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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인터뷰

뉴욕 광고 에이전시 테리앤샌디 아트디렉터 이지인 

2018-07-26

무조건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이 좋은 광고인 시대가 있었다. 크고 진하게 브랜드를 강조하고 떠들썩하고 화려해서 한 번에 기억되는 그런 광고 말이다. 물론 그 중에는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고송을 흥얼거리며 물건을 선택하게 하는 그런 임팩트 있는 광고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문화와 패러다임이 바뀐 것처럼 광고 역시 변화했다. 

 

세계 곳곳의 문화가 모두 같진 않지만 좋은 것은 어디에서나 통하기 마련이다. 큰 울림을 주고 웃음과 재미를 주는 광고들은 떨림과 감동을 준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하는 광고를 제작하기 위해 먼 땅에서 분투하는 젊은 한국인이 있다. 뉴욕 광고 에이전시 테리앤샌디(Terri & Sandy)의 이지인 아트디렉터다. 그의 광고 이야기와 그곳에서 아트디렉터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광고 아트디렉터 이지인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뉴욕에 위치한 스쿨오브비주얼아트(School of Visual Arts, SVA)에서 광고학(Advertising)을 전공하고 현재 뉴욕 광고 에이전시 테리앤샌디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이지인이라고 합니다. 

 

졸업 전에는 뉴욕 제이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에서 아트디렉터 인턴을 했고, 한국 이노션월드와이드 멘토링 코스에서 AD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한국에서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를 3년째 다니던 중 광고와 사랑에 빠져 졸업도 하지 않고 무모하게 유학을 떠나와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이지인 아트디렉터의 작품, Save The Children

 

이지인 아트디렉터의 작품, The Container Store

 

 

광고 에이전시에서 아트디렉터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광고 에이전시에서 아트디렉터는 카피라이터와 팀을 구성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지휘하에 함께 일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실제로 집행하게 되면 그 아이디어에 맞는 매체(출판, 영상, 디지털, 소셜, 이벤트)에 맞게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필름디렉터, 리터쳐들과 함께 일하면서 비주얼에 대한 전체적인 디렉션을 하고 이를 결과물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광고 에이전시 테리앤샌디는 어떤 회사인가요?
테리앤샌디는 20년 넘게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로 일한 테리 메이어(Terri Meyer)와 샌디 그린버그(Sandy Greenberg)라는 두 여성 CEO가 시작한 광고 회사예요. 광고계에서 오직 3%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만이 여성이라는 통계가 있는데, 그런 유리천장을 뚫고 대기업에서 ‘Executive Creative Director’로 일하던 분들이 큰 오피스를 벗어나 테리의 거실에서 자기들만의 에이전시를 작게 시작해 현재 디즈니(Disney), 거버(Gerber), 크라프트(Kraft), 에이본(Avon) 등 쟁쟁한 클라이언트들을 위해 일하는 에이전시를 일궈냈죠. Ad Age에서 ‘2017 Small Agency of the Year’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나요?
저는 졸업반 때 학교에서 주최한 커리어페어에서 샌디를 만나게 됐는데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간 수많은 사람 중 카리스마 있고 강렬하게 제 작품에 대해 질문하고 꼼꼼하게 조언하는 사람이 샌디뿐이었기 때문에 큰 인상을 받았어요. 커리어페어가 끝난 그날 밤, 3명의 직원들을 통해 연락이 왔고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멘토로, 또 보스로서 존경스러운 CEO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걸 큰 행운으로 여기고 있어요. 

 

어떤 작업들을 하셨나요? 기억에 남는 작품들 소개 부탁드려요. 
뉴욕 첼시에 위치한 ‘Barba’라는 Men’s Grooming Boutique를 클라이언트로 집행한 〈Pay with Your Balls〉과 〈Strands for Trans〉, 넛버터를 만드는 마라나타(MaraNatha)라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만든 〈Too Good for Jelly〉를 들 수 있어요.

