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08
지하 1층 전시장 전경©Design Jungle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 황규태 작가의 개인전 ‘픽셀 Pixel’이 지난 7일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렸다.
4월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픽셀 Pixel 전은 작업 초기인 60년대부터 주류에 타협하기보다 자유로운 실험 과정을 거쳐 사진의 영역을 확장해온 원로 작가 황규태가 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진행 중인 픽셀 시리즈의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직접 만난 작가는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에너지가 넘쳤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 시절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카메라를 접했다. 데뷔 이래 언제나 실험 사진의 최전방에서 다양한 시도들, 예를 들어 60년대에 이미 필름 태우기, 차용과 합성, 아날로그 몽타주, 이중 노출 등을 통해 독특한 작가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80년대부터 디지털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는 디지털 몽타주, 콜라주, 합성 등의 다양한 시도로 이어졌다.
“이 나이 될 때까지 사진작업을 계속 할 줄 몰랐어요” 황규태 작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뿌듯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그 긴 과정 속에서 작가는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작은 점들을 일컫는 픽셀을 디지털 이미지들 속에서 발견했고, 그 기하학적 이미지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시각적 유희에 매몰됐다. 그렇게 픽셀 시리즈가 시작됐다고. 이날 작가는 한 번 더 픽셀 작업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증을 보이자 “나는 원래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다”라며 “예술, 특히 현대 예술은 우연이나 실수로도 탄생하는데 모니터를 보던 중 화면 구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픽셀 시리즈에는 사진의 기본인 ‘촬영’ 과정이 부재하거나 현저히 부족하다. 대신 ‘선택’과 ‘확대’가 존재한다. 즉 그의 작품은 여느 사진 작품처럼 대상을 카메라로 촬영해 그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하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나 모니터 등을 선택하고 그것을 확대한다.
거기서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픽셀을 집요하게 발견하고, 여러 방식으로 시각화, 물질화 시키는 것이 기본 골자다. 그 과정에서 전통 사진의 주요 쟁점인 ‘지표성’의 가치는 희소해지고, 원본 이미지에서 파생되는 결과물들은 무한해진다. 이 모든 과정들이 사진으로 볼지 아닐지에 대한 문제보다는 “나는 만들지 않았고, 픽셀들을 선택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전방위적 작품들은 예술의 전통적인 범주나 양식사적 접근으로 축소해서 볼 게 아니라 이미지 연구의 관점에서 조금 더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시장 지하 1층에 전시된 <pixel: bit의 제전>은 현란하고 뚜렷하다. 또 시각적인 다채로움을 제공한다. 이미지를 확대해 보면 흐려질 수 있지만 황규태의 픽셀은 선명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반 카메라와 컴퓨터를 썼을 뿐이다”라고 언급했다.
<pixel: bit의 제전>, pigment print, 280×650(5pcs)
더 가까이에서 본 모습
<pixel letter from out of space> 270x400
흥미롭게 살펴볼 또 한 가지 지점은 그가 주장하는 픽셀 시리즈와 러시아 미술가 카시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작품과의 연결고리다. 자신이 찾아낸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말레비치가 손수 그린 극한의 미니멀한 하드엣지 작품과의 유사성을 발견함으로써, 100년의 간극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서의 절대주의 조형성의 철학을 다시 논한다.
재현의 흔적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사각형, 원 등의 기본적인 형태와 색채만의 순수한 구성에 도달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처럼 원본 이미지에서 확대에 확대를 거듭해 도달한 픽셀들의 세계는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의 무한한 시공간을 현시하고 순수한 추상을 탐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포스트 하드엣지’라 칭한다. 그가 픽셀 시리즈를 시작한지 약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간의 치열했던 고민과 연구가 응축된 최근의 작품을 선별한 이번 전시가 동시대 디지털 문명에서의 이미지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픽셀 Pixel’전은 4월 21일까지 90년대 후반부터 20년 가까이 제작한 황규태의 픽셀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pixel> 150x222(좌), <pixel> 150x222(우)
다양한 <pixel>시리즈 50x50
에디터_장규형(ghjang@jungle.co.kr)
촬영협조_아라리오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