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1
반갑습니다. 저는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입니다. 오늘 제가 강연할 주제는 ‘저널리즘’ 입니다. 이 주제를 여러분과 쉽게 소통하기 위해 제 경험을 예로 들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20년이 넘는 동안 저널리즘에는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 저널리즘 환경의 변화들 그리고 오마이뉴스를 운영하며 느낀 것 등 제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며 이런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강의ㅣ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정리 ㅣ 신혜란
창간 매체 1 – 연애편지
제가 인터넷 신문을 운영한다고 하면 흔히 도시에서 태어나 교육 받은 세련된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50가구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입니다.
저의 어릴 적 꿈은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꿈을 제게 심어준 사람은 농촌 소설가 김유정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김유정의 소설
<봄봄>
,
<동백꽃>
을 읽어 보셨나요? 소설의 내용은 주로 시골의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저도 소설가가 되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글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유정 소설을 읽으며 저는 그의 문장력이 연애편지 쓰기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록주라는 기생에게 반해 연애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소설가가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저도 그를 따라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김유정에게 연애편지가 소설가로서의 출발이었다면 저에게 연애편지는 최초의 저널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영원히 저장해 놔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편지를 필사해 놓았고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애편지를 쓰면서 가슴이 진하게 울리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내 가슴을 울리는 매체. 적어도 매체를 창간하려면 그때의 연애편지처럼 자신의 가슴을 울리는 매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제 스마트폰에는 저의 첫 연애 편지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일을 할 때 가슴이 뛰지 않으면 이 사진을 봅니다.
창간 매체 2 - 불법 유인물, 대자보
저의 두 번째 창간 매체는 제가 대학생 시절 만든 불법 유인물, 대자보 입니다.
여러분 연애편지와 대자보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첫째, 목숨 걸고 쓴다.
둘째, 졸지 않는다.
셋째, 원고료가 없다.
넷째, 독자 대상이 분명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필자의 모든 것을 바쳐 쓴다는 것입니다.
저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1983년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안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주위에서 ‘한가롭게 무슨 소설이냐’, ‘지금은 허구의 세계를 창조할 때가 아니다’ 라고 대부분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 후 3개월 만에 소설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은 사실을 기록하는 글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절에는 사실을 기록할 만한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대자보. 불법 유인물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유인물을 쓰는 것은 감옥에 가는 행위였습니다. 대자보를 쓰는 것이 위험한 행동인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제 마음을 움직였기에 저는 대학시절 내내 유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사회에 진출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저는 다음 세 가지를 자문자답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가?
두 번째, 이 일을 잘하는가?
세 번째, 지속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사회적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주위로부터 격려와 찬사가 있을 것이나, 그 반대라면 반응이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더 성장하면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창간 매체 3 - 월간
<말>말>
세 번째로 제가 창간한 매체는 월간 ‘말’이었습니다.
당시 이것은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매체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매체야 말로 말 다운 말을 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찾아 갔습니다.