 

 

〈Pay with Your Balls〉는 전 세계적으로 콧수염을 의미하는 ‘Moustache’와 ‘11월(November)’을 합친 단어인 ‘‘모벰버(Movember)’ 무브먼트’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아이디어예요. ‘모벰버’는 전 세계 남성들이 11월 한 달간 수염을 자르지 않고 기르는 이벤트예요. 

 

이 작업은 고환암과 전립선암과 같은 남성 건강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는데요, Barba Men’s Grooming Boutique에서 11월 말에 살롱에 방문해 남성 전문의에게 고환암 체크를 받으면 무료로 멋진 헤어컷, 스타일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캠페인이에요. 남성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강렬한 캠페인이라 지금까지 제가 만든 작품들 중 가장 사랑하는 작업이에요. 제가 회사에 입사하고 파트너와 함께 처음으로 만들어낸 작업이라 더욱더 의미 있는 작업이죠.

 

 

〈Strands for Trans〉는 트랜스젠더들에게는 단순한 헤어컷이 두려운 일이 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로 LGBT(성적소수자)의 달에 만들게 된 작업이에요. 실제로 몇 도시의 바버 숍(Barber Shop)에서 트랜스젠더 남성의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쫓아냈는데 그 이유가 ‘트랜스 남성이 (자신들의 기준에는)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 머리는 자를 수 없다’거나 ‘트랜스 남성은 진짜 남성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이유에서였죠. 차별과 혐오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거예요. 

 

Barba Men’s Grooming Boutique가 Trans Flag의 컬러인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무료로 헤어 컬러링을 해주고, 직접 디자인한 플래그 컬러로 만든 간판 기둥(Barber pole) 스티커를 붙여 ‘트랜스 프렌들리’한 숍이라는 걸 알리는 작업을 했는데, 실제로 미국 50개 주에 위치한 바버 숍들이 동참해서 더 의미가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도 컬러링을 받고 캠페인에 지지를 표했어요.

 

 

〈Too Good for Jelly〉는 마라나타라는 아몬드, 땅콩 등등 넛 버터를 판매하는 브랜드의 디지털 캠페인이에요. 제품 중 대부분이 유기농인 좋은 재료에 인공 색소,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훌륭한 넛 버터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만든 캠페인이에요. 

 

미국 사람들은 ‘Peanut Butter Jelly’ 라고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동시에 식빵에 발라 먹는데, 마라나타의 넛 버터가 너무 훌륭한 나머지 젤리에 비해 ‘Too Good’하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딸기잼을 바른 식빵 한 조각이 마라나타 넛 버터에게 차여 슬퍼하는 이별 이야기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어요(더 많은 〈Too Good for Jelly〉영상은 www.jeeinlee.com/maranatha-too-good-for-jelly).

 

가장 반응이 좋았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품에 관해 기사도 많이 나고 첫 프로페셔널 어워드를 안겨주기도 했던 작품은 〈Pay with Your Balls〉이었어요. 여성의 유방암 조기 자가검진의 중요성을 알리는 작품은 많은 반면, 남성의 고환암이나 전립선암 등은 위험성에 비해 잘 다뤄지지 않았잖아요. 또, Barba와 같은 헤어 살롱에서 하기에 대범한 이벤트라 더 큰 관심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해외에서 광고 아트디렉터로서의 삶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용감하게 ‘미국에서 광고를 만들고 싶다’하고 날아왔지만 사실 어려운 점들이 없진 않아요. 어느 나라나 광고는 그 나라의 문화와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문화는 태어나서부터 직접 겪고 흡수한 것들이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죠. 그때그때 열심히 공부해서 뒤늦게라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언어적인 부분이 큰 장벽이 되기도 해요. 클라이언트 미팅이나 전화 미팅은 한국에서 일을 해도 부담이 되는 부분인데 여기선 몇 배 더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원래 조금 내성적인 성격이긴 한데, 한국에선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여기선 괜히 입을 떼기가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광고 일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보다 덜할지는 몰라도 광고 에이전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야근, 주말 출근 등이 많은데 그 점이 힘들어요.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얻기 위해 여러 에이전시가 경쟁구도로 피치를 할 때는 몇 주간 야근에 주말 출근을 하게 되는데 그때는 정말 제가 왜 건물주가 아닌지 서럽기만 해요(웃음). 

