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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오늘도 동상은 말한다

2014-04-21


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를 기억 하시나요? ‘행복한 왕자’라 불리는 동상 아래 앉아 있던 제비 한 마리가 왕자의 부탁을 받아 그의 몸에 붙어 있는 보석과 금붙이를 떼어내 가난하고 병 든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제비는 왕자의 심부름 때문에 남쪽 나라에 가지 못해 얼어 죽게 되고, 왕자의 동상도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다소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이후에 왕자의 심장과 제비의 시체는 하늘 나라로 가게 된다는 결말이 있지만 말이죠.

글│류임상 미디어아트 에이젼시 LAB 16.9 크리에이티브 디렉터(director@lab169.com)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비록 자신의 전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볼품없는 모양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행복한 왕자’가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세대를 뛰어넘어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에게도 묵직한 감동을 줍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죠. 심지어 자신의 몫을 아낌없이 덜어서라면 더욱더 말입니다.

늘 스쳐 지나가는 길을 되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참 많은 공공 미술품과 오래된 동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동상들은-대부분 위인의 모습을 한- 그 자체의 위엄과 엄숙함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죠. 형형색색의 컬러가 아닌, 무거운 청동으로 된 동상을 만나게 되면, 신기한 듯 보다가도 어느 순간 기묘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연상시키듯 재현이 잘 된 작품일수록 더욱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 특히 인간의 손을 거처 가공된 것들은 만든 이의 주관에 따라 결정됩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미적인 욕구가 충족되기도 하고, 앞서 이야기했던 무서움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죠. 다시 말해 그 사물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만든 이의 주관과 솜씨가 작품의 성격을 규정 짓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재료와 모양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결과물을 보여줬던 학창 시절의 미술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겠죠.

작가의 주관이 가장 중요한 예술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심지어 얼마나 작가의 이야기가 잘 스며들었고, 이것이 어떤 울림을 관람객에게 전달하는지가 그 작품의 예술성을 말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알수록 예술 작품의 감상이 더욱 재미있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은 이러한 시선을 정반대로 뒤집는, 새로운 시도의 작업입니다.

백정기 작가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데요. 그가 이번에는 공공장소에 서 있는 동상에 집중했습니다. 동상은 정치적, 역사적 가치와 상황에 의해 판단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때는 훌륭한 업적으로 칭송 받더라도 시간이 흘러 버려지고 외면당하는 동상들의 ‘진짜' 이야기에 작가는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각가의 기술과 목적으로 가공된 형상이 아닌, 그 재료 자체가 가진 성격을 드러냄으로, 잠시나마 동상에게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한가로운 공원에 거대한 흉상이 서 있습니다. 흉상의 주인공은 일제 강점기에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 우승을 한 고 손기정(孫基禎) 선수인데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조금 생소하기도 할 것입니다. 작가는 이 흉상에 단파 라디오를 연결한 후 거대한 안테나로 활용해 라디오 전파를 수신하죠. 이 단파 라디오는 가장 기본적인 성능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테나 역할을 하는 흉상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라디오 주파수가 결정됩니다. 이는 흉상이 본연의 임무-고인을 추모하는 동상-를 잠시 내려놓고, 원래 이 흉상이 가지고 있었던 금속으로서의 본질을 우리들로 하여금 알아차리게 합니다. 이 행위를 작가는 ‘단 하루의 독립 (Only 1 day of independence)’ 이라는 부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 하루만 이지만 본연의 임무를 벗은 자유로운 동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회의 틀에 의해 형상화된 타인 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물론 그것-타자 지향으로 형상화된 자아-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순간에는 모르고 살지만, 그 목적이 빛을 다하고 바래진 순간, 사람들은 방황하고 외로워하게 되죠. 뒤늦게나마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마치 목적을 다 하고 공원에 버려진 수많은 동상들처럼 말이죠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속의 왕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금은보화가 가득한 ‘행복함'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왕자 눈에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들 때문에 늘 불행함을 느꼈죠.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사람들이 그 금은보화를 모두 나눠주었을 때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형상을 벗고 자신이 원하는 본연의 모습을 찾았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는 것이죠. 백정기 작가의 작업 속 흉상이 잠시나마 행복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흉상이 말을 건네지는 않나요?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자기를 돌아보는 ‘단 하루의 독립 (Only 1 day of independence)’ 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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