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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리뷰

겨울의 영웅, N-3B 파카에 관한 이야기들

무신사 | 2015-11-27


코트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 해 ‘뼈가 시린’ 겨울을 보내면서 다짐까지 했다. ‘내년에는 반드시 든든한 헤비 아우터를 새로 장만해야지!’ 그리고 어느덧 서늘한 계절이 다시 돌아왔고, 월동준비를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에디터의 관심은 N-3B 파카에 있다. 도시의 겨울을 이겨내기에 가장 든든한 옷이기도 하거니와, 고유한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신상품 목록이 하나 둘 넘어오면서부터 살펴봤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 것. 도대체 어쩌다 이런 옷을 우리는 입게 되었을까? 그래서 뒤를 밟았다. 두툼한 파카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충전재만큼이나 두툼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기사제공 | 무신사


1945년, 미 육군에서 비행임무를 지원하는 에어크루(Aircrew)를 위한 재킷을 만든다. 유틸리티 재킷인 N-3 타입의 헤비 아우터로, 이것이 1950년대 말까지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N-3B’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태초의 N-3B 파카는 영하 51℃에서도 문제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끔 설계된 외투다.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의 엉덩이를 덮는 3/4 길이로, 나일론 트윌 직물로 만든 겉감에는 4개의 유틸리티 포켓(Utility Pocket)을 달았으며, 안으로는 울 파일 소재를 두툼하고 조밀하게 채웠다. 그리고 털을 두른 후드를 덧붙여 칼바람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게 했다.


N-3B 파카의 또 다른 이름은 ‘스노클 파카(Snorkel Parka)’다. 흥미로운 점은 영어로 스노클(Snorkel)은 잠수할 때 입으로 숨을 쉴 수 있도록 물 밖으로 내어놓는 관을 뜻한다는 사실. 둘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N-3B 파카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면 후드의 절반까지 잠글 수 있었다. 이는 ‘장난이 아닌’ 한기로부터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최소한의 시야 확보를 위한 공간만 남겨두고 감싼 것이다. 그 모습이 잠수부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스노클 파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제와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지퍼를 채우고 활주로로 나서야 했던 이들의 마음은 그리 기쁘진 않았을 것 같다.


돌아보면 군대가 그리 나쁜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 몸을 든든하게 감싸주는 훌륭한 겨울 아우터들 대부분이 군대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한해서 그러하다. MA-1 재킷은 1940년대에 전투기 조종사들을 위해 만든 플라이트 재킷(Flight Jacket). N-3B와 ‘형제지간’인 N-2B는 미 공군에서 태어난 파일럿과 에어크루를 위한 옷이었다. 경우가 좀 다르긴 하지만 M-65 피쉬테일 파카(Fishtail Parka)는 미 육군이 한국전 참전 당시 유용하게 입었던 M-51의 먼 동생격의 외투다. 이들 중 오늘날 우리 머리 속 ‘파카’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옷은 단연 N-3B이다. 태어나기론 제일 막내이지만, 형보다 든든한 겨울 아우터로 이미 자리매김 단단히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 정부가 만들어둔 군수 물자는 ‘과잉 생산’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N-3B 파카도 그 리스트에 있었다. 이는 저렴한 가격에 군용 물품 판매점을 통해 판매되었다. N-3B 파카는 그렇게 울타리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곳에서 살 수 있는 N-3B 파카는 ‘국방색’ 세이지 그린(Sage Green) 컬러가 전부였다. 하지만 베이직한 N-3B 디자인은 다양하게 카피되어 팔렸다. 전쟁통을 겪은 옷에 대한 믿음을 논하거나 스카이라인(Skyline), 서던애슬레틱(Southern Athletic), 랜서(Lancer), 그린브리어(Greenbrier), 워크룸포디자이너스(Workroom for Designers),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 아비렉스(Avirex)와 같은 다양한 오리지널 생산 브랜드를 논하기 전에 일단 따뜻하니까.


전후 유명세를 이어받은 N-3B 파카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나름의 황금기를 보냈다.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를 테면 ‘암흑기’를 마주하게 된다. 공부벌레나 괴짜들이나 입는 옷이 된 것이다. 잘나가던 옷의 추락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트레인스포터(Trainspotter)’. 영국에서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찻길 주변에 우두커니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기차의 번호를 그저 취미로 수집하던 이들이 애용했던 옷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카의 또 다른 말인 ‘아노락(Anorak)’은 오늘날까지 ‘괴짜, 멍청이’와 같은 의미로도 통한다.) 아무튼 1980년대의 N-3B는 ‘패션 테러리스트’나 입는, 조롱감이 되기 딱 좋은 옷이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펑크록(Punk Rock) 광풍이 몰아친 영국과 미국의 인디 씬(Indie Scene)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이들이 밀리터리룩을 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록큰롤 좀 하는 형들은 ‘괴짜, 멍청이’의 모습을 자처하기도 하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받들었던 젊은이들이 하나, 둘 N-3B를 구해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제 중년이 된, 과거 황금기에 N-3B를 즐겨 입었던 어르신들의 향수를 자극하게 된다. 다시금 N-3B 파카가 대중적인 겨울 아우터가 된 것이다. 이후 2000년대 전후로는 힙합 씬에도 영향을 끼쳤다.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커다란 N-3B 파카에 팀버랜드 워커를 신은 랩퍼들의 모습을.


