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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심상풍경(心象風景), 서울 창포원

2012-05-14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풍경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 중에서 ‘애틋함’이라는 정서에 초점을 맞췄을 때 대개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은 ‘고향’의 모습이고, 아마도 한국인에게는 다음 같이 그려질 것이다.

글 | 이주연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도시민과 전원풍경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는 한국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일반적인 고향 풍경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무언가 가슴이 뭉클해지며 아련한 상념에 빠져들게 되는데, 어휘가 가진 아름다움 때문일 수도 있지만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정겨운 풍경 때문인 것 같다. 이 풍경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책과 그림, 드라마 등을 통해 보고 기억하면서, 이 모습을 고향이라고 상정해 놓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 아닐까. 시가 펼치는 시대와 공간의 경험이 없을지라도 이 풍경은 우리에게 고향의 정감을 공유케하며, 비슷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이 풍경은 한국인에게 ‘고향’하면 으레 떠오르는 원풍경(原風景)으로 자리한다.

도시민에게 이러한 원풍경은 보편적인 이상향으로 자리한다. 정지용의 시를 부르며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삶의 공간을 떠올리는 것, 혹은 그러한 경험이 없을지라도 평화로운 전원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아마도 많은 도시민들이 품고 있는 전원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는 예증일 것이다. 고향에서 분리된 도시민의 마음속에 간직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마치 엄마 품에서 떨어진 아이의 본능적 상실감과 같지 않을까? 그러한 마음에서 사람들은 휴일이면 산을 찾아 교외를 떠돌고, 전원에서 사는 삶을 하나의 꿈이자 목표로 삼게 된 것이 아닐까?

전원 풍경은 도시민이 꿈꾸는 아름다운 삶을 대변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그곳을 일터로 삼는 농민들에게는 그다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그들에게 눈앞의 자연은 그저 생계를 위한 일터일 뿐, 미적 관조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20세기 미학자 아도르노는 「미학이론」에서 농업종사자들의 이러한 감수성을 설명하면서, 전원풍경은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향수적 이미지라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의미는 시골을 뜻하는 단어에서도 특징이 나타나는데, 컨츄리사이드(countryside)의 컨츄리(country)는 반대(countrast)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즉 이 단어처럼 전원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도시민들에게 미적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민이 꿈꾸는 전원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도시에서 재구성되고 있다. 개인주택의 정원이나 시민 모두가 사용하는 공원 등,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공간 곳곳에서 이상적 삶의 풍경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전원 풍경을 닮은 서울 창포원

공원은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촉발하고 낙후된 이미지의 개선책으로 제시되어, 도시재생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도시재생은 어둡고 버려진 땅이나 낙후된 도시가 밝고 활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말하는데, 서울 도봉구의 한편에 버려졌던 공간도 도시재생을 통해서 이렇게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창포원 부지는 원래 1986년 개통된 1호선 도봉산역(당시 누원역)과 이어 1996년에 개통된 7호선 도봉산역, 이 두 역과 중랑천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터였다. 건물과 철로에 가로막힌 이 공터는 각종 물건, 폐기물 등의 적치장소로 방치되었다. 이후 강북지역의 녹지를 확충하는 일환으로 생태공원 조성이 거론되면서, 이 공터는 지리적 장점을 가진 새로운 공원의 적지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9년 6월, 1년여의 공사 끝에 공터는 ‘서울 창포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도봉산역과 중랑천 사이에 자리 잡은 이곳은 서울시가 유일하게 공식 지정한 ‘생태 공원’이자 ‘특수 식물원’이다. 약 삼십분 정도는 성큼성큼 부지런히 걸어야 둘러 볼 수 있을 것 같은 꽤나 넓은 부지에 붓꽃원, 습지원, 약용식물원 등의 12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이 공원의 이름은 ‘서울 식물 생태원’이었으나, 진행과정에서 공원 내에 창포와 붓꽃 종류가 대규모로 식재된 후에 최종명칭이 ‘서울 창포원’으로 결정되었다. ‘식물생태원’의 기능의 지적이라면 창포원은 좀더 구체적이고 친숙하게 들리니 그 선택은 성공적인 것 같다. 창포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옷날, 선조들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창포의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까닭일 것이다. 이런 단오의 풍습은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端午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풍속화 속에는 냇가에서 여인들이 머리를 감는 모습이 있는데, 이 장면에 창포가 등장하지 않을지라도 창포는 단오와 동시에 연상되며 우리의 정서 속에 건강한 이미지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창포가 지닌 특성과 전통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이곳의 이름을 창포원으로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진짜 창포의 모습을 알고 있을까? 보통, 우리에게 창포는 붓꽃과 구분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창포는 토종꽃으로 천남성과 식물이고, 붓꽃은 외래종으로 꽃창포라고도 말하는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종이다. 창포원에 심어진 식물 중 대부분은 붓꽃과 식물에 해당한다. 때문에 공원의 이름이 ‘서울 창포원’으로 결정된 것은 어찌 보면 잘못된 것이다. 창포원 보다는 오히려 서울 아이리스 가든(Seoul Iris garden), 아니면 서울 꽃창포원이라고 아예 제대로의 이름을 붙이는게 더 합당한 듯하다.


