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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건축/인테리어

무료

마감

2013-02-28 ~ 2013-09-22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moca.go.kr/index.do?_method=main

<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은 건축가 정기용(1945 ~ 2011)이 미술관에 기증한 기록물을 중심으로 건축과 도시, 삶과 문화에 대한 의미를 재발견해보는 전시다. ‘그림일기’라는 제목은 그의 저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작가가 일생에 걸쳐 남긴 드로잉과 글이 마치 풍경을 저장하는 길처럼, 건축과 삶에 대해 새긴 일상의 보고라는 점에서 붙였다. 평범한 우리의 땅, 사람들의 반복되는 삶에 초점을 맞추었던 그의 작업은 건축을 바라보는, 근본적이지만 오늘날 회복해야 할 가치를 환기시킨다.
이 전시는 그의 작품을 삶이 시작되고 끝나는 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공간들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나누어 정기용이 사색하고 걸었던 길을 함께 걷고자 한다. 정기용의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이 전시는 우리의 땅을 사랑했던, 그리고 그곳에 내재된 장소의 의미를 치열하게 파헤쳤던 한 건축가의 궤적을 따라 걷는 시간이 될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에 구축된 정기용 아카이브는 약 2만점으로 이번 전시에는 2,000여점이 선보이며, 전시 종료 후 미술관 정보자료센터를 통해 아카이브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건축의 뿌리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정기용은 1972년 파리에 유학하여 1986년 귀국하기까지 실내건축, 건축, 도시계획을 차례로 공부하며 실무의 기틀을 쌓았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정기용은 자신의 사상적 뿌리가 되는 문화와 글을 많이 접했다. 특히 푸코, 아날트 콥, 앙리 르페브르 등 프랑스 68혁명을 이끈 신지식인들의 영향을 받아 고착화된 기존 제도를 거부하고, 근대가 남긴 부조리한 유산에 반기를 들었다. 이렇듯 유학시절에 접한 풍부한 문화 담론들은 건축에서 삶의 문제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모든 것이 땅에서 나와 땅으로 돌아가는 흙건축에서 영감을 얻었고, 프랑스 신도시 건설에 대한 비판적 논의 등을 전개하며 자본이 외면한 미비하고 무가치한 것들에서 건축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유학하는 동안 쌓은 정신적 사상의 토대 위에서 정기용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사회 현실과 구조로 시선을 옮기며 우리 땅의 문제에 참여한다.
 

 

거주의 의미
많은 집들이 거주의 의미를 상실한 채 균질한 공간으로, 단지 집이 지닌 부동산 가치에만 집중하고 있는 오늘날, 정기용의 주택 작업은 집이라는 공간에 담긴 ‘거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거주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내가 머무르는 장소에다 내 삶의 과정을 새기는 일이다. 우리가 집에서 거주할 수 있을 때, “집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관계의 시작”이 되고 삶은 역사가 된다. 따라서 거주를 위한 집이란 개인의 내밀한 사적 공간과 도시의 공적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형태의 공간이다. 삶의 기억이 오롯이 저장된 추억의 공간, 그래서 회상할 가치가 있는 공간은 개인의 장소이자 집단의 장소로서 존재한다.
 

 

성장의 공간
정기용이 설계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는 그의 건축이 보여주는 친근함과 진솔함이 가장 많이 묻어난다. 그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건축 언어로 작업하여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이러한 건축물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정기용 특유의 상상력과 사용자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드로잉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에게 학교와 같은 공공건축은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고 회상할 가치가 있는 기억의 보고”이다. 아이들이 장소와 교감하면서 만들어지는 아늑하고 풍요로운 감정이야 말로, 학교나 도서관과 같은 성장의 공간을 통해 정기용이 전하고자 했던 아름다운 가치다.
 

 

추모의 풍경
죽은자의 공간을 삶 속에 공존시킬 때,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슬픔과 함께 기념할 수 있다. 일상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이 함께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은 죽음의 공간이 삶과 격리되면서 죽음은 기억되지 못하고 덧없이 잊혀진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소로서 추모의 공간은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건축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는 “물질과 장식이 아니라 공간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기용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공간에 새겨 놓고 역사가 소외한 죽음의 의미를 기념하고자 했다.
 

 

도시와 건축
정기용은 우리 도시에 대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발언한 건축가였다. 문화연대, 서울건축학교 등에서 각종 활동을 하면서 도시를 보고, 읽고, 표현한 그는 도시 속에 감추어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는 “도시 속에 세워진 한 건물 안에는 도시 전체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도시의 건축은 장소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도시의 문맥 사이에 들어서는 건축은 어떤 문장에 삽입되는 단어처럼 도시 풍경을 해석하는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어느 작업보다 건물의 표정과 연속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정기용의 도시 건축은 다양성의 보고인 도시에서 같지만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농촌과 건축
급속한 개발이 진행된 한국에서 도시가 아닌 그곳, 농촌은 오랫동안 소외된 장소였다. 그 땅에서 긴 시간 일궈온 전통은 낙후된 것으로 여겨졌고, 분별없이 받아들인 신문물은 땅의 오랜 의미를 훼손시켰다. 그렇게 사그라드는 농촌의 현실에서, 정기용은 어떻게 주민들이 자신의 역사를 존중하며 거주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대다수 현대 건축가들이 외면한 농촌 지역을 방문해 주민들의 삶을 살피며, 그들에게 필요한 삶의 행태를 그려냈다. 그러한 과정은 < 무주 프로젝트> 와 흙건축 작업으로 구체화되었다. 또 그는 땅에 새겨진 시간의 이야기를 건축에 담아내는 것은 “모더니티를 통해 배제된 것들, 그 자잘하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회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로 건축을 바라볼 때 건축은 오브제를 넘어선, 시간으로 해석되는 매체로 확장된다.
 

 

정기용의 도서관
정기용은 생전에 드로잉과 스케치 등 그림 만큼 많은 글과 메모를 남겼다. 그가 남긴 각종 자료에는 기획자로서, 사회운동 참여자로서, 교육자로서 그의 자취가 새겨 있다.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던 정기용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축 안에 담아야 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고민은 건축 바깥에 놓인 여러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로 임하게 했다. 거대 권력에 의해 소외된 사람과 장소, 제도권이 포섭하지 못하는 교육의 영역 등 사회로부터 배제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정기용은 이러한 목소리를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전달하기 위해 TV, 라디오,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삶의 태도는 원고와 메모, 각종 회의 자료집 등에 담겨 있으며 이는 우리가 들추어 읽어봐야 할 사회학적 미학의 보고로 존재하고 있다.
 


정기용의 강의실
영화감독 정재은이 촬영한 생전 정기용의 강의 영상으로 ‘정기용의 인문학’을 엿볼 수 있는 시간.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 끝에 마련된 영상실에서 상영되며 10분 분량의 5개 강의가 소개된다. 정기용의 ‘그림’과 ‘글’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건축가 정기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특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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