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시는 드로잉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500년 경 피리울리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작업 노트입니다. 보시다시피 글자가 뒤집혀 있습니다. 이 작품은 거울에 비춰야만 읽을 수 있습니다. 다 빈치는 이처럼 거울글씨나 양손글씨와 같은 독특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오후 3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1층에서는 도슨트(지식을 갖춘 안내인)의 그림설명이 한창이다. 지난 12월 9일부터 오는 2월 26일까지 이곳에서는 문화관광부와 주한 독일대사관의 후원으로 르네상스전시위원회가 주관하는 “르네상스 바로크 회화 걸작전”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
16세기에서 18세기 서양의 미술사조는 크게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이렇게 세 가지로 특징지어진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완벽한 ‘원근법', ‘빛', 그리고 ‘감정을 표현한 사실적 인물묘사'로 대변되는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시대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틴토레토, 귀도레니, 사키, 조르다노, 디치아니와 같은 거장들의 유화 및 드로잉 96점을 감상할 수 있다.
관계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평일 500명, 주말 1000명가량의 관람객이 전시회를 찾고 있으며, 유화의 30% 이상이 성화인 관계로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미술 애호가와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학교 숙제와 관련해 초·중·고생들의 발길이 잦아져 앞으로는 관람객의 수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또한, 관계자는 “오전 11시, 오후 3·5시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도슨트들의 자세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어, 기초 지식이 없는 초보 관람객은 물론이고 미술 애호가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다. 아마도 예술작품 속에는 창작 당시의 문화, 의식, 경향과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술작품의 가치는 멈추지 않는다.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위풍당당하게 그 품위를 보존하고서는 작품을 접하게 될 후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은근한 혹은 살인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예술작품은 감상자를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사로잡기도 하거니와 작품 속에 반영된 과거의 진실 혹은 거짓을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후세대들은 이를 통해서 과거의 사실을 유추해냄과 동시에 현재를 되돌아보기도 미래에 대해 예측하기도 한다.
16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이 21세기 댄 브라운의 상상력에 밑바탕이 되어 소설 ‘다 빈치 코드'를 탄생시켰듯이, 때로는 아주 오래된 작가의 작품이 가장 최근의 작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예술은 창작과 동시에 다음 시대의 예술과 문화는 물론이고 먼 미래의 예술과 문화와도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음악을 여전히 사랑하는 클래식 애호가가 존재하는 이유도, 영화학도가 뤼미에르 형제를 배워야 하는 이유도, 펑크음악 마니아들이 여전히 섹스피스톨즈의 음악을 듣는 이유도, 박지원의 허생전을 교과서에서 접하게 되는 이유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최고 화두는 ‘논술'이다. ‘많이 읽고, 보고, 생각하고, 써야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닫힌 교실에서 벗어나 열린 미술관을 찾아가 거장들의 미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대화를 나누며 생각의 나무에 상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논술교육이 되지 않을까?
노순영 기자 leina1004@pla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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