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3
얼마 전 20여 년을 넘게 발행되어온 한 패션지의 폐간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휴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사진과 활자로만 콘텐츠를 전달하는 지류 잡지의 폐간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일지 모른다.
쏟아지는 미디어 플랫폼 속에서 지류 잡지는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이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잡지를 대표하는 패션과 리빙, 시사 등의 콘텐츠에서 벗어나 기발한 콘텐츠로 무장한 잡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있다.
대중성보다는 독자가 필요로 하는 꼭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는 전문지들의 출간은 앞으로 지류 잡지가 나아갈 방향이 아닐까?
디자인정글에서는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한번 더 지류 잡지의 부흥기를 이끌 매거진을 소개하고자 한다.
<논매뉴얼> ISSUE01호 커버
그 첫 번째 순서는 국내 최초로 창간된 VMD 매거진 <논매뉴얼>이다.
단순히 제품을 매장에 진열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고객의 동선과 홍보, 이벤트까지 생각하는 VMD(Visual Merchandiser)의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논메뉴얼> 장은지 편집장
편집장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 국내 최초 VMD 매거진 <논메뉴얼>을 창간하셨어요. 매거진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장은지 편집장입니다. <논메뉴얼>은 비주얼머천다이징(Visual MerchanDising)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에 VMD는 제품의 판매 촉진을 위한 진열 매뉴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소비패턴이 달라지면서 ‘물건을 구매한다’라는 일반적인 개념보다 ‘그곳에 가볼까?’라는 쇼핑의 개념이 변화하면서 필요에 의한 소비 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위한 소비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요즘 소비의 목적은 구매를 위해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인사이더(인싸)’가 되기 위해서 최신 유행 공간을 남보다 먼저 찾고 SNS에 남기며 트렌드에 앞서가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에요. 이제 매장은 판매 위주가 아니라 공간에 담긴 콘텐츠를 체험하고 재방문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합니다.
이에 저희 잡지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국한되지 않고 변화의 흐름에 맞게 상업공간의 실질적인 공간기획부터 디자인, 그리고 공간의 뒷이야기를 촘촘하게 담아내려고 합니다. 어쩌면 VMD라는 영역이 분야별로 매뉴얼 되어 있어 유사한 카테고리들의 나열로 단조로운 이야기 전개를 초래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논메뉴얼>은 모든 상업공간은 저마다의 규칙과 콘셉트 등 ‘매뉴얼’화 되어 있는 공간들을 특정 주제와 카테고리로 다시 묶어 공간들이 풀어낸 이야기를 NON-MANUAL 시각으로 담아보려고 합니다.
VMD 매거진을 창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VMD라고 하면 어떤 카테고리와 필드에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잘 모릅니다. 동종 업계에서 실무를 하거나 과목으로 개설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분들 말고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VMD에 대해서 물음표를 떠올릴 것입니다.
<논메뉴얼>은 그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VMD를 윈도디스플레이, 매장진열 등으로 국한되어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VMD는 한 브랜드 혹은 상업공간이 만들어질 때 브랜드의 전략과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고 공간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공간에 담게 될 집기들을 디자인하고 계획적으로 배치하는 공간 구성단계, 그리고 그 공간에 제품이나 콘텐츠를 담아내는 시각화 단계까지 총괄적인 비쥬얼라이제이션(visualisation)을 담당합니다.
이처럼 상업공간의 탄생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고 국내에서 VMD라는 용어가 직접 쓰이기 시작한 지도 언 20년이 다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아직 물음표가 따라다니는 분야입니다. 너무 어려운 전문 용어나 글로써 보인다거나 현재 나와 있는 사진들의 나열로는 VMD를 표현하기 미흡하였고 상업공간은 상품이나 콘텐츠의 변화에 맞추어 꾸준히 변화하고 있어 매거진으로 펼쳐 냄으로써 VMD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VMD를 실내디자인학과의 한 과목으로만 학습하던 시대에서 최근 몇몇 대학에서 VMD 학과를 개설하는 등 영역의 전문성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활동영역을 알려주는 정보제공자 역할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기존 잡지에서 볼 수 없는 도면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논메뉴얼>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기존 잡지와 크게 3가지 부분에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첫째는 발행되는 이슈마다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 째는 취재한 모든 공간의 도면 수록입니다. 기사와 도면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가보지 못한 공간을 투어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했어요. 저희는 독자들에게 공간을 시각적으로 읽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 째는 저희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공간 전체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간에서 보여주는 세세한 것들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일부 시공 중의 사진이나 공간이 기획될 때 만들어진 기록된 사진들 등 수록해 공간의 히스토리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VMD는 비주얼이 중요한 작업이에요. 매거진의 구성이나 인쇄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창간호를 발행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출판 행사를 앞두고 최종 인쇄 전 가재 본을 보는 순간 너무 아찔할 만큼 완성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체의 크기부터 사진의 컬러, 이야기 전개의 미흡함까지 잘 못하면 일반 인테리어 잡지와 차별화가 느껴지지 않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수십번을 검사하고 다듬어가며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팀원들 모두 지난겨울에 하루평균 4시간 이상을 잤던 기억이 없어요. 그래도 매 순간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품고 만들었습니다.
맞아요. 잡지를 한 권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특히 처음으로 시도되는 잡지는 더 무게감이 큰 것 같아요.
사실 모두가 처음 다루어지는 콘셉트의 잡지이기 때문에 기사를 써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너무 공간적인 내용만 다룬다면 인테리어지와 다름이 없어지고 콘텐츠에만 포커스 하게 되면 엔터테인먼트지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논메뉴얼>만의 개성을 살린 기사를 뽑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편집 또한 시간이 많이 필요했는데요. 커버 사진 선정부터 눈이 편안한 서체 종류와 크기 그리고 컬러감까지 모든 페이지를 허투루 작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건 사진이 많다 보니 A컷을 추리고 그 컷을 적정 위치에 담아 내기 위해 저희 디자인팀 팀원들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아직은 저희 잡지에 대해서 물음표를 가지는 분들, 새로운 형태의 잡지인 만큼 기대하는 분들도 계시고 팔릴 것 인가 하는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하지만 아직 판단하기에는 저희가 보여줄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논메뉴얼>이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특정 소수를 위한 잡지는 아니에요. 저희 책을 통해 평소에 방문하던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동안 몰랐던 공간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공간을 방문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합니다.
팀원분들도 한마디씩 해주세요.
“VMD가 되고 싶은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공간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은지 편집장
“하루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에 커피와 함께하는 잡지였으면 좋겠어요.” 라미래 편집디자이너
“책에서 알게 된 공간보다 더 많은 공간과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윤 편집디자이너
“잡지를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공간을 바라볼 수있으면 해요.” 강건보 기자
“특별한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손쉽게 선택하며, 트렌드를 선도하는 친근한 잡지가 되길 바랍니다." 정다은 기자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현재 아크앤북과 심지서적, 낫저스트북과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논메뉴얼>을 만날 수 있지만, 곧 해외에서도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사진제공_ 논메뉴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