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 부활, 화려한 변신 전
미술
마감
2007-04-10 ~ 2007-05-31
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정감어린 추억의 대상이다. 우리가 손만 뻗으면 곧 닿을 것만 같은 초가지붕 위에 주렁주렁 열린 박의 모습이나, 또는 착한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 다 주었던 박씨에 얽힌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으며, 또한 탈바가지, 물바가지, 장조랑바가지 등 박을 재료로 하는 바가지가 지난 세월 우리 곁에서 우리의 삶과 함께 해 왔던 유용한 생활 용구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기계화, 대량 생산을 포함하는 산업화의 논리는 박을 우리의 일상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플라스틱으로 대신하게 하였고,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박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점차 사라져 갔으며, 현재는 “대박”, “쪽박”이라는 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뿐, 그 쓰임새에 대한 기억조차 아련하고, 아득할 따름이다.
박은 바가지로서의 운명을 졸(卒)한 후, 이내 바가지의 기능만큼은 못해도 나름대로 쓸모를 찾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1960년대 후반에 박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의 쓰임새만 있었던 것과는 달리 용(用)과 미(美)를 겸비한 예술 공예품으로 우리와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적지 않은 활기를 띠며 번성하기도 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 이후 그 열기가 점차 식어가 현재 고사(枯死) 위기에 직면해 있는 형국이다.
이번 전시는 이런 박공예의 꺼져 가는 불씨를 다시 살려 내는 계기를 마련하고, 동시에 향후 박공예의 진흥과 활성화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기획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화, 조각, 낙화, 투각, 채색 등 다양한 기법들이 두루 사용되는 박공예의 매력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더 나아가 그 느낌을 박공예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로 까지 이어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전통공예, 민속공예가 그 명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적 형편 속에서 문화유산 단절 방지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지원 시스템의 확대도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으나, 이와 함께 현장 속에서 세인(世人)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져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 원인 내지는 이유를 냉철한 진단과 분석을 통하여 규명하고, 더 나아가 현재적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도 마땅히 진행되어야 할 일이다.
상원미술관은 개관 후 이런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 왔으며, 앞으로도 사라져가는 전통, 또는 민속 공예의 발전적 계승 모델의 구축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전개해 나아갈 것이다. 이번 전시는 사라져가는 전통, 민속 공예를 위기에서 구해 내기 위한 대안을 반영한 작품들로 구성되므로 사실 그 동안 축적하고, 다듬어 온 나름대로의 대책을 검증받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실험적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전시 관람을 통한 세인들의 반응은 다시 대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계획이다.
물론 이번 전시는 상원 남상교 님의 박공예 전이다. 이미 발표된 작품들도 있으나 미 발표작 및 신작이 다수 포함되어 총 30여 작품이 전시된다. 사실 팔십에 가까운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박공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이전 같으면 다른 민속공예 작품들과 함께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전시가 이번에 박공예 단독 전으로 개최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 민속공예의 조형사적 연구”라는 님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민속공예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은 이 후 미술관 설립 후 현장 속에서 공동의 실천적 연구 활동으로 지속되었으며, 평소 그 결과물을 기회를 보아 공개하려던 중 이번에 그 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님의 개인전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이런 관심의 전개 속에서 작게는 박공예, 크게는 민속공예에 대한 상원미술관 차원의 관심과 연구 성과를 현시(顯示)하고, 또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 답(答)을 들어보려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