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조각의 본질은 매스와 덩어리이며 조각적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중력으로 여겨졌다. 그에 따라 전통적 조각은 오랜 시간 동안 직립한 형태의 기념비적 성격을 띠어왔다. 그러나 탈장르화 현상이 어디서나 일어나는 오늘날의 미술에서 조각과 회화, 입체와 평면의 장르적 경계는 희미해져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적인 것의 본질로 여겨진 매스, 중력, 기념비성과 같은 요소들로부터 탈주하며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은 지속되고 있다. 이에 조각적 속성, 즉 조각적인 것에 균열을 가하며 조각의 본질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유동적이고 불확정적인 형태의 조각, 설치 작업을 하는 일련의 현상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동시대 조각은 이 같은 기념비적인 직립한 조각적 성격에서 벗어나 가변적 형상과 개념으로 탈주해 나가고 있다. 기념비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조각의 정의는 시대를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기념비적 속성을 해체하여 왔다. 재료와 그것의 구성 방법에 따라 이 같은 직립의 욕망에 반대되는 매달기, 쌓기, 바닥에 놓기, 파편화하기 등의 방법을 통해 수평에의 의지를 강화하여 왔다. 전통적 조각의 재료로 여겨지지 않았던 물질로 조각 재료의 범주를 넓힐 뿐 아니라, 육중하고 단단하고,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수직으로 곧추 서 있던 조각은 재료의 연화, 액화, 압축, 팽창, 응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다. 또한 확정적인 덩어리였던 조각은 변화가 가능한 유동적인 형태로 변화하였다. 작품이 결과로서 존재하기보다 과정으로 드러나는 Process Art, 자연 자체를 재료이자 캔버스로 삼았던 대지미술 등 변화무쌍한 현대미술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표피만 남은 듯 보이는 부드러운 조각, 제어할 수 없는 힘이자 조각의 형태를 규정하는 중력을 드러내거나 저항하는 조각, 조각재료라 여겨지지 않았던 하찮은 물건과 오브제의 조합, 공기와 바람, 소리 등 비가시적인 힘을 이용하는 조각 등 비물질적 조각 등 유동적으로 상태가 변화하는 작업 경향을 보인다. 조각적 혹은 비조각적 상태를 제시하는 동시대 실험적 작가들의 탈조각화 현상의 단면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물성과 순수 조형원리에 따라 작업해온 추상 조각 등 이전 작가들과 다른 작업 태도는 조형적 원리와 조각적인 것에 대한 탈주 이면의 시대적 내러티브와 사적인 감수성을 면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형식적 재료적 측면 뿐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의 조각적인 것에 대한 탈주와 해체 양상, 사적인 감성을 담아내 이전 세대와는 차별되는 일련의 조각적 흐름을 탐색하고자 한다.
○ 전시구성
Part 1. 힘의 자장_불안한
: 중력, 장력 등을 이용해 힘의 균형점에 위태하게 서있는 조각, 혹은 힘의 균형에 균열을 가하는 작업으로 매달기, 기대기, 움직임 등의 방법을 이용해 중력 등 조각을 지탱해왔던 힘을 드러내거나 균열을 가함
∙ 작가- 박선기, 홍순환, 전강옥, 홍유영, 류제형
Part 2. 물질적 상상력과 오브제_하찮은
: 부피가 줄어들어 납작하거나, 속이 비거나, 부드럽거나, 가벼운 조각
하찮은 오브제를 이용하는 조각 등
∙ 작가- 오귀원, 박원주, 김시연, 이강원, 김건주, 정승, 길초실, 천영미
Part 3. 기화하는 조각_유동적인
: 질량과 부피가 거의 없는, 기화된 비물질 상태로 공기, 빛, 물 등의 원소를 이용하여 질료적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일시적이고 상태가 변화하는 조각
분위기, 감정, 개념의 조각들이 남게 되어 기화된 동시대 조각의 현상을 드러냄
∙ 작가- 오유경, 윤성지, 강해인, 오정선, 오니시 야수아키, 최종운, 박혜수, 차상엽, 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