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9
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뇌파’를 이용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도구도, 움직임도 없이 오로지 ‘생각’만으로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어릴 적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지구 어디선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은 무섭기까지도 하네요.
글│류임상, 미디어아트 에이젼시 LAB 16.9 크리에이티브 디렉터(director@lab169.com>)
‘뇌파’라는 것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 실체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겠지요. 인간의 신체기관 하나하나가 신비롭지 않은 곳 없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뇌’가 아닐까 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생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한 ‘뇌’는 정신을 지배하는 복잡한 시신경과 세포, 기관들이 섞여 있는 ‘복잡함’ 그 자체입니다.
이러한 ‘뇌파’의 영역을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리사 작가의 경우 바이오센서를 이용해 감정상태나 몸의 변화를 영상-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EEG(뇌파 측정기)를 사용해 선보였던 최근 작품 ‘Eunoia(2013)’은 온라인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지요.
Eunoia from Lisa Park on Vimeo.
뇌파를 사용해 작가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그대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일련의 ‘예술 활동’, 즉 다시 말해 인류가 탄생한 이래 많은 예술가들이 집중해왔던 ‘예술화’는 결국 이와 같은 뇌파의 ‘예술 감흥’을 손, 혹은 일련의 신체 도구를 활용해 표현해왔기 때문이겠지요. 즉, 도구를 다루는 손의 숙련도에 따라, 또는 배움의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새로 그 감흥- ‘예술 감흥’은 표현되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 예술 감흥 – 다시 말해 ‘예술 감흥에 반응한 뇌파'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면,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예술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겠지요.
이 같은 이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 시 단순히 현상을 재현하거나 복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 감흥에 반응한 뇌파를 고스란히 담은 예술을 하고자 연구해왔을 것입니다.
유명한 액션 페인팅 작가 잭슨 폴록의 경우 무아의 지경에서 뿜어낸 물감의 조각들이 그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감정, 에너지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작업들을 선보여왔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난해해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업 세계는 ‘무언가를 조형’하려고 한 것이라기보단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 같은 원리로 의식의 흐름대로 물감이 가득 머금은 붓을 캔버스에 뿌린 것입니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계산하지 않았지만 미적 질서가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죠.
최근 뇌파를 사용해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과 같은 작업을 한 미디어 작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 작가인 Jody Xiong 의 ‘mind art' 인데요. 특히 이 작업은 손을 쓸 수 없는 장애우들에게 뇌파를 이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줘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전에 참여자가 선택한 색상을 공중의 풍선에 채우고, 참여자는 EEG(뇌파 측정기)를 착용한 후 정신을 집중하면 그 뇌파에 반응해 풍선이 터져 사면으로 둘러진 캔버스에 그림이 그려지는 건데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들이 창작한 그림이어서 그런지 만드는 과정도, 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도 감동적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인류의 미래가 뇌파만이 필요한, 인간의 신체는 단지 영양분만을 공급 받는(혹은 주는) 존재가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대화보다 메신저와 같은 대체-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소통하길 더 원한다는 게 이러한 징후로 읽힐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뇌 속의 이야기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각활동’ 역시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직접 만나 소통하는 곳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요. 좀 더 많은 ‘직접 경험’이 더욱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고, ‘실제 세계’에 눈을 돌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