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서의 예술, ''93 휘트니 비엔날레 판화집’ 전시
1932년에 시작된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가 개최이래 최초로 1993년에 국제교류전을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졌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 주제가 ‘경계선(boderline)’이었던 만큼 다문화, 젠더 등 사회적 이슈들을 다룬 전시 내용으로 많은 논란과 화제를 낳았고, 국내에서는 문화적 충격을 준 국제전시였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가 갖는 의미는 삶이 예술일 수 있다는 면을 보이는데 있다. 때로 현실의 ‘생(生)’이 캔버스에 들어간 예술 보다 짙은 호소력을 지닌다. 단적인 예가 조지 할리데이(george halliday)의 비디오인데, 1991년 3월 3일 로스앤젤레스 경찰관들에게 구타당하고 있던 로드니 킹 사건을 담은 이 영상은 의도되지 않았으나,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린 현실’이 되어 ‘현실이 지닌 텍스트’를 읽게 한다.
이처럼 현실에 기초한 작품들이 주류였던 비엔날레 전시를 두고 평론가들은 ‘아름다움이 없다’, ‘어디에 회화가 있는가?’, ‘어디에 미적 즐거움이 있는가?’, ‘그럼 도대체 뭐가 있는 건가?’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토로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삶 자체를 보이기 위해 불편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작품들이 주류로 등장한 이 비엔날레는 회화가 적고, 미적 즐거움 보다는, 현실의 삶을 직시하도록 유도하는 시각적 장치들에 힘을 실어, 현실 그 자체를 예술로 변환했다는 점에서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의 의미는 증폭된다.
사회적 타자이며 주변인에 속했던 작가들이 주류의 비엔날레에서 전시를 하며 각자 자신의 ‘생(生)’이 지닌 극적인 면을 작품에 투영하는, 동시에 진실된 허구(의미의 해설들)를 내레이션하는데, 이 내레이션들 속에서 93 휘트니 비엔날레의 가치가 재확인된다.
또한, 93 휘트니 비엔날레의 국내 전시는 급진적인 해외미술을 접하도록 의도된 첫 국제교류전으로 미술계의 문화적 반향을 일으켰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깊은 전시인데, 93 휘트니 비엔날레 전시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기념 판화집이 ''93 휘트니 비엔날레 판화집’이다.
nam june paik, alan rath, merce cunningham, allen ginsberg, robert longo, jonas mekas, kiki smith, byron kim, gary simmons, alison saar, hillary leone and jennifer macdonald, lorna simpson, izhar patkin, william wegman, 14 명의 작가가 참여한 ''93 휘트니 비엔날레 판화집(''93 whitney biennial in seoul)’은 작가들이 내레이션하고자 했던 많은 ‘생(生)’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14 작가의 삶을 내레이션으로 휘트니 비엔날레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판화전시가 될 것이다.
글- 갤러리 인터아트 이지연
전시 일정: 2009년 2월 5일 - 2009년 3월 5일
전시 장소: 서울 강남구 청담동 80-14 갤러리 인터아트
전시 문의: 갤러리 인터아트(02-544-8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