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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뉴스

도시 속 작은 위안, 오목공원

2012-06-13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중학생은 목동으로 보내라?”
“부동산 한파 이번엔 목동…학군 수요 줄면서 집값 곤두박질”
“서울시내 중산층의 대표적인 주거지 중 한 곳인 양천구 목동”
“초고층 빌딩의 전성시대. 목동 하이페리온 주상복합”


위 내용은 ‘목동’이라는 단어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의 제목들이다.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육, 학원, 높은 집값, 아파트 등의 말들은 ‘목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처럼 중산층의 대표적인 주거지로 연상되는 목동은 과거에는 안양천이 상습적으로 범람하던 저습지 지역으로 집값이 싸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88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목동은 신시가지로 지정되고, 대규모 주택 단지가 들어서면서 예전의 가난한 동네가 중산층의 부촌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이후 2000년대부터는 평균 30-40층을 넘나드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 목동의 중심지역을 장악하면서 이제 목동은 아파트단지 뿐만 아니라 장대한 마천루의 도시로도 회자되기 시작했다.

글, 사진 | 전누리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목동을 거닐다 보면 건물마다 걸려있는 학원 간판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 학원들의 밀집은 학군 수요와 아파트 값이 연관된 목동의 상징이며, 목동이 중산층의 마을이라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중산층은 ‘부와 권력’을 세습 받은 소수의 상류계층과 다르게 과거 산업화 시대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서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경제적 지위를 획득해 온 사람들이다. 목동의 학원가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성장한 중산층이라는 사회적 지위 즉 계층의 획득과 유지가 교육자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목동은 서울의 ‘교육열’을 상징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계획된 도시, 목동

목동은 정부의 철저한 도시개발계획 아래 만들어졌다. 어떻게 구역을 나누고, 무엇을 지을지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건물 높이, 조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이 통제되고, 공간은 공원녹지, 교육, 상업, 문화, 복지, 행정업무로 나뉘어 생성된 도시였다. 이런 계획도시 신시가지 목동에서 오목공원은 상업지역의 중심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상업공간의 동선을 이어주고 직장인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었지만, 주거공간이 들어오면서 직장인만이 아닌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원으로 점차 변화했다.


오목공원 내려다보기

오목공원은 1989년에 들어선 파리공원과 함께 목동을 대표하는 도심 속 개방형공원으로 60층이 넘는 주상복합아파트와 SBS, CBS, 현대백화점 등의 고층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오목하게 골이 파인 하천’이라는 뜻을 가진 ‘오목내’로부터 유래한 공원의 이름처럼 오목하게 마천루 사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오목공원의 이러한 모습은 버즈 아이 뷰(bird's-eye view)로 살펴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공중의 시각에서 이곳은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 주변에 다른 공원이 없다는 것 등이 한 눈에 들어오며, 또한 움푹 패여 비어보이는 공간으로 보여 무엇인가 채워 넣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아니면 이 움푹 파인 공간이 마치 빽빽하고 평면적이며 기하학적인 도심 한 가운데의 공기 통로, 혹은 무언가 비어있다는 그 점으로 인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듯 한 느낌을 주었다.


