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브레인 팩토리
문의: 727-9520
개관시간: 화요일~일요일 11시~6시, 월요일 휴관
디자인을 진리 또는 참으로 인식하는 일은 어렵다.
아니 어불성설로 치부되어도 할 말이 없다.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디자인 현주소다.
하지만 퇴색된 미술사 책갈피에서 발견하게 되는 디자인의 눈부신 자취는 한 사회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릇의 모양이었다.
옛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옷, 그릇, 그림, 장신구, 가구들을 보면 불교의 가르침, 유교의 합목적성을 고스란히 전도시키고 있다. 그들의 생활에서 맛과 멋을 그대로 반영하고 투사시키고 있다.
서양의 근, 현대 디자인 결과들은 더욱 첨예화된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
다만 지금 우리의 디자인은 그 역할에서 매우 단조롭기만 하다. 아마도 ‘마음먹음’과 ‘계획’이 지나치게 상투적 상상력 안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인을 가지고 지금 이렇게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참된 것은 불완전해 보일 수 있다. (그런가?) 그러면서도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 참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따라서 참된 완성은 마치 비어 보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동양사상에 근거하는 취향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비어 있음으로 완벽하게 끝마쳐져 있는 것이다.(현실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문승영의 작업을 보면서 삶의 편편을 모아 보는 것 같아 즐거움이 생긴다. 마치 참된 인생이 (바른 길로만 점철되지 않고) 구부러져 있는 것처럼 참도 앎과 지혜 또한 휘어진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와 같아 참된 기교는 어리석어 보이는, 말 그대로 기교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슬기로운 쟁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들이 바라는 대로 바라본다.
그리고선 한 옆으로 비켜서 사물이(현실이)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린다. 이 어리석음이야말로 우리가 그렇게 목 놓아 울며 바라는 ‘계획’되고 ‘마음먹은’ 한 개인의 노고의 결과다.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들어 예술의 모습이라고 겨우 이야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