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5
동남아시아 대표 현대미술관인 탁수갤러리(Taksu Gallery)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작가의 작품을 모아 소개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미술관 운영이 금지되고 있지만, 소장품을 공개해 숨어있는 작가를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취지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비대면으로 작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말레이시아 작가 24인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가의 눈으로 본 말레이시아를 만날 수 있다.
탁수갤러리 쿠알라룸푸르에서 볼 수 있는 말레이시아 작가 가운데 아지지 사드, 마크 탄, 파이잘 수히프, 아지지 라티프, 호 메이 케이 등 5인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도심에는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옆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낡은 건물도 빼곡하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와 브루나이에 이어 세 번째로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가 됐다.
아지지 사드(Azizi Saad)는 매일 바쁘게 흘러가는 쿠알라룸푸르 도심과 그 안의 빈부격차를 그리는 작업을 한다. 1992년생의 젊은 작가인 아지지는 2012년 말레이시아 클란탄 대학(UMK)에서 주최한 틍쿠주 예술대회에서 1위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잉크를 묻힌 롤러와 팔레트 나이프로 표면을 긁어 거친 질감으로 그린 그의 작품을 보면 화려한 쿠알라룸푸르 도심 넘어 어두운 이면을 볼 수 있다.
<Unexpected Future(예상치 못한 미래)>, Oil on canvas, 122 x 183 cm
마크 탄(Mark Tan)은 영국 웨스트 오브 잉글랜드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오랜 기간 영국에 있다 말레이시아로 돌아온 작가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쿠알라룸푸르를 그렸다. 그의 작품은 단색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거나 검게 표현되어 있어서 흐릿한 기억을 회상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는 “오랜 시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내게는 익숙한 쿠알라룸푸르의 풍경이 그리운 이유가 궁금해졌다”고 말한다. 작가는 말레이시아에 돌아와서 느낀 단절감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표현했다.
<Composition I(작품 I)>, Mixed media, 27 x 38 cm
1984년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태어난 파이잘 수히프(Faizal Suhif)는 말레이시아의 자연을 그렸다. 파이잘은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그 교차의 감정에 이끌려 목탄화를 공부했다. 파이잘은 어둡고 때로는 외로워 보이는 근원적 자연의 본 모습을 우연하게 마주쳤을 때 느낀 찰나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작품을 보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여행을 떠올리고, 그러한 흔적 속에서 삶을 반추한다.
또한 비옥한 땅이 황무지가 되고 작은 씨앗이 열매를 맺는 생의 순환은 믿음과 성실함 그리고 삶 속의 지식을 바탕으로 열매를 맺는 인간의 삶과 같다고 말한다. 작가가 그린 말레이시아의 자연은 위안 또는 치유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투영하고 반추하게 하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 작가는 2004년부터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에 초청돼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Black Soil(검은 토양)>, Monotype print, oil & acrylic on canvas, 137 x 137 cm
아지지 라티프(Azizi Latif)는 퀼링 테크닉으로 유명 인사 초상화를 그려 유명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일일이 말고 접어 완성한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굴곡진 인생과 연륜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반 고흐 등 유명 작가의 초상화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말레이시아 독립의 아버지이자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과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전통 염색 기법인 바틱을 회화 기법에 적용한 선구적인 예술가 추아 티안 텡(Chuah Thean Teng) 초상화도 찾을 수 있다.
<Negaraku Merdeka(말레이시아 독립)>, Acrylic, spray paint and collage on canvas, 120 x 100 cm
1993년생의 젊은 작가 호 메이 케이(Ho Mei Kei)는 그동안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과정이 유년기 성장에 중요한 요소가 되듯 성인에게도 규범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아미술교사로 일한 그녀는 아이의 시선으로 유년의 기억을 그림으로 형상화한다. 2020년 탁수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단독 전시회 ‘뉴노멀(Norma Baharu)’에서는 손 세정제, 마스크 등 뉴노멀 시대의 필수품을 작가의 눈으로 그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What Do We Need Now 2a(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2a)>, Oil on canvas, 23.5 x 33cm
이처럼 탁수갤러리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현대미술작가의 눈으로 그린 말레이시아를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 도심의 모습부터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말레이시아의 뉴노멀 시대까지 말레이시아의 면면을 만나 볼 수 있다. 탁수갤러리 쿠알라룸푸르가 소장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은 홈페이지(taksu.com/artists)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_ 홍성아 말레이시아 통신원(tjddk4277@gmail.com)
사진제공_ 탁수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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