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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펫 디자인, 인간의 내면 욕망에 숨은 또다른 표출 통로

2020-11-29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다양한 크기, 종, 서식 습성의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지만 단연 가장 인기 높은 반려동물종은 개와 고양이다. 개의 덕목은 주인을 향한 물불 가리지 않는 ‘충성’과 ‘지조’, 고양이의 미덕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과 ‘신비’의 매력이다. 개인화·원자화되어가는 생활 속에서 현대인은 인간관계에서 채 충족되지 못한 가치와 덕목을 반려동물로부터 대리 충족시킨다.

 


인간과 반려동물은 최고의 친구이자 조력자. 벨기에 모험 만화 시리즈 <땡땡의 모험>의 주인공 땡땡과 강아지 밀루. <땡땡의 모험> 총 8편 모음집. Image: 英 Egmont 출판사

 

 

미국을 기준으로 2020년 현재, 총 가구 수의 3분의 2(8천5백만 명)가 최소한 한 종 이상의 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전체 가구 수의 절반이 반려동물을 키운다(자료: VetRecord). 반려동물 소유주들의 53%는 개, 약 38%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특히 반려묘 주인들의 경우 보통 두 마리 이상을 키우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세대별로 반려동물을 제일 사랑하는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4년 태생)로 이 세대 인구의 73%는 이미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그다음으로 X/Y 세대(1965~1980년 태생)가 총 반려동물 소유주의 32%를 차지한다(자료: spots.com). 베이비부머와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세대의 애완동물 소유율은 6%에 불과하다.

 


‘블링블링한 글램!’ 스니피(Sniffie) 애완견 패션. Courtesy: Sniffie

 

 

이 모두가 사회문화적 진화의 결과다. 지난 10년여 사이 동안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주력한 베이비부머와 1945년 이전 태생 노령인구 사이에서 반려동물 소유율은 크지 않았다. 과거 반려동물이란 농장에서 인간의 일을 거들고 영역을 수호하는 가축이거나 부유층의 럭셔리한 징표였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약 20년 사이 미국과 유럽에서 애완동물 소유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때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빈 둥지와 은퇴 후 노후생활을 공유할 반려적 존재를 찾는 동안 그들의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들은 독립된 가구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샤넬 패션을 영감으로 한 ‘리틀 롤라 선샤인(Little Lola Sunshine)’ 애완견 패션 디자인. 디자이너 롤라 타이글랜드(Lola Teigland)가 운영하는 롤라 앤 푸치(LOLA & POOCH)의 목표는 애완견에게 인격을 투영시켜 재미와 유머를 자아내는 것이다. ⓒ 2020 LOLA & POOCH

 

 

그 같은 추세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지난 10년 사이 1인 가구의 증가 추세를 타고 애완동물 소유율이 꾸준히 증가해서 2020년 봄 기준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6백만 가까이에 이른다. 가구별 반려동물 소유율 증가는 반려동물 관련 시장 활성화로 이어진다. 반려동물용 사료 수요, 동물 병원과 동물 훈련사 사업,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이 증가하고, 애완동물용 상품의 매출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더 한층 호황을 맞고 있다.

 


스키 패션과 시크함의 만남. 럭셔리 브랜드 몽클레어(Moncler)와 고급 애완동물 어패럴 디자인 업체인 폴도 독 쿠튀르(Poldo Dog Couture, 2016년 밀라노 설립)의 개를 위한 럭셔리 컬렉션 컬래버. Courtesy: Moncler

 

 

10년 전 이미 인사이더 패션 디자이너, 헤어스타일 전문가, 뷰티 및 그루밍 스페셜리스트들은 속속 펫 패션(pet fashion) 디자인 업에 뛰어들었다. 할리우드 연예인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던 설렙 미용사 루스 레지나(Ruth Regina)가 제안한 애완견을 위한 가발 위글스 윅스(Wiggles Wigs)는 패리스 힐튼의 애완견 치와와의 럭셔리 헤어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수많은 사교계 소형견 주인들이 모방한 핫 트렌드가 됐고, 롤라 앤 푸치(LOLA & POOCH)는 애완견에게 인격(anthropomorphism)을 투영시킨 명품 애완견 패션을 제시했다.

 


애완동물 패션계의 에르메스 ’세계 최초의 초명품 반려동물 패션하우스’를 선언하며 올 11월에 론칭한 파제리(Pagerie)는 풀그레인 송아지 가죽과 야트에 사용되는 해상급 스테인리스 등 고급 소재로 제작됐다. Courtesy: Pagerie

 

 

뒤따라 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들도 애완동물을 위한 명품 액세서리를 출시했다. 예컨대 버버리는 애완견용 트렌치코트, 구치는 애완동물용 침대와 순은제 고급 밥그릇을 선보였다. 이어서 2014년, 일본의 이통사 NTT 도코모는 애완견용 ‘스마트’ 이동전화를 출시했다. 개의 목줄에 3G/블루투스 모바일앱이 장착된 이 소형 터미널로 주인과 개가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창업된 반려견용 오트퀴튀르 숍 테멜리니(Temellini Dog À Porter)는 애완견과 주인에게 고급 원단을 소재로 한 맞춤식 패션을 제공한다. ⓒ 2019 - Temellini Milano

 

 

놀랍게도 ‘펫코노미’ 붐은 특히 올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확산 이후 더 크게 성장했다. 특히 애완동물을 위한 어패럴과 디자인 부문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라고 세계의 애완용품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본다. 겨울철을 맞아서 짧은 단층털을 가진 개의 체온 보호용 독스웨터 같은 기능성 어패럴 외에도 드레스, 리본, 목줄 등 순수 장식용 액세서리,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절기용 의상도 인기리에 팔린다.

 

샤넬의 디자인 디렉터였던 고(故) 카를 라거펠트의 애완묘 슈페트(Choupette)와 애완동물용 가구 디자인 업체인 루시발루(LucyBalu)의 컬래버로 지난 10월 론칭한 해먹 스타일의 고양이용 모직 펠트 원단으로 된 그네 겸 침상. 소비자 가격: 129유로. Courtesy: LucyBalu

 

 

인구가 밀집된 도회 환경과 아파트 위주의 주거환경은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의 관계를 재정의하며 새로운 문화 현상을 창출시킨다. 스스로를 ‘반려동물의 부모(pet parent)’라고 부르며 동물을 자식처럼 여기는 주인들은 반려동물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아동복이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회적 자아와 과시 욕망의 거울일 수 있듯, 반려동물 패션은 주인의 안목과 취향이 반영된 반려동물 소유주의 자아와 내면 깊은 욕망의 표현 수단일 수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케이나인 쿠투리어(canine couturier)’ 앤소니 루비오의 개 의상 디자인 ⓒ Anthony Rubio Designs

 

 

과연 우리가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반려동물들은 명품 패션이 필요할까? 동물들에게는 값비싸고 귀한 것으로 치장하며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내면적 욕구를 타인에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허영적 자아(ego)가 없다. 자아와 허영의 기표인 럭셔리 패션 디자인은 반려동물이 아닌 인간에게 봉사한다. 팬데믹과 경제 불황이 지속되자 집단 사교모임과 노골적인 자기 과시가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쉬운 요즘, 글로벌 명품 시장은 애완동물이라는 새로운 고객을 발굴해냈고, 펫 디자인은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웰빙을 달래줄 소비 테라피이자 제품 디자인의 한 영역으로 정착하고 있다.

 

글_ 박진아 객원편집위원(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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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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