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의 육체가 무거운 짐이나 감옥처럼 느껴진다면, 혹은 심하게 오염되어 불결한 것으로 느껴진다면 지금부터 지상파 텔레비전 수신을 위성신호로 전환시키듯 간단하게, 삼차원의 세계를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보자.

이제부터 당신 육체의 무게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저 아래로 당신의 짐 혹은 감옥이, 무겁고 오염된 당신의 껍데기가 당신 영혼의 눈과 에너지로부터 분리되어 곤히 잠들어 있다. 이미 다른 차원으로 떠나버린 당신을 알아보는 이는 어디에도 없고,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에너지로 당신 자신의 육체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육체와 그 행위들이 정확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관찰되고 감지된다. 우리의 꿈과 상상력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제 둘러보라. 수 많은 섹스들. 남성의 작은 돌기가 홈이 깊이 패인 여성의 신체 기관 속으로 피스톤 운동을 반복한다. 그들의 몸뚱아리가 천태만상의 체위로서 서로 엮이고 엉켜져 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을 보라. 그들은 사랑하고 있는가? 물론 그들은 보통, 연인 관계이거나 부부 관계일 것이다. (그렇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제부터 더 눈을 똑바로 뜨고 저 아래 인간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육체의 판타지들을 지켜보라. 비정상적인, 혹은 금기를 넘은 행위들. 가령 처제와 형부의 섹스, 남매의 섹스, 부녀의 섹스, 연인의 절친한 친구와의 섹스, 직장 상사와의 섹스, 매매되는 섹스, 일방적인 섹스, 둘이 아닌 셋, 넷이 엉켜진 섹스, 섹스, 섹스들. 자. 이제 말해보라. 그들은 불결한가? 인간의 본능인 성(性)에 관한 주제는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회자되어 왔다. 또한 본능을 지닌 인간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섹스를 하고, 혹은 상상하고, 고민하고, 그로 인해 사건을 저지르고, 후회하고, 결심하고, 또 다시 후회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인간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섹스’라는 주제는 대체로 은밀하고 감추어진 것, 부끄러운 것, 혹은 더러운 것, 삼류의 주제어로 비추어진다.

여러분은 누구나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이나 동물원 나들이에서, 동물들의 세계를 다루는 TV 다큐멘터리 속에서 동물들이 교미하는 모습을 보거나, 발정이 나 울부짖는 모습들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성적 본능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는 것처럼 느껴본 일이 있는가? 작가 박기열은 인간 역시 우리 자신의 본능인 성(性)을 향한 욕망을,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채워지지 않는 이 욕망의 굴레가 가져다 준 인생의 애로사항과 억압을 애써 거부하고 감추기 보다는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천주교 신자였던 작가는 유년기에 ‘고백성사’를 통해 마치 중국집의 쿠폰을 모아 공짜로 요리를 제공받듯 한 주 동안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일요일만 되면 매 차례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고백을 통해 면죄의 효력을 경험했던 성장기의 습관 때문일까. 그는 줄기차게 인간을 좇고 괴롭히는 성적 욕망에 대해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터놓고 즐기고, 바라보고, 나누고자 한다. 물론 동시대 미술계에서 ‘섹스’라는 주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진부한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미 충분히 거론되었고,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술계 안에서 다시 섹스에 관해 논쟁하기 위해서는 좀 더, 훨씬 더 스펙터클하고, 자극적인 시청각적 요소를 갖추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박기열은 섹스의 스펙터클을 묘사하기 보다는, 마음 속에 감추어둔 개인의 욕망들을 담백하고, 소박하게 나열하기로 한다.

작가는 동물과 같은 크기의 본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계몽의 역사를 지나온 인간이기에 괴롭고 부끄러운 성(性) 이라는 주제 앞에서 늘 쾌락과 부끄러움의 경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유한하고 유약한 인간을 그려내기 위하여, 겉으로는 힘찬 기상이 느껴지지만 소심하고 겁 많은 말의 형상을 빌어 은유하고 있다. 또한 ‘Between Love & Faith | 사랑과 믿음 사이’ 라는 사진 연작에서는 동양 최대의 나이트 클럽과 대규모의 교회 건물이 단 1m의 틈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이 대조적인 두 장소가 사실상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혹은 벗어나기 위해) 적절히 활용된다는 점에서 같은 목적과 기능을 하고 있는 장소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 이제 다시 삼차원으로 돌아가 당신의 육체를 만져보자. 조금 낯설기도 하겠지만 이전보다 그리 무겁거나, 불결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육체는 영혼의 짐이나 감옥이라기 보다는 당분간의 홈 스윗 홈이라 상정하자. 우리는 모두 엇비슷하게 생겼고, 엇비슷한 고민들을 하는데 시간을 소비하며, 엇비슷한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성(性)을 향한 욕망은 결국 인간 내면의 가장 은밀한 영역이기에 이를 털어놓고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친밀감을 느끼고, 덜 외로워질 지도 모른다. 박기열의 Ero사항이 시즌2를 맞이하였다.

그의 작품들을 허심탄회하게 둘러보자. 너와 나의 애로사항이 비슷하다.

| Director 유희원 *작가와의 대화_4.21(토) pm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