심상풍경을 찾아서

창포원에 들어서면 멀리 수락산의 모습이 보이고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리면 초록 공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공원의 산책로에 서면 서울이 아닌 시골길에 서있는 것 같은 감상이 밀려오며, 도봉산역을 지나는 전철소리마저 시골로 가는 기차를 떠올리게 한다. 창포원은 앞에서 잠깐 언급한 한국인이 갖고 있는 원풍경과 무언가 비슷한 것 같다.

“ 나는 이 옆에 아파트에 살아. 정신없이 살다가 자식들 다 커서 내보내고 나니 적적할 때가 많지. 그래서 이 공원에 자주 나와. 나는 강원도가 고향인데, 그때는 지천이 다 이런 모습이었어. 여기 물고기랑 물이랑 보니까 옛날에 개울가에서 놀던 기억도 나. 물론 그때처럼 흐르는 물이 아니지만...... 저기 버드나무도 내 고향에 많이 있었지. 그래서 여기 오면 고향생각이 많이 나...” -창포원에서, 70대 할머니의 이야기, 2012년 4월 30일

이와 같은 반응은 공간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요소들과 그곳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관조하는 사람의 심리적인 요인들과 조우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창포원의 여러 경관 구성 요소들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원풍경을 끌어내는 단서로 제공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이처럼 원풍경을 재현하는 단서들로 채워졌다는 의미에서 창포원의 공간적 특징을 심상풍경(心象風景)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는 풍경을 관조할 때, 버드나무는 하나의 기호가 되어 그와 관련된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며 당시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창포원은 우리를 전원의 기억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곳곳에 자라는 초록의 식물과 흙길 그리고 여치와 같은 풀벌레 등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어우러져 관계 속에서 우리의 마음 속 풍경을 만들고 있다.

창포원은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한다. 시야가 확 트여있어 우뚝 솟아있는 도봉산과 반대편에 위치한 수락산을 공원의 어느 위치에서나 볼 수 있다. 도심에서는 높은 건물에 가로막혀 보고 느낄 수 없었던 산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산맥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고향풍경의 후경으로 존재했던 산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제1의 조건이다.

「붓꽃원」에는 드문드문 피어난 보라색 붓꽃이 보였지만 아직 군락에는 잎만 무성하여 그 모습이 마치 시골의 푸른 보리밭을 연상하게 한다. 꽃이 활짝 필 때면 메밀꽃 밭이나 유채꽃밭을 또한 떠올리게 할 것이다.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와 초록이 생생한 푸른 소나무 군락 또한 도심 아파트 단지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무와 꽃 사이사이로 난 곡선의 흙길은 직선의 도로와 보도블럭과는 확연히 다르다. 인체의 선을 닮은 곡선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곳곳에 자라는 작은 풀이나 꽃, 발에 걸리는 돌부리나 모래도 전원의 느낌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길가에서는 원두막을 만날 수 있는데 통나무와 지붕의 짚풀 또한 우리에게는 건축의 원 자료이기에, 시골의 원두막에서 수박을 쪼개먹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나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나 원풍경이 주는 위로와 휴식을 제공한다.

