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1
화려한 것보다 담백한 것이 오래도록 좋다. 그 자체의 모습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처럼 일상을 함께 하는 사물도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 패브릭 아트를 베이스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그레이(BY GREY)는 소재가 지닌 본래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바이그레이는 소재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바이그레이의 심지선 대표는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직장 생활을 위해 서울로 오게 됐는데, 관심 가는 수많은 재료들을 접하게 된 것이 작업의 계기가 됐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고 또 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그 재료들을 가지고 온종일 지니면서 잘 쓰일 수 있는 가방을 아이템으로 선택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재료들에 반해 시작한 첫 작업은 한복에도 잘 어울리는 가방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사용할 가방을 만들고,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만들며 SNS에 올린 것에 구매 문의가 오기 시작했고, 리움미술관 아트숍 입점 요청을 받게 되면서 2015년 사업자를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며 제품을 디자인, 제작하고 있다.
가봉 스티치로 형태를 강조한 캔버스 프린지 '스티치'
캔버스 프린지 '도트'. 도트를 직접 그려 수묵화의 번짐을 표현했다.
바이그레이를 처음 알게 된 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 무척 매력적인 캔버스 핸드백 ‘캔버스 프린지’를 통해서였다. 캔버스 가장자리의 올을 풀어 프린지의 느낌을 살린 디자인은 ‘어떻게 하면 소재의 예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사용하면 할수록 프린지가 더욱 풍성해지는 디자인은 캔버스라는 소재의 특성뿐 아니라 짜임까지 보여준다.
프린지 시리즈의 기본적인 디자인에는 몇 가지 요소가 더해지기도 하는데, ‘스티치’는 가봉 스티치로 백의 형태와 패브릭 라인을 강조해 날 것의 느낌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캔버스 백에 검정 도트가 그려진 프린지 ‘도트’는 실크스크린 등의 인쇄가 아닌 모두 손으로 그린 것이다. 수묵화의 번짐 효과를 내기 위한 도트 작업이나 전통 매듭을 새롭게 재현한 디자인은 한국적인 감성을 전하기 위한 시도였다.
원단의 마감을 밖으로 노출시켜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한 클라우디 시리즈
‘클라우디’ 시리즈는 원단과 원단 사이 스펀지를 끼워 쿠션감을 준 것으로, 마감을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이 역시 원단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프린지를 살린 디자인과 같은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가려져야 할 부분 혹은 마감이 덜 됐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밖으로 내보임으로써 마감되지 않은 겹겹의 원단들이 디자인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소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고민은 바이그레이의 디자인 포인트이자 바이그레이의 지향점으로, 디자인의 많은 부분이 소재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루고 싶은 소재에서부터 바이그레이가 시작됐던 것처럼 심 대표는 소재를 먼저 정하고 그 소재를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한다. 소재 선택의 기준은 ‘평범하지만 그 멋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한복에 사용되는 노방의 매력을 그대로 담은 '라이트그레이'
‘라이트그레이’ 라인은 한복을 만들 때 사용되는 우리 원단 노방의 매력을 강조한다. 고운 빛깔과 하늘거리는 형태가 매력적인 한복의 느낌을 모던하게 표현한 라인으로, 수채화 물감이 맑은 물에 퍼지는듯한 디자인에는 ‘수채화 백’이라 이름 붙였다.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이 담긴 '담백' 컬렉션
최근 출시한 담백 컬렉션에는 한국적이고 공예적인 감성이 듬뿍 담겼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는 ‘담백’의 의미와 솜을 넣어 두껍게 만든 요를 부를 때 쓰는 ‘담(毯)’에서 착안된 시리즈로 마음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해주는 요소들을 ‘담을 넣은 가방’으로 표현했다.
평소 달항아리의 전시는 모두 찾아가 관람할 만큼 달항아리에 깊은 관심이 있는 심 대표는 스스로 마음이 담백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떠올렸고, 달항아리를 비롯해 도자기, 기와, 돌담길을 산책하며 만난 식물까지 은근한 곡선을 지닌 형태들에서 영감을 받아 봉긋한 디자인으로 완성시켰다. 담백 시리즈에서는 소재의 매력과 디자인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규방공예의 기본인 감침질이 활용됐다.
특정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한국적인 선을 일상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전통 선반 형태에 설치된 담백 컬렉션
주로 특정 공간 속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한국의 아름다움을 공간을 넘어 늘 지닐 수 있는 리빙 오브제로 해석한 담백 컬렉션은 ‘2020 공예트렌드페어’에서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였다. 컬렉션 제품은 담백의 스토리와 기획의도를 전하기 위해 항아리를 전시하듯 전통 선반 형태의 설치물에 진열돼 눈길을 끌었다.
바이그레이 심 대표는 “대중들이 우리 전통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담백 시리즈를 통해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선보이고 있는 바이그레이는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지 않지만 결국 우리가 오래 함께 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라는 걸 디자인을 통해 깨닫게 한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바이그레이(www.instagram.com/by_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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