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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FACTORY전!!!!
광고/그래픽/편집 마감

2007-03-15 ~ 2007-06-10


>>> 팝 아트의 슈퍼스타 앤디 워홀 예술의 심장을 쏘다!

■ 전 시 명 :『앤디 워홀 팩토리 andy warhol factory』

■ 기 간 : 2007.3.15(목) ~ 6.10(일)(88일간)

■ 장 소 : 삼성미술관 leeum 기획전시실

■ 출 품 작 : 205점 (실크스크린, 조각 , 사진, 영화, 드로잉 등)

■ 전시 프로그램 - 강연회 : 소콜로프스키 앤디워홀미술관 관장 3.16(금) 리움강당 - 가족참여 프로그램 "우리는 팝 패밀리!" (사전신청,참가비3만5천원) - 앤디 워홀 영상작품 8편 매주 토,일 상영(<첼시의 소녀들> 등) - 앤디 워홀 <<앤디 워홀 어린이전>> - 전시설명 (11시, 1시, 3시, 4시 + 주말 2시-영어설명) ♠ 예약제 해제 / 3월 새내기 이벤트(3월간 각 학교 신입생 무료관람) ♠ 목요 일 연장전시(오후6시~9시) 및 무료음악회(오후 7시, 리움강당) 삼성미술관 leeum은 2007년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작고 20주기를 맞아 3월 1 5일부터 6월 10일까지 대규모 회고전『앤디 워홀 팩토리 andy warhol factory』를 개 최한다. 앤디 워홀(1928~1987)이 1960년대 초반에 본격적인 팝아트를 시작한 이래 현 재까지 그가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앤디 워홀은 대중미술과 순수미술 간 의 경계를 와해하면서 미술계의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고, 미술 뿐만 아니라 영 화, 사진, 디자인, 광고 등 시각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는 앤디 워홀 재단으로부터 작품을 모두 기증받아 워홀의 작품 소장처로는 가장 큰 규모와 높은 수 준을 자랑하는 워홀의 고향 피츠버그 소재(所在) 앤디 워홀 미술관의 소장품을 한국 에 처음으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캠벨 수프 통조림(campbell soup can)> 연작에서부터 꽃,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의 초상 복제, 재난 연작, 명화 차용 작품 등 앤디 워홀의 주 요 작품들이 망라되어 그의 예술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더불어 팝아 트 이전의 1950년대부터의 드로잉들, 사진들, 전시 포스터, 특히 1970년대에 영화제작 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앤디 워홀의 영화 8편이 상영되어 앤디 워홀을 입체적으 로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this exhibition has been co-organized by leeum,samsung museum of art and the and y warhol museum, one of the four carnegie museums of pittsburgh. 삼성미술관 leeum, 앤디 워홀과 사랑에 빠지다!! 삼성미술관 leeum은 2007년 첫 전시로 『앤디 워홀 팩토리(andy warhol factory)』를 개최한다. 팝아트의 슈퍼스타 앤디 워홀의 작고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앤 디 워홀의 작품과 방대한 자료를 소장, 관리하고 있는 피츠버그 앤디워홀미술관의 협 조로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총 200여 점이 출품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앤디 워홀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는 1962년부터 1968년의 주요 주제, 즉 일상적 사물과 유명 인을 소재로 한 실크스크린 작품들과 재난 연작들이 중심을 이루고, 1970~80년대의 레닌, 해골 등과 같은 작품, 그리고 1950년대 뉴욕의 유망한 상업 디자이너로 활약하 던 시기의 작품들과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드로잉, 사진, 포스터와 많은 자화상 작품들 이 어우러져 그의 예술과 삶의 전체를 볼 수 있다. 또한 실험성과 스타들의 모습, 선 정성 등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앤디 워홀의 영상작품들을 함께 상영합으로써 1960년대 후반부터 1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였던 영화제작자로서의 앤디 워홀을 조망해 볼 수 있다. 삼성미술관 leeum은 1960년대 당시의 전시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워홀이 디자인한 벽 지를 도배하고, 작가가 촬영한 사진, 포스터 등을 걸어 워홀의 작업실-공장- 분위기 를 느껴 볼 수 있도록 했으며, 블랙박스의 메탈릭한 바닥과 벽체의 실버 소재는 워홀 팩토리 중 가장 유명했던 실버 팩토리를 연상시키고 있다. 