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9
독일 출신의 현대미술가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는 오브제, 설치, 컬래버레이션 등 다양한 방식과 스케일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록번드 미술관, 화이트채플, 팔레 드 도쿄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국내의 부산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했다.
레베르거의 대표적인 이미지로는 ‘대즐 카머플라주(dazzle camouflage)’ 문양을 꼽을 수 있다. 패션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서도 선보여진바 있는 이 문양은 작가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전함의 위장 무늬에서 차용한 것으로, 그는 대표작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Was du libelist, bring rich such sum weinen>(2009)에서 이 무늬로 실제 카페를 꾸며 예술작품이자 카페인 ‘사이의 장소’를 만들고, 관람객에게 예술과 카페의 기능과 장소의 모호한 경계를 경험토록 했다.
강렬한 이미지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미술과 디자인, 예술과 일상, 미학과 기능 등,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나들며 개념과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토비아스 레베르거의 전시 ‘Truths that would be maddening without love’가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다.
‘Truths that would be maddening without love’ 전시 전경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색다른 세상을 펼쳐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하늘과 바다 이미지로 꾸며진 벽과 문이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벽과 문을 마주하게 되고, 그 문을 열면 또 다른 벽과 문이 나온다. 모두 5개의 벽과 문을 통과하며 만나게 되는 거대한 이미지들은 뭔가 특별해 보인다. 이 이미지들은 작가가 촬영한 일상적 이미지들이다.
문엔 ‘Something else is possible’이라 적혀있다.
문은 독특하게 디자인돼 있는데, 가만히 보면 알파벳이 보인다. 모든 문엔 ‘Something else is possible’이라 적혀있고, 각각의 벽은 ‘Something else is possible in Suzu’, ‘Something else is possible in the Maldives’ 등으로 이름 붙여졌다.
<The universe as 122 ashtrays>, 2020
마지막 문을 통과하면 가까이 다가서야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오브제들을 보게 된다. 122개에 이르는 이 오브제들은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찾아낸 이미지들을 토대로 3D 프린팅으로 만든 추상적인 오브제다. ‘재떨이’로 명명됐지만, 이 오브제들 중엔 과연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형태도 많다. 어떤 식으로 이 형태들이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수행할 수 있을지를 묻는 작가의 의도라 할 수 있다.
<I am trying to listen to what I say>, Me Version(좌)과 It Version(우), 2020
<I am trying to listen to what I say>(You Version), 2020
작가 특유의 문양이 펼쳐지는 공간도 있다. 이곳에선 작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벽면 문양의 일부가 입체적으로 설치돼 있는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좌측 벽면에 있는 작품이 <Truths that would be maddening without love>(2020) 우측에 있는 세라믹 작품이 <Self portrait>(2020)다.
<Truth & Love>, 2020
마지막 공간에선 단어들로 이루어진 네온 작품과 세라믹 조각품에 꽃을 꽂아 완성한 자화상 작품이 전시된다. ‘진실’, ‘사랑’ 등의 단어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통해 전시의 주제와 유쾌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의해 혹은 정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하고 오해하며, 때론 그것을 진실이라 여기기도 한다. 예술과 그 이외의 것의 경계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예술뿐 아니라 삶 전반에서 이분법적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진실을 탐구해보는 건 어떨까. 전시는 5월 13일까지.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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