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3
빛은 사물을 볼 수 있게 하고, 물체가 빛을 띄게 한다. 시각적인 것 외에도 빛은 무언가를 알리고 퍼트리며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빛의 의미를 다양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전시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Turn Your Lights On)’가 수원컨벤션센터 내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광교에서 열리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 전시 전경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는 수원시립미술관의 기획전으로 세상을 밝히는 근본적인 요소인 빛에 관한 전시다. 전시의 제목 ‘그것은 무엇을 밝히나’의 ‘그것’은 빛이고, ‘무엇’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와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의식, 관념 등을 뜻한다. 즉, 존재와 인식의 근원이자 깨달음, 희망을 상징하는 빛이 어떤 시각과 입장으로 대상을 밝히는지에 대해 묻는다.
전시에는 7개국 10인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빛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들을 총 20점의 회화, 설치, 미디어 작업을 통해 펼친다. ‘빛’은 총 3개의 맥락으로 소개된다.
검은색 화면과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 교차되는 전시장. 검은색 화면은 디지털 시대를 상징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시간을 잊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감각을 깨우는 이곳은 1부 ‘시공간을 확장하는 빛’이다.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빛의 세계를 인식하고, 이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안 번즈(Ian Burns), <왓 마잇 비(What Might Be)>, 2011, 나무, 조명, 확대경, 타이밍 시스템, 가변크기
전시장 벽에서는 빛이 만들어낸 단어들을 볼 수 있다. ‘AS FOUND(발견했다)’, ‘AS THOUGH(찾았다)’, ‘THOUGH FOUND(알아내다)’로 나타나는 단어들은 전구 안 필라멘트의 리듬과 타이밍에 따라 생성되는 것으로, 일정하게 변화하며 점멸한다. 이 작품은 호주 출신 작가 이안 번즈의 <왓 마잇 비>로, 백열전구 속 필라멘트가 글자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돋보기 렌즈로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를 벽에 투사해 글자의 조형적 요소를 만들고, 텍스트가 거칠게 투영되도록 한 이 작품은 빛을 통한 언어유희를 보여준다.
박여주, <레드 앤 그린 터널(Red & Green Tunnel)>, 2020, 혼합재료, 300×367.5×1832cm
적색과 녹색의 빛이 반복적으로 흐르는 공간은 박여주 작가의 신작 <레드 앤 그린 터널>이다. 여러 개의 방은 적색과 녹색의 빛으로 교차돼 채워져 있고, 이로 인해 이루어진 통로는 공간감과 깊이감을 전한다. 공간을 채운 보색의 빛이 일으키는 착시현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공간을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작품 맨 안쪽의 붉은 방에 다다르기 위한 터널이기도 하다.
2부는 ‘사유의 매개로서의 빛’으로, 우리의 시선을 가시적인 세계 너머로 이끄는 사유적인 빛이 등장한다. 작품 속 빛은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서의 빛을 넘어 인간의 사유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거나 느낄 수 있는 분위기 혹은 파동으로서의 빛을 소재로 빛의 근원적인 성격에 관한 작가들의 주관적 해석을 볼 수 있다.
박기원, <밤공기(Night Air)>, 2020, LED 조명, 비닐, 가변크기
벽을 길게 감싼 설치물과 푸른빛. 정적 속 밤공기를 떠오르게 하는 이 작품은 박기원 작가의 신작 <밤공기>다. 작가는 달 밝은 밤, 한적한 길을 산책하다가 별빛 가득한 정적 속에서 밤공기의 향기만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공간을 구성하는 마지막 관문을 ‘빛’이라 여긴 작가는 중성적인 빛, 공간의 벽을 길게 가득 채운 반복되는 가상의 빛을 연출했다. 공간과 결합한 빛의 현상은 관람객의 시선을 내면으로 이끈다.
3부 ‘공동체 메시지를 전하는 빛’은 희망과 기원을 상징하는 빛, 공동체의 염원이나 기원, 또는 제의적인 의미의 빛을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은 각자가 직면한 정치사회 현실을 빛을 이용해 말한다.
FX 하르소노 FX Harsono, <잠든 뼈들의 기념비(Bone Cemetery Monument)>, 2011, 멀티플렉스 나무 상자, 전기 촛불, 종이와 사진, 270×270×210cm, Edition 1 of 3
원기둥 형태로 쌓여있는 수많은 나무상자는 인도네시아의 FX 하르소노 작가의 작품 <잠든 뼈들의 기념비>다. 1947년 인도네시아 블리타 지역에서 발생한 대학살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담긴 203개의 멀티플렉스 나무상자 안엔 촛불과 사진이 함께 배치돼 있다. 이 사진들은 희생자 발굴을 기록한 사진작가인 FX 하르소노의 아버지가 촬영한 사진들이다. 작품 속 작은 빛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며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을 돌아보게 한다.
이밖에도 던 조이 렁(싱가폴), 영타 창(대만), 우종덕, 마르타 아티엔자(필리핀), 정정엽, 피터 무어(미국) 등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시공간을 확장하고 사유를 불러일으키며 깊은 공동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빛을 경험시켜 준다.
전시 기간 동안 수원시립미술관은 어디에서나 쉽고 재미있게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전시연계 교육 프로그램을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며, VR로도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연계 교육 프로그램과 VR 관람 모두 수원시립미술관 홈페이지(suma.suwon.go.kr)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빛은 개인 그리고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새로운 의미를 가진 모습으로 변화돼 간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자료제공_ 수원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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