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4
얼마 전 독립 출판계의 큰 행사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열렸었다. 오픈 전부터 관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독립 출판물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출판할 수 있는 문화가 생긴 현재, 멋진 굿즈를 만들고 싶지만 사이즈를 몰라 포토샵을 켜고 멍하게 앉아 있거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겨우겨우 사이즈를 알아내 작업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디자인스튜디오 나쁜양들에서 <디자인을 위한 사이즈북&견본>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명함과 포스터, 리플렛 등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디자인 사이즈부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웹 콘텐츠의 사이즈와 해상도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다.
나쁘다고 하지만 너무나 친절하고 꼭 필요했던 디자인 사이즈 북을 만든 나쁜양들의 김민철 대표를 만났다.
<디자인을 위한 사이즈북&견본> 소개
안녕하세요. 먼저 정글 독자들에게 ‘나쁜양들’ 소개해주세요.
반갑습니다. 저희는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김민철과 미디어디자인을 전공한 강진수 두 명으로 구성된 디자인 듀오입니다.
둘 다 회사에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쁜양들’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좌로부터) 나쁜양들 김민철, 강진수 듀오 디자이너
‘나쁜양들’이라는 이름이 특이해요. 이름에 뜻이 있나요?
저희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순하다고 할까요?(하하) 그래서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는 그런 규칙적이고 조직적인 생활에 얽매여 있었어요. 그런 순응적인 모습이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하면서 저희 스스로 변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무리보다는 혼자 생활하는 큰뿔야생양(bighorn)에서 힌트를 얻어 ‘나쁜양들’이라고 정했습니다.
앞에 나쁜이라는 단어는 원래의 뜻이 아닌 강해지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위한 사이즈북&견본>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저희의 첫 시작은 뇌 캐릭터 ‘돌로레스’입니다. 공부와 시험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행복을 주기 위해 뇌를 캐릭터화해 배지와 열쇠고리 등으로 만든 프로젝트였습니다.
강진수 디자이너가 평소에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기에 어떤 것보다 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시작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희 생각보다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제품이었던 거죠.
그래서 펀딩을 중단하고 더 진정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하고 <디자인을 위한 사이즈북&견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디자인을 위한 사이즈북&견본> 소개
귀여운 캐릭터 배지에서 <디자인을 위한 사이즈북&견본>은 정말 다른 분야에요. 의견 충돌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네,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 반대가 심했어요. 주변에서도 “인터넷에 다 있지 않아?” 이런 반응이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강행했습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를 보자마자 너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인쇄 쪽에 일하지 않으면 아무리 디자이너라도 사이즈를 모두 알 수 없거든요.
맞아요. 관련된 분야 아니면 잘 모르시죠. 오히려 제작하는 분들이 더 잘 아세요.
출판인쇄용 판형 사이즈 견본5종
책 안에는 명함부터 리플렛, 포스터, 그리고 해상도와 SNS용 사이즈까지 있어요. 방대한 양의 자료는 어떻게 수집하셨나요?
회사에서 일할 때 웹 콘텐츠나 제작 쪽 등의 다양한 분야를 해봤기에 축척된 데이터가 있었고요. 또 평소에 괜찮은 리플렛을 많이 수집해 오고 있었어요.
하지만 책을 내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에 관련된 도서와 웹 사이트를 많이 조사했어요. 객관성을 주기 위해 대형인쇄소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도 참조했습니다.
국내에는 웹과 관련된 정보가 별로 없어서 해외 디자인 커뮤니티를 참고했고,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가 개발자를 위해 올려놓은 문서도 확인 했습니다.
자료조사는 얼마나 걸리신 거에요?
조사 기간은 한 달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사이즈북 표지
사이즈북 국제규격
사이즈북 출판
사이즈북 해상도
그럼 두 분이 일은 어떻게 나눠서 진행하셨나요?
저는 전체 프로젝트 총괄을 맡았고요. 강진수 디자이너는 자료 조사와 웹 사이트 제작, 편집을 맡았습니다.
책 편집이 의외로 까다로운 작업이라서 두 명 모두 함께 작업했습니다.
사이즈나 해상도는 조금만 잘못되어도 사용할 수 없어요. 제작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대형인쇄소에서 많이 인쇄되는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많이 드렸어요. 인쇄소가 워낙 바쁘다 보니 자료를 얻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대외비라고 안 알려주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진정성 있게 다가가니 이것저것 알려주셨어요.
펀딩 반응이 폭발적이에요. 예상하셨어요.
아뇨.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처음 시작한 ‘돌로레스’ 프로젝트를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감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하려면 펀딩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에 용기를 냈죠.
다행스럽게도 시작하고 이틀정도 만에 엄청 많은 분이 참여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책임감이 강해졌어요.
포스터 사이즈 견본 A2, B2
디자이너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누군가 속 시원하게 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원하는 니즈에 잘 부합한 것 같아요. 책 내용도 웹이나 시각 쪽 디자인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은 작업해보는 것들 위주로 수록했기에 그런 것 같아요.
처음 펀딩을 시작하고 중단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처음은 <일과 생활 속의 사이즈> 였습니다. 일상 생활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어요. 펀딩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후원자분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생활 부분보다는 디자인에 더 유용한 내용이 있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생활보다는 디자인을 위한 가이드 북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펀딩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생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출판과 웹에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큰 비중을 차지하던 생활 파트를 드러내니 책의 분량이나 가격도 낮아졌습니다.
리플렛 사이즈 견본 3단, 4단
이 프로젝트를 후원한 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하길 바라나요?
디자이너분들이 더는 사이즈 때문에 머리 아파하지 않고 본질적인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도 처음 디자인을 시작할 때 사이즈 때문에 인쇄 사고를 낸 적 있습니다. 그래서 초보인 분들도 사고 걱정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나쁜양들’은 어떤 일을 해나갈 예정인가요?
이번 사이즈 가이드 북처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글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이 자리를 빌려 저희 프로젝트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에디터_ 김영철(yckim@jungle.co.kr)
자료제공_ 나쁜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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