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는 호흡이 길다. ● 「저녁에」가「마을 삼부작」이후 칠년 만에 하는 개인전이다. 더는 눌러 담을 수 없어 넘칠 때에라야 마지못해 전을 편다. 그래서 할 때마다 보통 개인전을 두세번은 할 만큼의 양을 쏟아 놓는다. 그러나 그는 횟수나 양 같은 것은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깊이에 치중할 뿐이다. 강운구는 나이와 더불어 더 깊어져 간다. ● 그는 종종 “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밥이다”라고 했다. “사진술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진은 기록성이 있는 사진이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의 기록은 이제 외면을 넘어서 내면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 강운구는 스스로를 ‘내수(內需) 전용 사진가’라고 말한다. 그가 천착하는 내용은 과연 그러하며, 여기에는 ‘국제적’, ‘세계적’이란 명분으로 정체성 없는 사진들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 있을 터이다.
『저녁에』는「흙과 땅」,「연속사진」 그리고 「그림자」해서 삼부작인데, 모두11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녁에'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여러 겹의 이미지가 교차하며 이루는 시간을 말한다. 강운구는 이전과는 달리, 흙과 땅에 각인된 사람 그리고 노동의 자취를 통한 간접화법으로 사람과 흙과의 관계에 밀도 짙게 접근한다. 한국의 토착문화가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되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미미하게 존재를 연명해 나가거나 또는 사라져 버리는 과정을‘의도적인 객관성’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더 정서적인 울림이 큰 작품들로 그의 ‘이름 값’과 ‘나이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디지털 사진이 범람하는 이때에, 강운구가 영구보존 처리하여 제작한 젤라틴 실버 프린트의 비교할 바 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을 보여주는 깊고 무게 있는 흑백 톤은 그가 뛰어난 장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시인 이문재는 이번의 사진집 『저녁에』 서문에서 강운구의 사진작업을 ‘강운구의 사진이 사십 년 넘게 천착해 온 대상이 흙과 땅, 농촌과 농부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단지 사라져 가는 토착문화, 공동체문화에 대한 안타까운, 때로는 분노에 가득 찬 기록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동시에 인간의 지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사진가의 외침이다.’고 했다. 모두가 농부의 후예인 이 땅의 현대인들에게, 회귀본능을 자극하는 서정적 이미지 속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것을 이번 전시회 『저녁에』는 묵시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해 열화당에서 『저녁에』(2008.9.20)가 출판된다. ■ 한미사진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