입사해서 수습기자로 일을 하면서 월급도 적고, 관리도 엉망인 회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KBS 기자, 조선일보 기자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이름만 들어도 알아주는데, 월간 ‘말’지 기자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곳에서 12년이란 긴 시간을 근무했습니다. 저의 정체성과 잠재성을 충분히 발휘해 주는 매체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기사 중 90%이상은 제 스스로 기획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이처럼 제가 쓴 대부분의 기사들은 쓰레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수 많은 기자들 중에서 편집국에서 기획한 기사가 아닌 본인 스스로 뛰는 가슴을 안고 일하는 기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저는 이 곳에서 제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말’지에서 7년 정도 근무를 하니, 권태기 라는 것이 찾아왔습니다. 나와 ‘말’지는 변함이 없는데 시대가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세계화 시대, 정보화 시대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조선일보 1면에 “산업화 시대에는 늦었지만, 정보화 시대에는 앞장섭시다. 조선일보가 이끌겠습니다”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의 마음과 자세는 진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진보적인 어떠한 계획도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혁신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해외로의 확장, 워싱턴 특파원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회사는 해외 사무실을 설치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 국외 생활과 업무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하여 사장님께 제안했고,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 계약서는 제 인생을 바꾼 또 하나의 사건으로 연애편지와 함께 저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멈춤과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가슴이 뛰지 않을 때, 대충 그 뛰지 않는 가슴을 가지고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춰서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물론 다른 길을 택할 때에는 현실적 장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를 혁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길이 파격적이더라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간 매체 4 – Oh! my news
사실 월간 ‘말’지는 제가 창간한 매체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제가 열정을 가지고 기획하고 쓴 기사이기에 저는 아직도 그 글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조선일보나, KBS 등 큰 언론사에서 시작을 했다면 오마이뉴스를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대와 무시를 받았던 작은 언론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저의 다음 진로는 명확해질 수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대기업 언론사에서 쓴 기사는 질이 높다고 생각하고, 중소 매체가 쓴 것은 질이 낫다고 생각할까? 왜 시민들은 적극 참여하지 않고 완장을 찬 기자들만 글을 쓰는 것일까? 시민, 학생 등 지위여부 큰 매체, 작은 매체 등 규모의 크기를 떠나 오직 기사의 질 만으로 판단할 수 없을까? 제가 월간 ‘말’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생각했던 이런 고민들은 오마이뉴스를 창간하는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오마이뉴스를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의 리포트 과제였습니다. 미국에서 특파원을 하고 있을 때, 한 교포기자가 저에게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석사과정에 들어가 매체 창간론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 때 교수님께서 앞으로 어떤 매체를 만들고 싶은지에 관한 과제를 주었는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작성한 것이 바로 오마이뉴스의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저는 앞에서 “뉴스는 기자를 뛰게 하고, 더 좋은 뉴스는 기자의 가슴까지 뛰게 한다”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개념을 그대로 오마이뉴스에 적용 시켰습니다. 저희 회사에 열성적인 시민 기자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새벽에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보고서는 경기에 관한 분석과 결과를 기사로 작성해 실시간으로 올려 주었습니다. 만약 이 기사를 축구를 싫어하는 전문 기자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떨까요? 새벽에 경기를 놓치지 않고 세밀한 경기 분석까지 하는 열정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 시민기자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뛰는 열정이 있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께 말씀 드린 연애편지, 대자보, 월간 ‘말’지, 오마이뉴스까지 제가 거친 매체는 모두 가슴이 뛰는 것이라는 연속선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저널리즘, SNS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시대, SNS 시대의 새로운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저는 카카오톡, 트위터 등 다양한 SNS를 한 단어로 실핏줄 언론이라고 표현합니다. 실핏줄 언론의 장점은 “생존 비용 마련에 정력을 허비 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매력은 제한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트위터의 경우 140자 이내로 글을 씁니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역설입니다. 저널은 적당한 길이와 내용으로 작성되어야 하는데 트위터 상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제가 단행본을 두 권 냈습니다. 처음 출판한 단행본은 집필하면서 트위터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홍보했습니다. 그런데 트위터를 하다 보니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어서 피곤한 면이 있었습니다. 노력한 시간만큼 SNS가 가져다 주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은 SNS와 거리를 두고 북 콘서트로 시민들과 소통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두 권의 책 모두 비슷한 부수의 판매로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과연 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저는 새로움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움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적절히 대입시킬 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재미를 웹 상으로 옮겨 놓았을 뿐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창간한 오마이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언론에 대입 시켰을 뿐입니다. 친구라는 관계, 참여 민주주의라는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진 것입니다. 이러한 예처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변화와 연속성의 이중주가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움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저널의 속성을 두 가지로 정의 하면,
첫째, 인간이 미디어에 소비하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둘째, 사실과 진실은 꼭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또한 진실된 기사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널리즘이 지니는 영원하며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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