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30
닭 모양의 초록색 목마. 목마를 타고 있는 특이한 복장의 작가. 한 손에 든 빨간 하트 모양의 오브제와 머리 위에 앉아있는 한 마리의 새가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의 모습과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더한다. 동화 속 이야기가 펼쳐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가 타고 있는 목마, 그리고 머리 위 새는 금방이라도 그와 대화를 나눌 것만 같다.
〈Green Chicken〉, 2008, Photography, Courtesy of the Groninger Museum, NL, Photo by Nienke Klunder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오브제로 사람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그의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Jaime Hayon: Serious Fun)’이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하이메 아욘의 국내 최초 전시로 그의 비전과 예술철학을 전하는 이번 전시는 가구, 회화, 조각, 스케치, 대형 설치 작업 등 다양한 작품 140여 점을 선보인다. 7개의 공간에서 7개의 테마가 펼쳐지며 주인공이 된 오브제들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낸다.
아욘의 엉뚱하고 기발한 작품세계는 스스로를 8살 아이 같다고 말하는 그의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에서 출발한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 ‘0’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과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그다.
그는 경쾌함과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좋은 재료에 완벽을 기해 기능성을 넘어서는 퀄리티를 만든다. 그의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능, 스토리텔링, 물성이다. 전시 타이틀의 ‘Serious Fun’은 엉뚱하고 기발하면서도 하이 퀄리티에 재미를 결합한 그의 세계를 대변한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Green Chicken〉
‘Crystal Passion’
전시는 하이메 아욘의 세계를 대변하는 〈그린 치킨〉의 안내로 시작된다. 붉은 배경의 첫 번째 공간에서는 ‘Crystal Passion(보석들이 열대지방으로 간 이유)’이 펼쳐진다. 하이메 아욘과 바카라(Baccarat)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장식용 화병 세트 〈Crystal Candy Set〉는 크리스털과 세라믹이라는 전혀 다른 물성의 재료를 결합해 다양한 텍스처와 두께, 컬러로 열대 과일의 영롱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파인애플, 석류, 골프공같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의 패턴이 담겨있는 작품들에선 아욘의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2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 장인들의 정교한 크리스털 커팅 기법을 볼 수 있다.
‘Modern Circus & Tribes’
노란 배경의 두 번째 공간 ‘Modern Circus & Tribes(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에서는 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된다. 아프리카의 전통 마스크, 의복 등 강렬한 장식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Afrikando〉 시리즈는 10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베네치아 유리 공예 전문 브랜드 나손 모레티(Nason Moretti)의 몰드 블로잉(Mold-blowing) 기술이 더해져 완성된 것으로, 상반된 요소들을 조화롭게 매치, 지역과 지역, 문화와 문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뤄낸 작품이다. 서커스를 모티브로 각기 다른 모양의 다리를 결합시킨 테이블과 도금된 세라믹 작품들로 구성된 〈Mon Cirque〉는 예술성과 기능성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며, 수공예의 가치를 디자인에 접목시켜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Checkmate’
유리로 둘러싸인 세 번째 공간은 ‘Checkmate(트라팔가르의 체스 경기)’로 흑백의 체스보드와 대형의 체스 말들이 설치돼 있다.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체스 게임으로 풀어낸 것으로, 2009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London Design Festival 2009)’을 위해 디자인한 대형 체스 게임 설치 작품 〈The Tournament〉이다. 이탈리아 세라믹 브랜드 보사(Bosa)와 만든 2m 높이의 체스 말에 아욘이 직접 런던을 대표하는 역사적 건물, 돔, 타워, 첨탑 등을 그려 넣었다. 실내에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사방에 거울을 설치해 전 피스가 설치된 느낌을 연출했다.
‘Dream Catcher’
2층의 공간에서 재료와 탐구 방식, 영감의 원천 등 작업의 출발점을 살펴보았다면 3층에서는 2D가 어떻게 3D로 구현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연한 핑크빛으로 꾸며진 네 번째 공간 ‘Dream Catcher(상상이 현실이 되는 꿈)’에서는 그의 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된다. 아욘의 꿈의 전경을 묘사한 〈Mediterranean Digital Baroque〉 시리즈는 자유로운 예술가적 기질을 드러낸 작업의 시초로 여겨지며,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그의 판타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세계와 어우러지는 바닥 디테일도 눈에 띈다.
‘Cabinet of Wonders’
연한 그린 빛의 다섯 번째 공간 ‘Cabinet of Wonders(수상한 캐비닛)’는 아욘의 소중한 오브제들을 모아놓은 방’이라는 뜻의 ‘캐비닛 오브 큐리오시티(Cabinet of Curiosities)’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디자인한 공간으로, 작가 특유의 유선형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캐비닛 안에 70여 점의 다양한 오브제와 스케치북이 전시돼 있다. 작품들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건네고, 곳곳에 더해진 모션 효과가 재미를 더한다.
‘Furniture Galaxy’
푸른 여섯 번째 공간 ‘Furniture Galaxy(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에서는 하이엔드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재탄생한 아욘의 가구들이 전시된다. 흰색의 가구는 모노크롬 방식으로 공간을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푸른 벽면에서도 화이트로 설치된 그의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가구들 하나하나에도 역시 재미있는 스토리가 가득하다. 아욘만의 느낌으로 재탄생한 유명 브랜드의 가구들을 통해 ‘디자인이란 사용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Hayon Shadow Theater’
마지막 일곱 번째 공간 ‘Hayon Shadow Theater(아욘의 그림자 극장)’는 아욘이 이번 전시를 위해 최초로 선보이는 초현실적인 그림자 극장이다. 그림자 극은 꾸준하게 그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작품에서는 그의 상상 속 캐릭터가 살고 있는 거대하고 드라마틱 한 그림자 극장이 구현된다. ‘미스터리 엘레강스’를 콘셉트로 공간을 연출했으며, 배경음악 역시 콘셉트에 맞게 작곡됐다. 8가지 캐릭터가 등장, 대형 오브제를 비추는 빛과 그림자, 빛으로 만들어진 움직이는 그림자가 하이메 아욘의 상상력 속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하이메 아욘
하이메 아욘의 작품들은 발랄하고 생기 있다. 그가 ‘오브제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것은 단순히 오브제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위트와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일 거다.
세상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바라보는 하이메 아욘의 디자인 철학을 감상하며 사물들의 판타지를 발견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1월 17일까지 개최된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대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