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레로 빚어낸(만들어낸)백자 표면에 드로잉 하듯 손으로 조각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나의 현대적인 백자 작품은 조선백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순수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는 한에서
시도되어지고 있으며 아주 작게 남겨놓은 구멍과 다소 두껍게 성형된 기물은 쓰임으로써의 도자기를
최소화함으로써 보여 지는(예술성에 중점을 둔) 도자기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작품에 은은히 드러나는
조각들은 자연의 현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아름다움들을 드로잉 한 후 불규칙 패턴을 바늘로 조각하였다.
나의 작품은 멀리에서 감상 할 때에 전체적인 모양에서 단아함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와 감상 하였을 때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조각을 보임으로써 여러 번의 감동을 주고자 의도되었다.
< 작가노트 by 이종민>
보석 같은 백자의 탄생
‘우리 전통에 아르누보 스타일을 가미한 백자’. 이종민 작가의 백자를 한마디로 압축한 설명이다. 강가의 모래톱이나 하늘의 구름, 일렁이는 파도 같은 자연을 장식의 대상으로 삼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표면에 장식한 문양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잎, 춤추듯 흩날리는 눈,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킨다. 이 매력적인 문양의 너울은 멀리서 보이지 않는다. 1m 정도 가까이 가면 불규칙한 모양의 뭔가가 있는 듯하고 더 가까이 가면 비로소 눈이 부실 만큼 현란한 무늬가 들어온다. 작가는 정교함을 더하기 위해 금속공예에 쓰는 작은 끌이나 정을 사용한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백자 특유의 무심함이나 그윽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문양을 입히는 거예요. 중간 크기 작품은 3~4주, 큰 작품은 두 달 정도 소요됩니다.
문양이 오른쪽으로 펼쳐지다가 왼쪽으로 꺾이기도 하고, 간격이 넓어지다가 좁아지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더 깊이 파인 부분도 생기고, 더 밝거나 어두운 부분도 생기면서 무늬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요.”올해 32세의 이 젊은 작가는 추구하는 스타일이 명확하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프랑스의 유명한 보석 세공사 르네 랄리크Rene Lalique입니다. 금속과 보석을 이용해 브로치와 시계, 샹들리에 등을 만드는데 문양이 무척 정교하고 화려하지요. 금속이 주재료인데도 선이 무척 곱고 우아해 손 기술의 극한을 보여줘요. 까르띠에 등 유명 보석 브랜드가 러브콜을 보낼 만하지요. 그의 작품을 보는데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백자 표면에 다양한 무늬를 수작업으로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한 예술가의 작품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후 그는 공대생에서 미대생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원래는 금속공예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수업 시간에 도자를 접한 뒤로 꿈을 바꾸었습니다. 중앙대 공예과를 졸업했는데 금속, 염색, 도자, 목공 네 분야를 다 배우거든요. 금속공예는 딱딱한 재료로 시작해 딱딱한 결과물로 끝나는데 도예는 부드러운 흙에서 시작해 단단하게 끝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그의 작품에서 문양만큼이나 이색적인 것이 있으니 바로 모양. 목에서부터 선이 풍만해지기 시작해 엉덩이를 지나 다리 부분에서 홀쭉해지는가 하면 둥글고 푸근한 몸통에 학처럼 목이 긴 것도 있다.
빛깔은 깨끗한 흰색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푸른색이 살짝 감돌아 신비로움을 더한다. 고령토에 섞인 철분의 함량을 조절해가면서 어렵게 찾아낸 빛깔이다. “모양은 고려청자에 더 가깝습니다. 고려청자는 모양은 예쁘지만 계속 보면 질리는 구석이 있어요. 반면 백자는 오랫동안 두고두고 봐도 오묘하고 은은하지요. 이 두 가지를 조합해 최고의 백자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자신의 열망을 찬찬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작가는 며칠 후 설명을 보탠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 문구가 눈에 띄었다. ‘만들고 싶은 작품은 보석처럼 빛나는 백자….’
< 기자/에디터 : 정성갑 / Luxury 201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