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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인터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 가구, 건축과 만나다 - 모에베

2020-10-10

[디자이너 토크 Designer Talk]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융합(Convergence)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마치 다른 색의 물감들이 팔레트 위에 섞이며 새로운 색으로 재탄생하는 것 같은 모습은 분야를 막론한 현시대의 키워드가 된지 오래다. 기름과 물이 서로를 방어하며 뚜렷한 경계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융합은 섞이고 혼합되며 다시 분리되기를 반복한다. 어느 시점에는 전혀 새로운 것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다. 

 

건축과 가구의 만남. 스케일부터 디테일까지 너무도 다른 두 분야가 섞인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이번 [디자이너 토크] 세션의 이야기다. 덴마크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모에베(MOEBE, www.moebe.dk)는 영국의 건축가(Architect)와 덴마크의 가구장인(Cabinet maker)이 만나 시작된 디자인 브랜드다. 그들의 특별한 여정은 이미 북유럽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스튜디오는 그야말로 크리에이티브한 감성으로 가득했다. 다음은 모에베와 진행한 세션 내용이다.

 


토크 세션을 진행한 마틴, 니콜라스, 앤더스과 함께(오른쪽부터)

 

 

토크 세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소개를 부탁한다.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모에베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엔더스 (Anders Thams), 니콜라스(Nicholas Oldroyd), 그리고 마틴(Martin D. Christensen)이라고 한다. 영국의 건축설계자와 덴마크의 캐비넷 메이커 출신이 만나 라이프 스타일 오브제를 제작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캐비넷 메이커 스쿨에서 만난 동기다. 당시 스튜디오 창업을 계획했는데 건축도와 가구장인의 생소한(?) 조합은 이슈가 되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으로 말이다. 지금의 우리가 돌아봐도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웃음).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배경을 소개해 달라.


오브제가 가진 단순함(Simplicity)을 담으려 한다. 이를 기본으로 한 최소한의 형태가 오브제에 표현된다. 단순함은 단지 형태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모에베의 대다수 제품은 부분적 수리와 교체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바로 ‘단순화’된 설계 방식으로 디자인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95% 이상 유럽 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러한 근거리 생산방식은 철저한 제품관리를 가능케 해준다. 건축과 가구의 공통된 핵심(Core units)을 담아내는 방식도 모에베가 추구하는 중요한 방향이다. ‘건축의 미’가 담긴 오브제가 그것이다.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모에베가 추구하는 단순함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표현(Expression)과 구성(Construction) 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제품에 담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건축 설계요소가 라이프 오브제에서 표현되는 것은 상당히 유니크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초 아이디에이션 단계에서 적용 소재의 특성에 따라 디자인 방향을 정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알루미늄, 나무, 플라스틱, 실리콘 등 다양한 재료의 속성들에 대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실내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져야 하는 라이프 스타일 오브제의 특성상 이 과정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는 이러한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1년에 약 50가지 정도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건축과 가구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나서 시작한 브랜드로 알려졌다.


건축 분야의 전문지식은 오브제의 기본 구조와 설계 방식을 설정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스케일이 큰 분야이기에 거시적 안목을 갖고 제품에 접근하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제품의 특성상 구조적이며 설계방식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그때 건축적 지식과 노하우가 도움이 된다. 

 

캐비넷 메이커로서의 세심한 디테일과 부드러운 작동 설계방식에 대한 제안도 중요하다. 이렇듯 두 분야의 시너지는 ‘특별함(Uniqueness)’으로 제품에 반영된다.  
거울, 옷걸이, 선반, 조명, 테이블, 액자, 도마까지 제품의 라인업이 다양하고 또 섬세하다.


제품 범위에 있어서는 어떤 규정도 정해 놓지 않는다. 어떤 제품이라도 라이프 스타일 오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계점을 정해놓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오브제를 선보이고 있다 ⓒ MOEBE

 

 

제품 기획 당시의 아이디어와 출시 제품과의 퀄리티 간극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아이디어 구상 단계의 디자인이 실제 작업 공정이나 소재 특성의 이유로 변경되는 경우는 비단 우리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제품의 기획, 생산, 제작까지 직접 매니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그 간극을 줄여나가고 있다. 실시간으로 협의와 검증이 가능한 생산 공장이 가까운 것이 장점 중 하나다. 이는 곧 제품의 퀄리티와도 직결되며, 모에베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북유럽에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인가?


덴마크는 실리콘 밸리처럼 비즈니스 엔젤 등의 강력한 서포터 시스템이 없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브랜드가 성장하기에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국가 차원에서 디자인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다양하게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디자인 퀄리티만 확보하고 있다면 신생 디자인 브랜드가 큰 부담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선순환의 프레임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주 고객층은 누구인가.


나라별로 보자면 주로 독일, 홀랜드, 덴마크, 일본 등지에 고객이 많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관심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들의 높은 안목 덕분에 제품의 디테일 수준이 올라간다. 거시적으로는 디자인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구조라 생각한다. 