오목공원, 시설 둘러보기

공원의 특별한 입구는 없다. 위 사진 같이 공원의 이름만 돌에 새겨져 있어 그 공간이 오목공원임을 알리고 있다. 이마져도 높은 빌딩 숲에 가려져 오목공원의 입구는 오히려 소박해 보여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체육시설은 목동주민들이 간편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목사이에 위치해 있어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되어 있다. 농구장은 주변 학교들의 체육수업 장소로 이용되고 있어 오목공원이 주민들의 여가 활동만이 아닌 학교의 기능을 돕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아이들의 놀이터는 노랑, 빨강, 녹색등 원색의 바닥이 탄성 고무 칩으로 마감되어 있다. 즉 모래의 거친 물성과 원시성을 아이들이 체험할 수는 없지만 엄마들의 입장에서는 안정과 위생이라는 점에서 만족을 주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렇게 오목공원은 작은 공간이지만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수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동네공원’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공원 곳곳에는 벤치와 정자, 파고라가 있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공원을 둘러보다 주민들이 직접 시계와 거울을 달아 놓은 정자를 만났다. 집안에서나 쓸법한 모양의 물건이 밖에 나와 있어 그 모습이 엉성해 보여, 한편으로는 정겨운 마음이 들면서도 어색했다. 어설픈 솜씨의 디자인 풍경이라고 할까, 정자에 걸린 시계와 거울은 비록 형태와 색채가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주민 스스로 필요한 것을 발견하고 해결한 디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공공의 시설에 대해 안방처럼 이용하고도 그 결과가 빚어내는 미감, 공공성에 대한 배려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상 점거, 차도 점거 등등을 통해 공공 영역을 개인이 이용하면서도 이용하는 주체나, 그것을 소비하고 사용하는 주체도 어떤 의문점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 일상 디자인의 한 풍경이다.

‘삶-소통’ 이라는 제목의 이 조형물은 오목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였다. 이 조형물은 서울시의 ‘도시가 작품이다’라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제작된 것으로, 창의적인 공공미술을 통해 시민들이 서울다운 멋의 향유와 자긍심을 갖도록 격려하기 위한 의도에서 설치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서울시의 의도와는 별개로 모래시계모양으로 어른 키의 약 두 배 정도로 거대하고, 금속 재질의 이 조형물은 공원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름과 조형물과의 연관성이 보인다든가 왜 작가가 이것을 삶 소통이라고 했는지 작가의 변이라도 명쾌하게 드러나야 할 텐데 그리고 시민의 입장에서는 해독이 되어야 자긍심을 느낄 텐데 이 조형물은 해석을 거부하는 추상이며, 거대하고, 차갑다.

벤치, 정자, 운동기구 등은 기능 그 자체만을 위해 설계되어 있고 게다가 집안의 거울과 벽시계까지 걸린 이곳은 오목공원을 생활공간으로서만 규정짓게 한다. 이런 친근한 생활공간에 갑자기 전시를 목적으로 한 거대한 조형물이 나타나니 자연히 이질적이고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 조형물은 예술가의 선언 하나로 그 대상이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 비평가 아서 단토의 말이 당연하다고 인식되게 한다. 이 조형물을 통해서는 일반 시민 누구도 예술의 두 가지 기능이라고 하는 감수성이나 삶의 고양, 혹은 일상적인 위로도 받지 못하고 단지 ‘예술품이 하나 있다.’라고 하는 그 사실만을 받아들일 것이다.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한 눈에 알기 어려울뿐더러, 친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단지 보는 것에만 그치는 조형물일 뿐이다. 때문에 이 미술품은 작고 소박한 공원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현대 예술의 소외성을 표출하는 것이 아닐까.


오목공원, 관계로 둘러보기

체육, 놀이 시설과 함께 공원에는 숲 속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기존의 주차장을 축소하여 녹지를 조성한 곳으로 약 10분정도만 걸으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녹음이 우거져 시원하고 편안했다. 이곳에서는 점심시간, 주변 직장인들이 간단한 식음료를 들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가족,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푸른 녹색을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목동주민들은 오목공원의 숲 속 산책로를 통해 자연을 느끼며 심신을 달래는 장소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목 공원이라도 있어 다행인 것 같아요 하는 주민의 말은 그들이 마천루나 주상 복합에서는 위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목공원에서 좋은 건 이 빌딩 숲에서 진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목동에 넓은 공원은 별로 없어요. 이렇게 작을 공간이나마 주변에 있어 녹색을 보고 푸르름을 느끼는 거죠. 오목공원이라도 있어 다행인거 같아요”

