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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일본 도쿄 下- 애니메이션 같은 ‘지브리박물관’

2005-04-20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박물관행 셔틀로 노란색 고양이 버스가 등장하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기존의 박물관과는 달라도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메이와 사츠키의 친구였던 일명 고양이(네코)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지브리만의 꿈과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최근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일본 ‘아니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그 곳이 자못 궁금해졌다.

미야자키 만화 주인공이 모두 여기에

미타카의 조용한 숲 속에 자리한 지브리 박물관의 외관은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독특한 디자인의 석조 건물이다. 옥상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거신병 로봇이 지브리의 상징물처럼 위세 등등하게 서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고, 한 쪽엔 커다란 토토로 인형이 반갑게 인사하며 표를 건네줄 것만 같은 모형 매표소를 만들어 놓아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 지브리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예약 바우처를 제시하고 입장권을 받아야한다. 입장권은 지브리의 실제 영화 필름 세 컷을 잘라내어 만든 것으로 너도나도 밝은 곳에 비추어보면서 어느 장면인지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에까지 신경을 쓴 흔적은 박물관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토토로를 비롯한 만화 주인공의 모습이 새겨진 오색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그리고 천장에도 꽃과 과일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유심히 보면 마녀배달부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옥상으로 통하는 나선형의 긴 계단이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엘리베이터도 영화 속 어느 장면에선가 본 듯 친숙하고 낯설지 않다. 박물관 여기저기에서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지브리가 숨겨놓은 소박한 재밋거리를 찾아내는 사이, 어느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속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영화가 되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미야자키의 바람이었다고.

만화의 역사와 제작과정을 한 눈에

애니메이션 전문 박물관답게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제작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꾸민 3개 층의 전시관에는 일러스트와 콘티, 필름, 영사기 등 수많은 만화 관련 자료들과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각기 다른 테마의 방을 넘나들다보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박물관이라는 딱딱한 표현을 쓰기도 무엇한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박물관에서 흔히 보는 관람 순서 유도 표지라든지, 하다못해 ‘손대지 마시오’ 같은 금지 팻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방문객들로 하여금 정해진 코스를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고 자유롭게 만져보고 느끼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를테면, 조금 전까지 누군가가 작업을 마치고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책상 위에 연필과 스케치한 그림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스케치한 캐릭터와 밑그림들을 덕지덕지 붙여놓는 식이다. 덕분에 재현해놓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만져보면서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을 더욱 생생히 실감할 수 있다.

특별 전시관에는 지브리와 기술 제휴를 하고 있는 픽사(PIXAR)의 모든 것이 전시돼 있는 픽사 홍보관이 있다.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인크레더블’ 등 픽사 애니메이션에 관한 모든 것이 밑그림에서부터 3D작업까지 총 망라돼 있다.

만화 속 세상이 현실이 되는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진다는 마술 같은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저것은……. ‘이웃집 토토로’의 네코 버스가 아닌가. 마음껏 올라타고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커다란 봉제인형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버스는 일곱 살 미만 어린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박물관에서 아이들이 가장 신나하는 장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버스 속으로 들어가서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보거나 푹신한 고양이 다리에 올라타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또 하나,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100명 정도가 앉을까 말까한 지하 미니 극장에서 매시 15분마다 세 편의 만화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주로 지브리의 작품을 상영하지만 이날은 픽사의 작품이 선택됐다. 대부분 촌철살인의 묘미가 있는 단편작들로 기지가 넘치고, 중간 중간 웃음의 요소가 많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처음 들어서면 영화관답지 않게 창이 크고 환한 점이 다소 의문스러워 보이는데, 관객들이 모두 자리를 찾아 앉은 후에야 비로소 모든 창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어두워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 역시 어둠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사고를 막기 위한 미야자키 감독의 배려라고 한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본 후에는 ‘엄마, 도와주세요’라는 재미있는 간판을 달고 있는 기념품점에 들러 나만의 보물을 찾아보자. 지브리 박물관에서만 살 수 있는 캐릭터 인형과 기념엽서, 액세서리들로 가득하다. 야외 카페에서 간단한 스낵과 커피 한 잔을 하면서 감동의 여운을 길게 남겨보는 것도 좋다.

매 작품마다 깊은 철학과 감동을 담아내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처럼 박물관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따뜻한 철학은 온전히 녹아있다. 비록 그는 이곳에 없어도 구석구석 그의 손길과 정성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영화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지브리’의 의미처럼 뜨거운 창작 열정이 가득 담긴 지브리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취재협조=일본 국토 교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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