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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기획전_
미술

없음

마감

2008-07-02 ~ 2008-07-08


전시행사 홈페이지
zeinxeno.mbillust.co.kr


조 윤 선   CHO RYun Sun
Mailto rysun0506@hanmail.net

개인전
2008 제2회 개인전 [갤러리 자인제노]
2006 제1회 개인전 [동덕아트갤러리]
단체전다수.



Lunar Rainbow


김용민 | 쿤스트독 갤러리 큐레이터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서 빛나는 달, 빛 가루가 주위를 맴돌며 눈을 적셨다. 밤은 무섭지 않다. 별과 달들이 숨어 있는 밤하늘, 아름다운 것이다. 그(달)의 소리가 들리는지 우리의 소리를 들었는지 아무래도 달무리는 나를 괜찮게 한다. 아마도 달이 스스로 삭히며 스스로를 빛내서 일거다. 그러니 우리가 달 한가운데에 눈을 맞추는 일이 가능할 테다. 한동안 그를 보다보며 밤하늘 눈동자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참으로 착하다, 그리고 귀엽다. 태양과 다르게 주위를 그대로 어둡게 하면서도 스스로만 빛나도록 하니 부담 없는 빛이다. 한밤중에 책상에서 공부할 때 스탠드에 돌려 꽂은 노란 전기구슬. 어떤 이에겐 공부하는 빛, 어떤 이에겐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 쓰게 하는 빛, 또 어떤 이에겐 슬픔을 달래며 어른스러워지는 빛이다. 여기에 담소한 마음의 손이 자신도 달이 되고자 달 따라 그렸다. 이렇게 한 사람의 미술이 시작되었다.

재현도 아닐 것이 표현도 아닐 것이 저것을 한번 그려봤으면 하는 바람에 동감한 심정이 미술이 되었다. 그 누가 여린 심장이 피어오른 사적인 감정이라 했어도 취향에 따라 수고하는 정서적 태도라 했어도, 자기 멋대로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실 뭉치에 미술이 전사되고 있다. 그 사실에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작업의 방향이 자신을 이끌고 있다. 이미지는 이와 같지 않은가. 가슴에 상이 매치는 현상. 처음에는 놀랍고 다음에는 대단하고 이후에는 그리워하게 되는 세 가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미술사를 가지고 예술을 이렇게 빗대어 말했다. 모든 예술은 아방가르드의 정신에 따라 우리에게 새로움의 충격이 된다. 지금 예술작품이 시대에 앞서 있거나 새로운 이데아로 있지 못하다면 고루하다. 마지막으로 그런 예술작품은 다시 역사가 되어 그때의 참된 값어치에 무거움을 더하게 된다. 안 그런가. 이런 미술현상이 작가의 심정을 두루 복잡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그(작가)에게 있어서 보이는 것은 결과고 작품이니 거기서 자신의 방향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시각예술이 갖는 실재성이다. 어쨌거나 그에게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작업이고 활동이니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시각예술이 갖는 긍정성이다. 이렇듯 예술에 있어서 긍정성과 실재성은 작가의 작업 활동과 작품에서 밝혀지게 된다.

색실을 활용하여 촘촘하게 수평선을 다져간다. 조금씩 밀고 맞추며 손끝의 지문으로 반듯하고 조밀하게 조정한다. 그래서 나온 바림(gradation), 섬광과도 같다. 빛이 섬광의 층위로 누적되고 쌓여서 빔이 되었구나. 이 빔은 명절이나 잔치 때 입던 새 옷을 연상하기도 하고 섬유나 실의 꼬임을 일컫게 하기도 하며 빛이나 전자파의 흐름을 보이기도 한다. 실이라는 소재가 그럴 것이다. 한 곳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가는 실의 속성이 빛줄기가 되어 정면과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시선은 이곳에 안착하여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을 띠웠다. 전에는 피부에 찰흙처럼 달라붙어 소화할 수 없는 세계를 작은 가슴에 담아야 하는 답답한 심정의 토로만이 있었다면 작금에 와서 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범위와 면적으로 작업에서 마음을 구별한 것이라. 구별, 이는 바림이 널빤지 화면을 가로질러 횡단하는 경쾌하고 올곧게 뻗은 선에서 확인된다. 그 구별의 횡단은 차갑고 매끈한 물성이 아닌 빛에 드러나고 숨은 천(gauze)의 나이테여라. 올과 올 사이로 퍼지는 염료가 어릴 때 바라봤던 하염없는 우주의 깊이와 같다. 그 우주는 암흑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빛과 색이 숨 쉬는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은하계가 확산되고 소멸되는 찬란한 별들의 시간이 한 가닥 광선속에 겸허하게 암시하고 있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게 너머의 세계, 그렇기 때문인지 표현도 재현도 아닌 감각의 암시를 통한 여성성의 발견이었다. 비로소 미적 범주의 경계를 찾았다.

달무지개(Lunar Rainbow)의 작업에서 여성성의 발견은 두 가지의 시각적 표면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공예적인 제작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오방색에 가까운 실의 사용이다. 실은 두께를 갖는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작가의 작업시간을 미리 짐작하게 만든다. 그것이 공예적이고 장식적 형식을 갖고 있더라도 분명 미적 범주에서 해석될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이는 온화하다는 대기의 말할 수 없는 여성의 치마폭이다. 그 치마폭은 손수 실로 짠 피륙이었고 다양한 방향과 감정이었다. 그것이 하나로 엮이고 모아졌다. 단정하고 단아하게 허물을 벗었다. 그 출발은 여럿 감정이었고 그 결과는 단순미술(minimal)의 형식이었다. 그리스에서 출발한 서양미술이 밝히 들어내고 불필요한 내용을 제거하는 미술이었다. 그 끝(모더니즘)과 시작(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에 미니멀아트가 위치해 있다. 이와 다르게 달무지개(Lunar Rainbow)의 작업은 달과 아득한 우주의 현상에서 출발하여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합일된 단순미술이라 할 것이다. 수평선, 왠지 대지의 온건함을 불러일으킨다. 그 온건함은 생명의 씨를 생산한 가이아(Gaia)의 감정이라. 숨을 죽이고 말을 멎게 하는 시각의 확장이 심리적이고 심미적 해소를 열어놓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여기 있으니 보기에 기하학적이고 단일하다 하여도 그 모든 곳에 손가락의 지문이 흘고간다. 시선의 수평 이전에 촉각의 수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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