 

새로운 제품 기획 단계에서 인사이트는 어떻게 얻는가.


사실 모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잠시 들른 카페의 조명에서부터 거리의 가로등, 사무실 의자의 패턴 등 모든 것이 인사이트가 될 수 있다. 결국 나무의 씨를 심는 것과도 같다. 작은 인사이트들이 하나하나 모이고 자라나 제품 기획에 열매를 맺는 것이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완벽한 소재, 부품의 설계 구조를 기획하는 단계에 많은 공력을 들인다. 우리는 아주 작은 디테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모에베 제품의 완벽한 퀄리티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대표작 중 하나인 선반 시스템(Shelving system)이다. 구조적인 부분이나 조인트 부분의 디테일 부분, 각도, 적용 소재 등에 대한 실험과 개선을 엄청 반복한 과제였기에 기억에 남는다. 특히 각 부품은 모듈식으로 분리되어 만약 수리가 필요하다면 그 부분만 교체 가능하다. 환경을 배려한 솔루션이 제품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라인업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제품 중 하나다.  

 


모에베의 대표작인 시스템 선반 ⓒ MOEBE

 

소재의 특성과 마감을 고려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제품들 ⓒ MOEBE

 

 

반대로 도전이 된 프로젝트가 있다면.


오피스 공간 전체를 의뢰받고 작업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워낙 규모가 크기도 했고, 모든 세세한 부분을 설계하고 진행해야 했기에 당시에는 엄청난 도전이 된 과제였다. 결과적으로 값진 경험이 되었고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사물 인터넷 등의 첨단 기술이 현시대의 화두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적 디테일을 선호하지만 시대를 거스를 이유는 없다.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아이디어가 만난다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핵심이 되는 카운터펀치(counter punch)가 필요하다. 아직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아마도 기능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스토리가 아닐까.

 

가구 전시나 디자인 전시 등에도 참여하는가.


물론이다.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얼마 전 코펜하겐에서 열린 ‘3 Days of design in Copenhagen’ 행사에도 참여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직접 잠재 고객들과 이야기하며 반응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브랜드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  

 

덴마크 최대의 디자인 행사 ‘3 Days of design 2020’에 참가한 모에베 ⓒ MOEBE

 

 

북유럽 태생 브랜드로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에 대하여 한마디 부탁한다.


내부적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은 늘 거론된다. 특히 덴마크인들은 집안의 인테리어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한다. 그 투자는 금전적일 수도 혹은 시간일 수도 있다. 그만큼 기본 안목이 높다는 의미이며, 제품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는 의미다. 당연히 북유럽의 디자인 브랜드들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아주 근사한 문화라 생각한다. 

 

북유럽 디자인은 한국에서 꽤나 인기 있는 트렌드다.


반가운 얘기다. 이곳의 이야기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반대로 미니멀리즘의 아시아적 키워드도 북유럽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는 특히 아시아의 문화를 사랑한다. 우리에게 아시아 고객이 많은 이유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올바른 방향(right direction)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올바른 방향’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남들이 바라는 혹은 원하는 디자인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초창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권한다.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얻고 다시 개선하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초점이 맞기 시작할 것이다.  


모에베의 다음 비전은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얼마 전에는 조명 분야로도 진출했다. 공통된 주 콘셉트를 배경으로 작은 사이즈의 액세서리부터 가구제품까지 전방위의 인테리어 오브제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아이디어 회의 중인 모에베 팀과 스케치 과정 ⓒ MOEBE

 

코펜하겐 시내에 위치한 쇼룸 전경 ⓒ MOEBE 

 


성장의 통로


오랜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다듬어져 온 다른 이야기들이 ‘한 지점에서 만나 섞인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사건(?)이 아니다. 각자의 노하우와 경험들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합쳐지는 것은 득이 될 수도,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 서로를 파악해가며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여정이란 그야말로 극대화된 시너지의 효과를 볼 수 있음과 동시에, 불꽃튀기는 격렬한 논쟁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건축과 가구의 융합이 출발점이 된 모에베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어온 듯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되 동시에 적극적인 협업으로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여정이 그러했다. 지금의 모에베 포트폴리오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해가는 디자인의 내공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의 영역에 (어떠한 모습으로든) 낯선 이야기가 들어올 때가 있다. 경계심을 갖고 튕겨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배울 점을 찾고 융합의 자세로 포용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결국 태도의 문제다. 적어도 디자이너라면 후자를 택함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모든 경험(멋지거나 혹은 실망스러운)에는 분명 고유의 가치가 있고 그것은 성장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 성장의 통로는 좁고 길기 마련이다. 지름길이나 단축 버튼 같은 편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통로의 끝에는 반드시 더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다. 


글_ 조상우 객원편집위원(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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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디자이너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모바일 디자인 그룹 책임 디자이너, 소니 모바일(Sony mobile) 노르딕 디자인 센터를 거쳐, 현재 스웨덴 컨설팅 그룹 시그마 커넥티비티(Sigma connectivity), IoT 부문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근원지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www.sangwoo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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