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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룸_오용석 개인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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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2009-03-07 ~ 2009-03-29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hut368.com

«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나는 기억을 기억하는 것을 기억한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luc  jeand''heur,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렸다(잠에서 깨어난 괴물), 2008


 


‘패닉룸’은 가상적이지만 현실적인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추상적인 공간이다. 시간적으로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이 방어적인 공간 안에서 사건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처럼 ‘패닉룸’은 오히려 또 다른 패닉을 불러들인다. 아니 불러들일 것이다. 그 때 발생하는 패닉은 치료받아야 하는 심리적인 장애상태가 아니다. 반대로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성찰의 순간이거나, 발생한 균열을 인지할 수 있는 순간이다.


 


현장에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도착한다. 징후의 냄새가 물씬 나기는 하지만, 아무 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공범자나 우연한 목격자만이 그 순간에 위치할 수 있다. 작업은 범죄현장을 기록한 흔적들, 정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다. 유동적인 이미지의 소재들은 마치 영화의 편집작업이나 몽타쥬, 스토리보드를 위한 재료처럼 다루어진다. 그 안에서 단서는 부분적인 진실 외에는 지니지 못한다. 배치되고 편집되기 이전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암석처럼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수집된 이미지들의 복잡다단한 반추와 재조립을 통해, 캔버스에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인 과거의 흔적이나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할 것이라고 예측되지만 분명해 보이는 미래의 흔적이다. 그래서 이미지 안에는 구체적인 사건의 정황이나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들은 존재할 수 없다. 작업은 그것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어떤 지점을 항상 가리킨다. 반대로 역사적인 구체성은 이미지에서 도려내지고 해체된다. 구체적인 알리바이 대신 뭉뚱그려 칠해진 일상처럼 그렇게 불안정한 흔적이 조용히 내려 앉아 있다. 그것은 완전히 치료되는 류의 염증이 아니라, 잠복해 있는 결핵처럼 항시 내재한 시한폭탄 같은 것이다. 징후를 읽는 더듬이는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


«   범죄현장은 지식에 의한 공범자와 같고 행위 속에 공범자를 내포하고 있는 기괴한 총합적 영역이다.  »


피터 슬로터다이크, 예술작품의 시간성과 범죄의 시간, 2001


 


범죄현장에는 항상 행위의 주체로서의 인물이 존재한다. 우리는 쉽게 그들을 괴물로 지칭한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추리소설과 추리드라마는 단서에 의존해 괴물을 찾는데 전력투구를 하는 탐정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괴물이 그들에 의해 잡혔을 때, 안도감과 쾌감이 관객에게 제공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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