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8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난사로 기록된 2007년 버지니아공대 사건. 이날 32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사망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학생이 벌인 일이라 더욱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총기사건 역사는 사실상 그날 이전과 그날 이후로 나뉜다. 미성년자의 총기 구입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 시점도,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여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직한 울림을 주는 사진작가들이 있다.
생존자들의 슬픔
미국의 사진작가 안드레스 곤잘레스(Andres Gonzalez)는 색다른 시선으로 교내 총기난사 사건을 조명했다. 2012년부터 버지니아공대(Virginia Tech, 2007. 32명 사망)를 비롯해 샌디훅 초등학교(Sandy Hook Elementary in Newtown, 2012. 27명 사망), 콜럼바인 고등학교(Columbine High School in Colorado, 1999. 13명 사망), 노던 일리노이 대학(Northern Illinois University, 2008. 5명 사망) 등 굵직한 사건이 있었던 현장을 여행하듯 돌아다니며 그들의 흔적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곤잘레스 작가는 생존자들의 얼굴, 희생자들의 유품, 친구들이 남긴 편지 등을 사진으로 담았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면 대체로 범인과 범행 동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뉴스에는 몇 명이 사망했는지 짤막한 숫자로 표시될 뿐이다. 곤잘레스 작가는 시선을 비틀어 고통의 시간을 생생하게 겪은 생존자들을 프레임에 기록했다. 피로 물든 캠퍼스라든지 절규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담은 자극적인 사진이 아닌 남은 자들의 담담한 기록이어서 색다르다.
An origami crane and a paper crown from the Virginia Tech April 16, 2007, Archives of the University Libraries, at Virginia Tech in Blacksburg, Va. ⓒ Andres Gonzalez
(좌)Connecticut State Library and Archive in Hartford, Conn. (우)Founders Memorial Library in Northern Illinois University. ⓒ Andres Gonzalez
Kristina Anderson is a survivor of the April 16, 2007, shootings at Virginia Tech and the founder of Koshka Foundation, which works to improve school safety, encourage student activism and connect survivors. ⓒ Andres Gonzalez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인 크리스티나 앤더슨(Kristina Anderson)은 사건 이후 어린 시절 별명에서 이름을 딴 코시카재단(Koshka Foundation)을 세우고 미국 전역을 돌며 폭력 예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옆에서 친구들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던, 혹은 자신이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던 학생의 직설적이고 감동적인 연설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친구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강연하고 있다.
유치원생 20명이 사망한 '샌디훅 참사'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 유난히 가슴 아픈 이유는 피해자 대다수가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은 사망자 27명 중 20명이 6~7세 어린이들이었던 터라 충격이 컸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이하의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중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된다.
어린아이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된 후 미국 전역에서 애도가 쏟아졌다. 당시 50만 통이 넘는 추모 편지와 곰인형 6만 5천 개가 학교로 배달됐다.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이 보낸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뉴타운 시청에 보관하다 곰인형 양이 점점 많아지자 비행기 격납고로 옮겼지만 이내 꽉 차버렸다. 결국 편지와 곰인형들을 한꺼번에 소각하고 작은 병에 재를 담아 현재는 코네티컷 주립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다.
A vial of "sacred soil," the incinerated remains of mementos sent to Newtown, Conn. The vial belongs to Yolie Moreno, who photographed all the items before they were burned. ⓒ Andres Gonzalez
매일 학교 가는 아이를 촬영한 아버지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또래 자녀를 둔 학부모였다. 사진작가 그렉 밀러(Greg Miller) 역시 사건이 일어난 뉴타운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살며 6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밀러 작가는 딸을 통학버스에 태우고 웃으며 배웅했다. 같은 풍경으로 즐겁게 학교에 보냈다가 어이없는 사고로 자식을 잃은 이웃 학부모들을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지역신문 부고란에 실린 희생자들의 흑백사진을 보면서 밀러 작가는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사진으로 기록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길가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아이들을 촬영한지 6년째다. 아버지의 시선으로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Photographer Greg Miller's daughter waits for her morning bus. ⓒ Greg Miller
ⓒ Greg Miller
ⓒ Greg Miller
밀러 작가는 통학버스에 오른 딸의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오늘도 무사히'를 외친다. 별일 없이 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자 감사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가 2013년부터 촬영한 사진 시리즈 제목은 ‘모닝 버스(Morning Bus)’이다. 연출 없이 담백하게 아이들의 등굣길 일상을 담아냄으로써 여전히 불안하지만 매일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애처롭게 표현했다. 밀러 작가는 샌디훅 참사가 일어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섭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신과 딸은 앞으로도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릴 것이며, 비극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는 일이 남겨진 아이와 부모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NeverAgain #MeNext 캠페인 확산
19살짜리가 술을 살 수는 없지만 총은 살 수 있는 미국. 술은 21세 미만의 성인이 살 수도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반면, 권총을 비롯한 AK-47이나 AR-15와 같은 반자동 소총 구입은 18세부터 간단한 신고만으로 구입할 수 있다. 그야말로 운전면허 따는 것보다 쉽다. 독립전쟁과 서부 개척의 역사를 거치면서 수정헌법 2조에 자신과 가족, 재산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무기 소유 및 휴대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무장해 자기 목숨을 지키라고 규정해놓은 탓이다. 올해만 벌써 서른여섯 번째 교내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 잊을만하면 터지던 끔찍한 사고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
성난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다. #NeverAgain(‘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을 의미하는) 해시태그 운동의 시작이다. 동시에 ‘다음 희생자는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의 #MeNext(다음은 나인가?) 해시태그 캠페인이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대로는 총기 규제 강화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수십만 명의 인파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뀐 것은 없다.
학생들은 오늘도 죽음의 공포를 딛고 전쟁터에 나서듯 학교로 간다.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NeverAgain #MeNext #월드리포트 #워싱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