- 50대 초반 목동 주민 여성 -


오목공원에서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공간 중 하나가 중앙광장이다. 중앙광장은 주변 보다 낮게 위치하며 가운데 양천구마크가 크게 들어가 눈에 띠는 곳이었다. 양천구의 마크를 이렇게 크게 해서 시민들에게 어떤 미적 쾌감을 도출하려 했는지, 그런 의도는 있었는지, 굳이 양천구에서 했음을 이런 일차원적 방법으로 드러내야 했는지 구청 디자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공공 디자인이 한 둘이랴 하는 마음에 그냥 지나친다. 이런 식으로 아예 일상화되어 버린 황당한 디자인을 만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넌센스적인 양천구표 광장 한 켠에는 분수가 있고 분수 주변에는 두겁석이 설치되어 분수를 바라보면서 앉을 수 있었다. 이곳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은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답답한 느낌에서 벗어나 시야를 멀리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린다. 이 작은 공원에서 켜켜이 도열한 빌딩의 피로감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시야 하나로 풀어주는 것이다. 양천구 마크가 있건 없건 그것 또한 문제가 안 된다. 시민의 디자인 감각이 공공 디자인의 수준을 결정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산업화의 종착역을 이제 막 벗어난, 문화적으로 허기진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아직 문화라는 단어만 들어도 모든 것을 수용하는 수준인지도 모른다.

“오목공원은 목동사람들도 잘 몰라요. 보통 파리공원으로 착각하죠. 저는 이 공원을 자주 이용하는데 벤치에 앉아 광장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요. 목동에서는 눈만 뜨면 건물, 사람밖에 안 보이는데 그래도 여기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제 시야를 가리는 것들이 없잖아요. 넓은 광장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사람들과 약속 장소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답답한 커피숍 보다는 훨씬 좋지 않나요?”

- 40대 초반, 목동 남성 주민-


이렇게 이 작은 광장은 시민들에게 탁 트인 공간의 역할 뿐만 아니라 약속장소로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했다. 이푸-투안은 장소와 공간에 대해 그 차이를 설명했는데, 장소(place)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일컫는데 비해 공간(space)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의미가 형성되는 곳, 즉 사람들의 활동이 쌓여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처럼 오목공원은 ‘공원’이라는 장소를 넘어 주민들에게 자유분방한 삶의 이야기가 모이고 삶의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목공원에 채워져 있는 것

오목공원의 여러 시설물들은 형식적인 미감이 부족할지 몰라도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를 위한 공간의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거대한 관공서 마크가 중앙에 턱 자리하고 있어도, 집안의 벽시계와 거울이 공공장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오목공원은 더욱 복잡화, 고성능화되는 도시생활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공간으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생동감을 주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마천루의 고층빌딩 숲에서 시민들은 오목공원을 거닐며 꽃피는 나무, 푸르른 잎새, 단풍과 앙상한 가지를 보며 사철의 변화를 느낄 것이다. 이렇게 버즈 아이 뷰(bird's-eye view)로 볼 때 너무나 깊숙이 움푹 패어 있어있는 그 공간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치들과 일상의 위안으로 가득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물의 적절한 배치와 자연과의 어울림... 진부한 표현이고, 공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기본을 고수하고 있기에 오목공원은 일상적이고, 위안을 주며, 소박하면서도 넌센스 적인 디자인 요소를 품고 있는 한국 디자인의 한 단면인 것이다.


참고 문헌
조경비평 봄, 『공원을 읽다』, 나무도시, 2010
최인규, 『공공디자인 펀더멘털』, 시공문화사, 2008
손정목,『서울도시계획이야기 4』, 한울, 2009
정희재,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걷는 나무, 2010
전종현, 『목동:만들어진 도시의 꿈』, 2011 서울디자인지원센터 교육프로그램 d+d,
디자인리서치학교4: 도시의 시간
이-푸 투안, 『공간과 장소』, 대윤, 2007
이영근, 2011년 10월 25일자, 매일경제 기사, [서울 핫플레이스] 목동 공원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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