전을 여는 형식이었죠. 저는 땅 위의 숲처럼 바닷속에 있는 미지의 물속 숲, 제주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도시의 땅속 지하철 안으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는지 소개해 주세요.


제 개인전의 제목은 ‘죽음 없는 바다_ I'm in the eternal life’였어요. 인간이 살지 않는 바다는 지금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특히 우리가 청정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섬 제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쓰레기로 가득 차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요.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볼 수 있었던 연산호 군락은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고, 국제보호종인 제주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한 많은 바다 동물들이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은 이제 뉴스를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식이 되었어요. 

 

쓰레기가 바닷속에서 자리하는 영역을 넓혀갈수록 해양 동식물이 살아가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쓰레기, 인간이 그들의 살 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이죠.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 활동으로 오염된 바다에 진짜 생명은 사라져버리고,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가 그 자리를 차지한 내용을 이야기했어요. 

 

 

작품 제작에 사용된 재료들은 모두 버려지는 쓰레기들이다. (사진출처: www.instagram.com/studio_rotate)

 

 

작품 제작엔 어떤 재료들을 사용하셨나요?


이번 전시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활 쓰레기', 그리고 해변에서 수거한 '해양 쓰레기'를 가지고 작업했어요. 제가 길을 돌아다니면서 폐가구, 생활용품 등 길에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사용하기도 했고, 여러 곳에서 쓰레기를 모아 보내주시기도 했는데요, 알맹상점의 도움으로 많은 분들이 라면봉지, 과자봉지 등의 은박비닐을 모아 보내주셨고,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학교에서 폐기처분하기로 한 응원도구를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제 SNS를 보시고 개인적으로 하나하나 모아서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어요. 

 

또, 제가 활동하고 있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에서 해양정화활동을 통해 수거한 어구(어업 도구) 등의 해양 쓰레기를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쓰레기를 쓰레기처럼 보이지 않게 아름답게 작업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전체적인 모습은 잘 꾸며놓은 바닷속 풍경이지만 들여다보면 그것이 우리가 소비하고 버린 쓰레기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죽은 바다 동물을 부검했더니 위에 비닐봉지,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는 기사는 이제 너무 흔해졌어요. 바다거북의 주 먹이는 해파리인데, 바닷속을 떠다니는 비닐봉지가 바다거북의 눈에는 마치 해파리처럼 보인다고 해요. ‘다른 바다 동물들도 이처럼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하고 먹게 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쓰레기라는 것을 정말 잘 구별하고 있나? 그것이 얼마나 유해한지, 우리에게 그리고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나?’하는 물음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제품들도 선보이시는데 어떤 종류들이 있나요? 


지금까지는 크게 모빌, 가방, 키링 등을 판매했어요. 모두 자투리 재료나 폐자원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들이죠. 제품 카테고리는 제한을 두지 않고 그때그때 작업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진행하고자 해요. 대신 재료에 대한 제한은 어느 정도 두려 하는데요, 재료에 따라 가공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간소하게 소유하려고 생각해 만든 제한선이에요. 

 

지금은 여러 가지 재료 중 헌 옷, 자투리 원단 등의 원단 쓰레기, 폐목재, 자투리 목재 등의 목재 쓰레기를 주재료로 삼고 있어요. 목재의 경우 제겐 나름대로 익숙한 재료이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단단한 물성이 필요한 곳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자연재료라고 생각해서 이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단의 경우, 상품이 되기도 전에 버려지는 것이 워낙 많기도 하고, 상품이 되었다가도 금세 쓰레기로 버려지기도 하죠. 그래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쓰레기 중 하나이기도 해요. 또 몸을 보호하는데 사용하는 필수적인 한 겹이기도 하고,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소재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어요. 나중에는 ‘헌 옷을 자르고 이어 옷을 지어 입는 할머니가 되어있겠지’ 생각해요. 이외에는 어쩌다 기부받는 쓰레기나 생활하면서 주변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종종 재료로 삼아 작업하기도 해요.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프로젝트 '짜증난 지구'

 

 

로테이트의 디자인 제품 중 폐플라스틱을 재가공한 ‘짜증 난 지구’는 업사이클링이라는 기획의도가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진행과정이 궁금해요. 


‘짜증 난 지구 키링’ 제작은 재료 수급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어요. 당시 작업실 근처에 폐지 수거하시는 할머님이 계셨는데, 평소 담소를 나누는 이웃 주민이셨어요. 이 프로젝트를 논의 드렸는데 흔쾌히 함께해 주시기로 하셔서 저와 할머님이 함께 거리에 버려진 플라스틱 병뚜껑 수거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프래그랩의 도움으로 금형 제작을 하고, 플라스틱 가공 과정 워크숍을 통해 기술을 배우고, 프래그랩의 작업실에서 제가 직접 분쇄와 사출 작업을 진행해 제작했어요.  

 

작가가 소설 <자라>의 한 문장 "인간하고 사람하고 뭐가 달라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그래픽 이미지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독특한 이미지와 글을 보게 됐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인간하고 사람하고 뭐가 달라요?”는 김숨 작가의 <자라>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문장이에요. 소설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눈이 멈췄어요. 같은 대상을 놓고 어떨 때는 인간, 어떨 때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하며 메시지를 가져와 콜라주 그래픽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사람/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라볼 때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그리고 그런 관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는 것 같아요.

 

페트로프 펜던트 조명, 페트병, 2019

 

<흐름>, 가변설치, 종이, 2018

 

<높고 낮은 소리들>, 60.5×50cm(15P), 캔버스에 폐종이, 2019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환경을 위해 비거니즘을 추구하시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평소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고 아낀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향유하기만 할 뿐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무턱대고 '오늘부터 채식을 실천하겠다!'라고 저 자신에게 선언했고, 그렇게 지속하고 있어요. 비건을 실천하기엔 비건 식당도 많지 않고, 음식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어려운 일이긴 해요. 비건에 대한 인식은 날로 커지고 있는데,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아쉬운 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건을 실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환경을 위해 실천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지만, 그중 딱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저는 '채식'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비거니즘'은 단순히 비인간 동물을 아끼고 보호하자는 것이 아닌,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먹는 대부분의 동물은 공장식 축산, 공장식 수산업이라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길러지고, 죽임을 당하고, 소비됩니다. 이 과정에서 생명 착취는 물론이고, 축산업 부지 및 사료(콩, 옥수수 등) 확보를 위한 산림 훼손, 토양오염, 축산업 시 발생하는 탄소, 어업 시 혼획으로 인한 생태계 절멸 등 알면 알수록 어느 것도 긍정적인 면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단지 하나, 인간의 욕심을 채울 뿐이지요. 

 

<테이프캐년>, 디지털 꼴라주, 2020

 

'로드킬 채집 프로젝트' <떡볶이 로드킬>, 2014

 

 

말씀하신 내용도 작업으로 선보이시나요?


아직 전시 일정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공장식 축산, 공장식 수산업에 관한 전시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또, 도로 위에서 자동차 바퀴에 눌려 납작해져 있는 쓰레기 사진을 찍는 가칭 '로드킬 채집 프로젝트'도 SNS로 업로드하고 있는데, 추후 이를 기반으로 한 전시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 작업실은 앞으로도 작은 규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들여다보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인데, 지구 존재들에 최대한 피해를 덜 끼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처럼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자립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이번 해에는 작게 농사를 배워보려고 해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로테이트(studio-rot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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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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