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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찾기 어려워진 존재들을 대하는 자세

2015-03-03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도시의 밝은 불빛에 익숙해져서 인지, 적막한 시골 길이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한 줄로 이어진 백열 전구 가로등불이 있어서 위안이 되더군요. '없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많은 것들 중에 '빛'은 참으로 큰 존재입니다. 또 그만큼 많은 작가들의 좋은 소재, 주제로 쓰이기도 하였지요.

글│류임상, 미디어아트 에이젼시 LAB 16.9 크리에이티브 디렉터(director@lab169.com)  

흔히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화가 카라바조는 평면 회화에서 '빛'의 존재를 잘 나타내기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작 '마태를 부르심(The Calling of Saint Matthew, 1599-1600)'을 보면 빛의 밝기에 따라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변화 무쌍하게 연출됩니다. 마태를 부르는 예수의 모습은 3분의 2 정도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죠. 하지만 창가에서 비춰지는 빛의 존재가 절대자의 위엄을 더해 줍니다. 평면이지만 빛의 표현으로 더욱 드라마틱하게 표현되고 그로 인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증폭되어 표현됩니다.

평면 위의 예술인 '회화'에서도 이처럼 빛이 다이내믹하게 쓰이지만 무엇보다도 '빛의 예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야말로 '빛'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사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미디어 아트의 특성상 빛은 존재, 그 자체이겠지요. 디지털로 만들어지는 모든 이미지들은 빛의 형태로 완성됩니다. 그것이 컴퓨터의 화면이든, 빔 프로젝트의 영상이든, LED소자의 현란한 깜빡임이든 말이지요. 이제 소개해 드릴 작업 '묘화'는 미디어 아트 그룹 'SILO LAB'의 설치 작품입니다. SILO LAB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팀인데요. 글로벌 브랜드의 런칭 쇼나 자동차, 음료 등의 프로모션 등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결과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SILO LAB의 '묘화'는 상업적인 프로젝트가 아닌, SILO LAB의 아트웍입니다. 조용한 공간에 격자로 이루어진 나무틀 사이로 투박한 전구가 빛을 발합니다.

간혹 일정한 흐름으로, 어쩔 때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감상자의 형태로 변하는 불빛들은 차갑고 비인간적인 디지털의 느낌 보다는 왠지 모를 따스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영상> 묘화(妙火, Mysterious fire), 2014, SILO Lab

익숙하던 대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백열전구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로 그것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고 제도로서 그 사라짐은 더 명백해졌습니다. 평소에 백열전구를 즐겨 사용하던 것은 아닙니다. 애장하던 물건은 아니지만 찾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갈 이 것들에 대한 나름의 인사를 보냅니다.
- 작가노트 중에서

백열 전구가 효율성과 경제적인 면에서 LED 전구에 밀려나서 존재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어찌 보면 가장 LED 전구를 잘 활용(?)할 듯한 미디어 랩에서 백열전구를 사용해 작업을 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작가 노트에도 있듯 ‘찾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들에 대한 인사’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빛이 없이 어둡던 시절, 새로운 기술의 탄생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던 ‘백열 전구’가 어느 샌가 ‘사라진 기술’이 되어 간다는 점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또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따듯한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예술’의 또 다른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말이지요. 지금, 우리 곁에서 어느 샌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어두운 밤 나를 지켜주던 백열전구 가로등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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