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7
오세경 작가 개인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In 아트스페이스 휴.
영화 ‘버닝’을 기억하는 몇 가지 장면들은 모두 불과 함께 등장한다.
시커먼 밤 한가운데 거대하게 불타는 비닐하우스나 용산참사의 참혹상을 그린 임옥상의 ‘삼계화택-불’을 정신없이 바라보는 주인공의 뒷모습은 불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내재된 분노가 동시에 읽힌다.
불은 존재의 소멸이자 역설적으로 존재를 가장 치열하게 증명하는 수단이며 불교에서는 육체를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지난 몇몇의 작업이 그러했듯이 오세경은 불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해석해 적절하게 작업에 녹여낸다.
아수라 Asura, 130×97㎝, acrylic on Korean paper(Hanji), 2018(사진제공: 아트스페이스 휴)
- 교미하는 뱀을 지켜보는 개, 혼란스러운 세상과 경계가 무너진 아수라장이 된 현실 -
오세경의 근작 ‘아수라’는 상어를 먹는 개가 불타는 해변에서 교미하는 뱀을 바라보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아마도 호주에서 드물게 목도되는 상어를 먹는 개의 모습과 지독하게 뒤엉켜 교미하는 뱀의 사진이 어떠한 이유에서 합성이 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도는 이 기이한 이미지의 조합은 작가가 체감하는 세상의 혼란과 경계의 무너짐의 재현에 다름 아니었다.
소환 Recall, 120×120㎝, acrylic on Korea paper(Hanji), 2018(사진제공: 아트스페이스 휴)
- 아이도 어른도 아닌, 연약하지만 스스로를 보호해야하는 이중성을 가진 여학생의 이미지 -
여학생의 이미지는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애매하게 경계에 서 있는 불안한 대상처럼 읽힌다.
약속된 상징처럼 반듯하게 입고 있는 교복은 다양성을 통제하고 과도기의 분출하는 내면을 억누르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거인 Giant 130×194cm, acrylic on Korea paper(Hanji), 2018(사진제공: 아트스페이스 휴)
그리고 때로는 ‘거인’처럼 냉혹한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무장한 전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보다 넓게 이해하자면 여학생의 이미지는 이를 위시한 여러 계층의 사회적 약자와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현실의 무게의 표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몰락 Downfall, 162×227㎝, acrylic on Korean paper(Hanji), 2016(사진제공: 아트스페이스 휴)
- 사회적 문제와 제도의 모순을 드러낸 작업들 -
‘몰락’은 플래시 카메라를 이용한 보도사진의 형식을 취할 뿐 아니라 당시 논란이 된 실제 사건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작품의 발상이 된 것은 그 즈음하여 한 남성 잡지가 내놓은 표지인데, ‘The real bad guy’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의 신체 일부가 자동차 트렁크 밖으로 나와 있어 납치와 성범죄를 연상하는 화보였다.
‘나쁜 남자’에 대한 지나친 해석과 여성의 현실적인 공포를 성적 판타지로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잡지 전량을 폐기하는 것으로 논란이 마무리됐고, 이는 작가에게 깊게 각인된 하나의 사건이 된다.
중앙에 유독 밝게 빛나는 여학생은 모종의 작업을 마치고 매무새로 정리하는 듯한 여유를 보인다.
그 뒤로 축 늘어진 맨발의 남성으로 추정되는 신체는 앞서 언급한 불온한 표지의 완벽한 전복이자 복수이다.
한편 작가 이가경이 전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그럴만한 이유들은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8월 15일부터 9월 18일까지 열린다.
에디터_장규형(ghjang@jun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