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 2015-11-05
디자이너들은 늘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 물음에 절대적 기준이란 없으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해답은 극명하게 달라질 수도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되풀이됐던 난제를 두고 로우로우는 ‘기능미’라는 자기만의 정의를 내렸다. 사물 본연의 순기능에 집중한 가방다운 가방, 신발다운 신발. 신발끈 하나까지도 사용된 이유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로우로우만의 독자적인 디자인 철학이 11월 무신사 스토어에서 발현된다.
기사제공 | 무신사
모든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다
로우로우의 오너 디자이너 이의현은 브랜드 론칭 전부터 패션계에 오랜 기간 종사해온 베테랑이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금까지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패션’이라고 한다. 빠른 트렌드 변화, 다각화되는 감성 등을 따라잡기 어려웠으며 도메스틱 브랜드를 운영하는 동년배의 디렉터에 비해 멋이 둔화된 것 같다는 자체 평가가 그 이유였다.
자신만의 주특기를 터득하기 위해 눈을 돌린 분야는 가구와 자동차 등을 다루는 산업 디자인이었다. 좋은 디자인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아이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사물의 순기능을 추구함으로써 우러나는 ‘기능미’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첫 번째 컬렉션의 대상은 ‘가방’으로 정했다.
로우로우가 가방을 만들며 가장 먼저 행한 일은 드는 것, 담는 것, 보호하는 것 등 세 가지 본질적인 측면으로 가방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핸들, 포켓 등 모든 디테일은 사람의 습관이나 동선을 연구하여 디자인과 위치를 선정했으며 가방 깊숙이 있는 물건까지도 볼 수 있도록 안감은 빛 반사가 잘 되는 화이트 컬러를 적용했다. 이 외에도 소재, 컬러, 부자재 등 가방 안의 모든 디테일에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존재 이유를 부여하며 가방 전문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기능미의 최종 장벽, 스니커즈
자기만의 색을 뚜렷하게 갖춘 로우로우는 숙원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스니커즈’에 도전했다. 이미 예전부터 가방보다 기능 요소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스니커즈를 꼽았으나 공화학과 연관된 복잡한 프로세스, 만만치 않은 개발 비용 등의 한계에 부딪히며 몇 차례 좌절을 한 적도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생산을 맡아줄 공장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생산 파트의 고민은 우연한 기회로 손쉽게 해결됐다. 로우로우 스니커즈 최고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SGX를 만난 것. SGX는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생산한다’는 것을 모토로 글로벌 브랜드 기능성 슈즈의 제조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공장이다. 로우로우가 기획한 스니커즈의 기능미를 100% 이상 구현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로우로우는 하나의 스타일과 컬러 기준으로 1,000족의 생산량을 꾸준히 맞추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공장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풋배드에 SGX의 이름을 크게 새겨 넣으며 파트너십을 다지는 계기도 마련했다. 최고의 자재와 최고의 기술력을 10만원 초중반 대의 가격으로 집약시킨 그 원동력은 두 회사간의 진정성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무에서 유를 창조, 알 슈의 탄생
로우로우는 에디션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별다른 레퍼런스 없이 사물의 본성 즉, 최초의 원형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 이러한 의도에서 브랜드 이름 또한 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로우(Raw)를 사용했다고 한다. 스니커즈의 제작 역시 고무신의 토가 뾰족하게 올라온 것처럼, 나막신이 공중에 뜨도록 설계된 것처럼 멋보다는 기획의 이유, 논리적 디자인에 더 치중했다고 전한다. 그 배경에는 물론 로우로우답게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본질적 접근법이 짙게 깔려있다.
우선 신발은 하루 중 10시간 이상을 착용할 수도 있기에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안감, 겉감, 쿠션으로 이뤄진 갑피를 하나의 레이어로 대체했으며 형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특수 처리를 했다. 그 결과 무게를 200ml 우유 한 팩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220g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극세사로 이뤄진 마이크로파이버에 방수 코팅을 해 물은 들어오지 않고 공기만 갑피를 투과할 수 있도록 신경 쓴 것도 돋보인다.
신발끈에도 왁스 코팅을 적용해 끈이 쉽게 풀리지 않는 동시에 물을 튕겨내도록 기획했다. 풋배드는 메모리폼 기능을 가진 소재를 사용해 신을수록 발의 형태에 꼭 맞춰지는 착용감을 선사했다.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들어가는 쿠션은 60년 전통 최고의 기능성 부자재 비브람을 사용해 기능성은 강화하고 가격대는 적정선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스니커즈의 필수 요건은 아이코닉 모델
스니커즈로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디자인보다 지속 가능한 아이코닉 모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로우로우는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지 않고 첫 번째 모델인 100, 110에 이어 소재를 가죽으로 교체해 시크한 감성을 담은 흑백 에디션을 선보였다. 모델명은 소재 변화를 의미하는 ‘1’을 더해 101과 111으로 이름 지었다. 로우로우 고유의 제품번호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죽은 천연이 아닌 인조다. 하지만 평범한 인조가죽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퀄리티의 소재를 사용했다. 가죽의 섬유질과 거의 흡사해 습식, 건식 등의 기능을 모두 갖췄으며 오히려 천연가죽의 단점인 통기성까지 보완할 정도. 냄새도 없으며 친환경적인 부분에서도 로우로우의 취지와 잘 맞는 것 같아 소재를 결정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가죽보다 좋은 인조가죽을 만들자’는 회사의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겉으로 느껴지는 광택이나 조직감 모두 고급 아아템과 다름없다는 점도 결정적 선택 요인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수입 원사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의 기술력을 잘 발휘한 스니커즈라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서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
발을 편안하게 보호해주며 최상의 착용감을 주는 신발. 그 기획 취지에 맞게 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도 진행했다. 뮤지션, 숍 스태프, 목수, 바리스타, 요리사, 간호사, 교사, 안내원 등 절반 이상의 근무 시간을 서서 보내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서포트를 하는 방식이다. 출퇴근길 전철과 버스에서 발의 피로를 호소하는 모든 사람들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첫 번째 캠페인은 서서 일하는 사람, 서서 공연하는 사람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다뤄졌다. 에이랜드, 센트럴포스트, 폴더 등 편집숍의 숍 스태프들과 글렌체크, 쏜애플, 구남과여라디이스텔라, 더칵스 등의 록 밴드가 등장해 발과 그들의 일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했다.
로우로우는 알 슈를 신더라도 기록 향상에 도움을 준다거나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 되지 못한다고 거듭해서 말한다. 오로지 많은 사람들의 발이 편하길 바라는 신발의 순기능적인 측면에서 가장 멋지지 못해도 가장 멋진 일상화로서 명확히 포지셔닝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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