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드화 된 빛"
‘쿤스트독 프로젝트 스페이스’는 컨테이너를 이용한 전시공간이다. 전시공간의 “이동”을 주요 컨셉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전체 프로젝트 중 하나인 내 전시에서는 off-line의 고정된 전시공간을 물리적으로 이동시켜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매개 공간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최초의 기획의도를 나름대로 살려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작품 중 일부를 통의동 일대에 여러 상업적 공간인 개인가게(디자인사무실, 의상실, 헌책방)에 분산 전시시키는 매게 공간의 확장실험을 취하고자 한다.
이 전시에서 나는 실내건축 부재 중 하나인 ‘걸레받이’ 공간을 주목하였다. 걸레받이는 키 작은 벽의 일부이기도 하고, 바닥과 맞닿아 있어 바닥의 기능을 일부 수용하기 위한 접경지대다. 작품의 주요 오브제는 디지털 센서에 의해 켜졌다가 다시 꺼지는 LED채널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1음절 텍스트가 쓰여 지고 곧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1음절 텍스트들은 인간의 인지 조건에서와 같이 우리의 기억을 통해서 의미화 된다. 그리고 1음절 텍스트 장치에 거울을 매달아 반사되게 연출하여, 감상자는 뒤집혀진 텍스트를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구성방식을 통해서 언어 자체가 개인 서로간의 원활한 소통으로 연결되지 않는 우리사회의 비소통적인 한 단면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
우리들이 소통하는데 있어서 실패와 좌절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비록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닫혀 진 코드에 스스로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렇게 묶여져 있는 코드를 벗어날 수 있는 공간과 자유로움이 있은 이후에 근본적인 소통이 가능해 질 것이다. 결국 소통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코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코드에 엮여져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삶이 과연 어떻게 탈-코드화 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을 공간적 차원에서 실험코자 하였다. “이동”을 전제로 준비된 컨테이너 전시공간은 그 존재 자체가 어느 특정 지역에 묶여지지 않고, 흘러 다니는 자유로움을 표상한다. 그래서 어떤 짜여진 코드에 갇힌 채 관례적으로 구성되는 우리의 일상적 삶에 대한 초탈을 표현하기에, 고정되지 않고 이동을 표상하는 컨테이너는 더없이 적절한 전시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 장치에 입력된 내용은 역사적 인물들이 쓴 글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조선시대 사색당파 중 하나인 노론(老論)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김상헌, 송시열, 이관명, 김창집과, 이들과는 시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는 비전향장기수인 김선명, 신현칠, 이 종, 이종환, 등이 쓴 것을 중심 텍스트로 구성하였다. 이를 모듈 하나로 구성된 RG LED채널사인장치에서 흘러나오게 하고, 이것이 거울에 의해서 반사되어 거꾸로 뒤집힌 텍스트를 우리가 보게 되는 방식으로 설치하였다. 이러한 병치구성을 통해서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역사 속의 노론과 현대의 비전향장기수 간의 절대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입장을 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동시에 자신들의 코드에 짜여져 소통하기 어려운 그들의 삶을 거울 속 뒤집혀 진 텍스트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정주하지 않고, 이동하는 공간 속에 배치함으로써 탈-코드화된 자유로운 소통에 이를 수 있도록,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고민 그 자체를 표현코자 하였다. ■작가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