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독백 : Continuous Monologue
지난달 새로 청담동에 개관한 비앙갤러리는 두번째 전시에 ‘Continuous Monologue’란 제목으로
조각가 김병진 작가의 개인전을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Continuous Monologue’란 부제처럼 수백 또는 수천개의 금속으로 된
로고나 글자들을 하나하나 용접하여 다시 갈아내는 반복된 노동과 수행으로 작업과정을
독백하듯이 작품으로 보여주려 한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작업시간을 감당하는
그는 스스로 ‘예술이 노동이고 노동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작업이란
단순한 노동과 달리 노동하면서 작품, 무엇보다도 그 스스로가 변화된다.
작가는 그렇게 반복된 독백과 같은 작업으로 작업이 몸에 감기고 몸속으로 스며들 정도가
되어야 작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복잡한 작업공정을 마무리 짓는 화려한 채색은 만들어진 형태를 물신적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한다. 섬세한 형태와 오묘한 색으로 무장된 작품들은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사랑이나 명품로고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끝없는 욕망의 상징이다.
사랑과 소유의 대상은 이 부질없는 욕망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들은 그의 작품처럼
텅 비어있다. 텅 빈 것들이 만들어내는 완전한 형태미는 욕망의 부질없음에 대한 보상 심리처럼
보인다. 불확실한 것일수록 확실한 형태를 가져야 하며, 소유할 수 없는 것일수록
소유의 환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상이 불확실한 갈망을 리얼리즘이나
금욕주의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것만으로 간주해서도 안된다. 그런 환상이 없다면 세상은
온통 무채색일 것이고 특히나 물신적 체계위에 세워진 자본주의 세계는 근저로부터 무너지고
말 것이다. 사랑의 대상을 명백히 가시화 함으로서 그것을 소유 또는 공유하려는
욕망은 작업을 이끄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작품과 상품의 경계에 선 김병진의 작품들은 밝음, 맑음, 많은, 매끄러움, 화려함 등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기호에 호소한다. 수천개의 로고 또는 글자들이
용접되어 만들어진 사과, 멜론, 도자기 등은 대중적인 기호에 대한 조사와 잘 만들어진 디자인,
깔끔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명품자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로고나 글자의
무한 반복은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는 브랜드 파워를 예시한다.
샤넬, 애플사 마크로 만든 붉은 사과가 그것들이다.
상표는 자본주의 사회 특유의 것으로, 세계화를 통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됨에 따라
점차 하락되는 이윤율을 다시금 끌어올리고 최대화하기 위한 또 다른 상품이다. 상품에 상표가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상표자체가 상품이며 실체가 된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사물의 체계]에서 기호의 문화적 체계가 갖는 일관성을 탐구한다. 그는[소비의 사회]에서도
사용가치로서의 사물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만, 엄하게 등급 매겨진 기호 및 차이로서는
사물앞에서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기호체계가 바로 사회이다.
김병진이 글자 또는 로고로 구성하는 사물들은 인간에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기호체계로 이루어진 질서이다. 이러한 가치와 기호의 관계 속에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사라지고, 기호들끼리의 체계적인 관계만 남는다. 주체와 대상이라는 덩어리는 한 치의
남김도 없이 기호화되어 표면으로 떠올라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표면화되지 않는것은 도태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연 조차도 떠 있는 반복적인 기표들로 실체화 된다. 기호로서의 다른 모든
사물과의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기 일관성과 의미를 지니면서 구체적인 사물과
무관하고 자의적이 되어야 한다. 이때 사물들은 불가피한 매개물, 그리고 대체기호,
즉 대용물이 된다.
소비된 것은 결코 사물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이다. 이렇게 소비는 체계적이고 끝없는 반복적인
과정이 된다. 사물/기호는 서로에게 힘입어 끊임없이 부재하는 실재를 메워나간다.
이번 비앙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널리 알려진
Chanel-Apple이외에도 새롭게 입체.부조 작품 15점과 의자 2점을 선보인다.
몇년 전, 작가의 여동생이 시집갈때 밤낮 며칠간을 고민하고 고생하며 만들어 주었던 의자를
전시에 선보였을 때, 작품의 인기는 여타 다른 가구작가들보다 명실공히 높았다.
리빙아트페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의자작품은 일년에
한번씩 다른 모습으로 관람객들에게 소개된다. 그의 가구,소품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비앙갤러리의 ‘반복된 독백’전에서 색다른 모습의, 그의 감각적인 조형세계와 작업의
깊이가 묻어난 신작들을 만나볼 수있다.
이번 전시는 12월7일부터 2013년 1월 12일까지 5주간 열린다.
_김병진 작가는 수원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비롯, 경기도립 미술관,
포항 시립미술관, 영은 미술관, 국립현대 미술관외에 IFC, 삼성생명, 신세계, 콘나드 호텔,
포스코등 다양한 곳에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외 아트페어 등에
참여하였다. 그 외 다수의 그룹전을 가진 바 있으며
2006년 1회 스틸아트 어워드 우수을 수상하였다.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그의 작품들에
대해 싱가폴,홍콩,인도네시아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번 개인전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영은미술관과 인도네시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