 

 

 

이지인 아트디렉터의 작품, Fox Sports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학생비자로 지내다가 졸업 후 취업비자로 변경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어요. 취업비자인 H비자는 로터리 시스템이라 정말 로또처럼 하늘에 뜻을 맡기는 거라서 저는 H1 대신 아티스트 비자인 O1를 지원했는데 백과사전 두께만큼 서류를 준비하고 추천서를 받아야 해서 참 힘들었어요. 또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몇 주 동안은 ‘이게 안되면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잠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고생했어요. 

 

가장 즐거운 순간은요?
힘든 일도 있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즐거운 때도 많아요. 가장 즐거운 순간은 그렇게 고생해서 빚은 제 아이디어를 클라이언트가 좋아할 때, 또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 세상에 공개될 때예요.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한 클라이언트와 일하게 될 때나 신기한 기법을 쓰는 광고를 만들 때에도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보람을 느껴요.

 

요즘 광고의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트렌드라고 깨달을 새도 없이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와서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SNS에서 새롭게 추가되는 기능들이나 유튜브 6초 광고, 페이스북 얼굴인식 필터, 인스타그램 스토리, 360도 포스팅, VR, AR, Live 기능 등을 이용한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 광고 제작자나 좋아하는 광고가 있으신가요?
클리오, 원쇼, 칸느 광고제 등의 수상작들을 챙겨보다 보면 전 세계의 똑똑한 제작자들이 만든 소름 끼치도록 멋진 광고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제가 가장 많이 본 광고를 소개해 드릴게요. 


Droga5에서 언더아머(Under Armour)를 위해 펠프스(Michael Phelps)를 주인공으로 만든 커머셜 〈Rule Yourself〉(https://droga5.com/work/rule-yourself/)인데요, 음악부터 영상미, 내용, 카피까지 정말 몇 백 번을 봐도 너무 존경스러운 작품이죠. ‘It’s what you do in the dark that puts you in the light’라는 카피가 나올 땐 항상 소름이 돋아요.

 

어떻게 해야 광고 아트디렉터로서 실력이나 감각을 키울 수 있나요? 
20대 중반에 광고로 전공을 바꾸면서 너무 막막해서 스스로 많이 질문했던 질문이네요. 


이곳 주변 친구들의 케이스를 살펴보면 꼭 광고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그래픽디자인, 포토그래피, 일러스트레이션, 캘리그래피 등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쌓아 많은 도전을 해보고 자신만의 특별한 이력서를 만들 때 많은 성장을 하는 것 같아요. 

 

전 세계 다른 크리에이티브들이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 ads of the world나 behance, 각종 어워드 쇼 웹사이트를 통해 계속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반드시 상을 받는 광고가 좋은 광고는 아니지만 공모전이나 해외 광고제 등에 출품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광고 아트디렉터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광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아주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1년만 더 하면 졸업인 전공을 두고 유학을 떠나게 했고, 또 인턴십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링크드인에서 일하고 싶은 회사의 직원들 이메일을 찾아 무턱대고 이메일을 보내게도 하고,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리크루터들에게 연락을 하는 등, 제 평소 성격과 잘 매치가 되지 않는 그런 용감한 일들을요. 아트디렉터를 꿈꾸시는 분들께서도 계속 이것저것 용감하게 시도하시다 보면 분명 광고를 만들기 위해 야근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 거예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이지인(www.jeein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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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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