그리고 2010년대가 왔다. 유행과 퇴물, 다시 ‘핫’한 아이템이 되는 패션의 ‘유행 사이클 이론’을 충실히 따르는 동안 N-3B 파카는 어느새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는 겨울 외투가 되었다. 그리고 클래식 스니커즈가 그러하고, 스웨트셔츠가 그러하듯 N-3B 파카에도 여러 가지 변형들이 등장한다. 소재와 충전재, 디테일, 패턴, 실루엣 등 ‘옵션’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새롭게 한 N-3B 파카들이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수 많은 N-3B 파카 중 충분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들을 다음 장부터 소개하겠다.

LIFUL MATER POCKET HERRINGBONE DOWN PARKA 388,000원
검은색 헤링본 소재로 고급스러운 인상을 더한 N-3B 파카. 몸판은 프리미엄 덕다운을 충전재를 후드에는 라쿤 퍼 트리밍과 마이크로 퍼 라이너를 이용하여 훈훈하게 몸을 감싸준다. 라이풀 헤비 아우터의 특징인 포켓은 파카의 안팎으로 총 10개가 자리하고 있다. 준수한 디자인에 세세한 디테일, 그리고 우수한 기능성을 갖춘 고급 헤비 아우터다.

VIVASTUDIO HEAVY DOWN PARKA 348,000원
클래식한 N-3B의 디테일을 유지하면서도 비바스튜디오만의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한 아이템. 발수가공을 거친 밀도 높은 옥스퍼드 조직의 폴리에스테르 원단으로 겉감을 만들었다. 활동성을 위해 래글런 형태의 소매를 적용했고, 입었을 때 여유감이 느껴지도록 패턴을 수정했다. 안으로는 420g 고중량의 덕다운을 깃털 8, 솜털 2의 비율로, 별도의 다운백에 섹션을 나누어 넣은 세밀함이 돋보인다.

ESPIONAGE 15' COLBY DOWN PARKA 349,000원
조금 더 터프한 N-3B를 찾는다면 에스피오나지의 제안에 주목해보길. 브랜드의 겨울 시그내처 아우터라 할 수 있는 콜비 시리즈의 핵심 요소를 유지한채 실루엣을 조정하여 보다 남성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발수가공 원단과 다운 충전재의 세심한 적용은 에스피오나지에서도 기본 사양. 넉넉한 수납 공간도 기본이다. 입었을 때 보다 여유로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패턴을 수정했고, 등판에 액션 플리츠를 더해 활동성을 개선했다.

WOOLRICH ARCTIC ANORAK ARCTIC ROYAL 699,000원
울리치라는 이름 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다.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크틱 아노락은 아크틱 파카보다 총장이 짧아 활동적인 이들에게 제격. 빈티지 파카의 베이직 스펙이라 할 수 있는 6대 4 비율의 코튼-나일론 합섬 소재로 탄탄한 아웃쉘을 완성했고, 덕다운 충전재 역시 겨울 추위가 두렵지 않도록 '빵빵하게' 채워 넣었다.

CARHARTT WIP TRAPPER PARKA ECLIPSE 328,000원
심플하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춘 디자인. 면과 폴리에스테르를 섞고 코팅 처리까지 거친 원단으로 겉을 감싼 파카는 겨울철 생활 방수 기능을 갖추었다. 속은 폴리에스테르로 채우고 안감으로는 보아털 소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포근한 착용감을 보인다. 소매의 팔꿈치 부분에는 코듀라 소재로 패치를 덧대어 내구성까지 꾀하였다.

CRITIC HEAVY DUTY PARKA 359,000원
다양한 N-3B 타입의 파카들 사이에서 크리틱의 헤비 듀티 파카는 스포티한 인상으로 튄다. 패널링, 패치 등의 장식법을 다양하게 적용한 겉모습이 인상적인 파카. 물론 '방한'이라는 기능에 있어서도 아쉬움이 없는 아이템이다.
BROWNBREATH WILL PARKA 169,000원
심플하게 디자인한 브라운브레스의 윌 파카. 맑은 블루 컬러는 겨울철 옷차림의 폭을 넓혀준다. 가볍고 보온성 역시 우수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둥그런 실루엣을 만들었다.

SWIB MATTERHORN 3X 328,000
캐주얼형 아웃도어를 지향하는 스위브의 아웃도어 유틸리티 파카. 우수한 보온성을 기본으로 하이포라 코팅 원단과 핫 멜트(Hot Melt) 포켓, 위빙 테이프 디테일 등 다른 브랜드에서 볼 수 없는 디테일을 갖추었다.
PLAC LONG HOODED PARKA 199,000원
플랙이 만들면 N-3B도 도회적인 모습이 된다.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매끄럽게 정리한 실루엣과 디테일이 돋보이는 파카. 일상적인 옷차림에 다양하게 쓰일 아우터다.

SCHOTT NYC N-4B Slim Fit Parka 279,000
쇼트 뉴욕은 N-4B라는 이름으로 파카를 만들었다. 고유한 헤리티지를 지닌 브랜드 답게 클래식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동양인의 체형에 맞는 핏으로 만들었다는 점도 이목을 끄는 포인트다.
FRIZMWORKS N3B PARKA 258,000원
한눈에 봐도 든든하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은 세심하게 '밀어 넣은' 덕다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좋은 소재와 부자재를 골라 꼼꼼하게 만들었다.


관련링크 : 무신사 ‘2015 아우터 페스티벌’ store.musi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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