중랑천에서 날아온 왜가리는 소나무 끝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습지에는 물고기와 소금쟁이가 여유롭게 유영한다. 풀밭에서는 조그만 방아깨비와 갈색의 송장메뚜기가 뛰어오른다.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새와 곤충은 어릴 적 풀숲을 헤치며 뛰어 놀던 기억의 촉매제가 된다.


고향을 닮은 공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매해 적어도 두 번은 고향을 방문한다. 최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 이날 전국의 도로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특별하게 보이는 귀향행렬로 몸살을 앓는다. 민속학자인 홍일식은 이러한 명절의 민족대이동을 일컬어 ‘추상적 혹은 관념적인 명절행사를 뛰어넘는 한국인 특유의 절실한 생존양식의 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즉 이러한 행동은 몸은 객지에 나와 생활하고 있지만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내 존재의 근원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명절에 자신의 뿌리인 부모와 조상께 머리 숙여 감사드림으로써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행위로서 일종의 엄숙한 의식과 같다는 것이다. 대도시의 주거공간과 삭막한 환경은 사람들을 익명의 존재로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절실하게 만듦으로써, 오늘날 사람들은 존재의 근간을 찾아 어렵더라도 고향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김열구의 책 「꿈엔들 잊힐리야」에서는 시골마을은 모두 우리의 고향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은 집단적 의식과 무의식의 모태로 우리의 인성과 문화를 동시에 길러낸 터전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기 이전에 우리 한국인의 문화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고향을 닮은 자연은 도시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로의 대상이자 해방구일 것이다. 옛정이 담긴 고향의 푸근한 정서가 도시에서 찌든 상흔을 깨끗이 씻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고향을 닮은 창포원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귀향본능의 심리적 갈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원풍경 요소인 산, 꽃과 나무, 쉼터, 곤충과 새. 대부분이 자연이다. 어떤 공간 디자인이건 사실 이런 자연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이용하느냐의 문제부터 출발해서 시작했다면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환경병, 도시병은 어쩌면 그 본질을 달리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공원에서는 옥외 공간 디자인의 흔한 아이템인 가로등, 벤치, 사인 등의 시설물보다는 자연의 배열이 주는 편안함 혹은 그 지향성이 더 미덕으로 다가오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원풍경 요소를 제대로 배치하고 가꾸는 디자인이 현재 진행 중인 생태디자인의 본질이기에. 여기에 우리의 인공적 솜씨인 벤치, 관리소 등의 외형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좀 재미없어 진다. 원풍경 요소들의 그 조형성이나 생태성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형태며 색채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풍경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도시 속 자연풍경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풍경과 닮은 점을 찾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의 시각과 감성에 따라 풍경은 달리 느껴지겠지만,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그 아름다움에 동의하는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며, 더 자세히 말하면 도시생활에서 함께 할 수 없는 전원풍경이 아닐까? 그렇기에 마치 그런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공원, 창포원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넘어 마음의 위로를 받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조경비평 봄, 『공원을 읽다』, 나무도시, 2010
나카무라 요시오, 『풍경의 쾌락』, 효형출판, 2007
강영조, 『풍경에 다가서기』, 효형출판, 2003
이영범, 『도시의 죽음을 기억하라』, 미메시스, 2009
김용기, 최종희 『신의 정원 에덴의 정치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김열구, 『꿈엔들 잊힐리야』, 호영출판사, 2006
아도르노, 『미학이론』, 문학과 지성사, 1994
홍일식, 1990년 2월2일자 경향신문 칼럼
홍형순 외, 『청주시의 심상풍경 형성요인과 공간 행태에 관한 연구』,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1999
블로그 <펜펜의 나홀로 여정> http://leeesan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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