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 2015-09-11
오랜 기간 제일모직에서 브랜드를 디렉팅하며 검증된 디자인 감성,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레이블 에이치에스에이치(Heich Es Heich)의 빠른 입지 안정화. 디자이너 한상혁은 대기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부터 오너 디자이너가 된 지금까지도 올곧게 승승장구하고 있다.
기사제공 | 무신사
허나 그에게도 이루고픈 소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스트리트 캐주얼웨어의 론칭. 10~20대 영 타깃을 대상으로 팬 층을 확대하는 동시에 캐주얼까지 다양한 감성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회사인 에이치컴퍼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5년 하반기, 그 숙원은 에이치블레이드(Heich Blade)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며 무신사 스토어까지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사실 그의 영 타깃 브랜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스냅백을 메인 아이템으로 내세운 다스블레이드(Das Blade)를 선보인 바 있다. 한상혁은 스냅백 뿐이었던 아이템 카테고리의 한계점과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쳤다는 스토리텔링 연속성의 부족함을 느끼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작업에 나섰다.
그 해결방안으로 단발성 아이템 발매가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1년에 4회의 타임 스케줄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의류 브랜드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한상혁의 세컨드 브랜드라는 느낌을 대외적으로 발산하기 위해 다스블레이드의 다스 대신 에이치(Heich)를 넣는 등 브랜드 네임 교체도 단행했다.
그렇게 첫 선을 보인 컬렉션의 이름은 ‘Less & Relaxed’. 스트리트 캐주얼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것보다는 어느 정도 정돈된 느낌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절제를 뜻하는 단어‘Less’를 선택했다. ‘Relaxed’는 오버사이즈, 루즈 등 여유 있는 실루엣을 통해 긴장감이 사라진 편안한 마음가짐을 강조한다는 의미다. 절제와 여유, 어떻게 보면 상반될 수도 있는 이 2개의 키워드가 에이치블레이드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에이치에스에이치가 소재와 테일러링에 집중한 포멀 브랜드라고 한다면 에이치블레이드는 그간 시도하지 못했던 그래픽과 스트리트 감성에 주목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브랜드 시그니쳐인 ‘면도칼’을 비롯해 옷마다 과감하게 배치된 그래픽들. 이는 이전까지 한 실장의 컬렉션에서 보기 힘들었던 타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례적인 시도라고 볼만한 단서들이다.
또한 대부분의 옷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CI 그래픽 로고도 에이치블레이드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캐주얼을 상징하는 이니셜 C를 적용한 것이며 그래픽은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달라지는 공간의 형태와 컬러가 한 실장이 평소 생각하던 절제, 여유 등의 추상적인 이미지와 상통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가격대다. 4만원 초반대의 티셔츠부터 18만원대의 울 코트까지 전 제품의가격을 20만원 이내로 책정한 것. 그 기준은 메인 타깃인 10~20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가격대는 낮췄지만 소매의 각도, 유려한 실루엣 등 한 실장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테일러링의 강점들은 그대로 적용했다. 즉, 에이치블레이드는 한상혁 디자이너의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가 된 셈이다.
독특한 점은 바지를 제외하고 모든 옷이 프리 사이즈로 제작됐다는 것. 이러한 사이즈 스펙은 각기 다른 체형의 사람들이 저마다 특색있는 핏으로 에이치블레이드를 입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된 사안이라고 한다. 또한 컬렉션의 감도를 중성적으로 조절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까지 착용할 수 있는 유니섹스 브랜드가 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