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갤러리의 2009년 마지막 전시로 유럽중견작가 필립 파스토 (Philippe Pastor)와 일라나 갈 (Ilana Gal)의 작품을 소개하는 “매직 믹스쳐 (Magic Mixture)” 전시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제목에서와 같이 두 작가는 독특한 재료들을 혼합하여 화면 위에 신비한 조형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작가들로,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이 사소한 것들을 가치있는 것들로 전환시키는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립 파스토는 1961년 모나코 출신으로, 2007년에 이어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모나코 대표작가로 참여하였을 정도로 모나코의 가장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였으며, 작가 스스로 유일한 스승은 바로 자연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로코의 자연에서 온 파랑, 초록, 밤빛 등의 천연물감은 나뭇가지, 마른 나뭇잎, 모래 등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온 재료와  섞여 캔버스, 종이, 혹은 나무 위에 또 다른 질서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수 많은 실험끝에 스스로 터득해낸 기법은 때로는 물로 개거나 혹은 반대로 불에 그을리는 등 형식과 관념의 구애를 뛰어넘는 것들입니다. 마치 이브 클라인이 순수 파랑 물감을 통해 우주의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마치 타피에스의 깊은 마티에르의 표현이 인류에 대한 메타포인것처럼, 또한 안젤름 키퍼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작품들이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증언인 것처럼, 파스토의 비정형 화면은 그 자체가 지구와 공기와 물과 불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소 혹은 심장 등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환기시키기도 하지만, 각각의 장면들은 죽은 혹은 버려진 재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부활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마치 연금술사처럼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에너지의 응축이 바로 파스토 작품이 지니고 있는 힘일 것일 것입니다.

일라나 갈 (Ilana Gal)은 1968년 이스라엘 출신으로 에멕 이즈라엘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여러 조형요소들을 회화 속에 혼합하여 장식과 패턴을 만들어내던 초기 스타일로부터 오늘날에는 보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화면 위에 여러 겹의 층을 만들어내는 스타일로 발전해 왔습니다. 네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작가는 아이들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데, 아무렇게나 그어진 듯한 분방한 선과 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색채감각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자유롭고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얼굴, 자전거 등 어렴풋이 그 정체를 짐작할 수 형상들이지만 보통 8겹에서 12겹에 이르기까지 덧바른 수 많은 회화층은 화면에 추상의 효과를 더하고 있습니다. 붓으로 칠할 뿐만 아니라, 패턴을 찍어내고, 독특한 재료를 덧바른 화면은 그 자체의 풍부한 물질감으로 매력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이 때 화면은 더 이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한 하나의 세계가 되어, 신비함과 영감, 주술과 유머를 불어넣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심리적인 표현과 두꺼운 마티에르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은 종종 쟝 뒤뷔페나 카렐 아펠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미 유럽 컬렉터들에게는 친숙한 일라나 갈의 작품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