또한 삼성아동교육문화센 터 외부 유리벽은 캠벨 수프 통조림으로 장식하여 전시 분위기를 고조하고 있다. 회화, 조각, 사진, 영상을 넘나드는 워홀의 다양한 작품 세계는 지금도 많은 작가들 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앤디 워홀의 전 생애에 걸친 대표적 작품들이 총 망라 되는 이번 전시는 워홀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이다. * 피츠버그 앤디 워홀 미술관 (the andy warhol museum) 1994년 5월13일 에 개관한 앤디 워홀 미술관(the andy warhol museum)은 미국에서 처 음으로 전후 작가의 예술과 삶을 다루게 된 미술관으로 앤디 워홀 미술 재단과 디아 즈 예술 재단의 소장품 기증으로 설립되었다. 4천점이 넘는 영구 컬렉션과 영상물등 을 포함하여 수백만에 이르는 공문서들을 소장하여 워홀 작품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 logue raisonne-한 작가의 전작 도판)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앤디 워홀 미술관의 순회전시 프로그램은, 전세계 31개국과 미국내 30개 도시에 서 45회 이상 워홀 전시를 개최하여 5백만이 넘는 관람객을 감동시킨 바 있다. 팝아트의 슈퍼 스타 앤디 워홀!! 앤디 워홀(1928~1987)은 1960년대에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영향을 미친, 미 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가 세상을 뜬지 꼭 20년이 지났지만, 예술가로 서는 드물게 스타작가였던 워홀은 지금도 전 세계에 그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으 며 그의 예술과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1928년 피츠버그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앤디 워홀은 학창시절 내내 내성적인 성 격으로 인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예술적 재능이 있었던 어머니가 그에 게 예술가의 길을 열어 주었다. 카네기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였던 앤디 워홀은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1949년 뉴욕으로 향했다. 그는 삽화가, 광고디자이 너로 활동하면서 상업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밀러(i. miller)사의 구두 광 고를 맡아 1953년과 1957년 두 차례에 걸쳐 아트 디렉터 클럽에서 수상하였다. 그러 나 워홀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가능하며 보다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순수미술가로의 변신을 꿈꾸었다. 워홀은 1960년 초부터 지 폐,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일상적인 소비재들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당대의 리히텐슈 타인 등과 함께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아‘팝아트의 왕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 는 자신의 부와 명성을 이용하여 사교계의 명사, 팝과 은막의 스타, 온갖 선남 선녀 와 어울려 다니며 실버 팩토리를 비롯한 4개의 팩토리를 운영하여 예술가로서는 드물 게 구름같은 인파를 몰고 다니며 대중예술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려, 그 자신이 스 타가 되었다. 현대 미술의 심장을 조준한 앤디 워홀!! 1928년 공업지대 피츠버그에서 출생한 앤디 워홀은 빠른 산업화의 과정을 그 중심에 서 체험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예술을 찾고자 고심하였던 앤디 워홀은 결국 우리의 삶과 대중문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일찌기 마르셀 뒤샹이 일상적인 사물 을 선택하여 작가의 흔적, 불용성(不用性), 은유적 의미들을 부여하여 예술이 되게 하 였다면, 뒤샹의 맥락을 잇고 있는 앤디 워홀은 대량생산된 오브제, 매스미디어가 보여 주는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그대로 복제해내는 대량 생산의 방식을 취하였다. 워홀은 자신의 예술의 키워드를 대중문화(mass culture) 특성에서 찾았으며 이를 자신의 예술 에 적용하였다. 특히 불특정 대중에게 공적, 간접적, 일방적으로 많은 사회정보와 사 상(事象)을 전달하는 신문 ·tv ·라디오 ·영화 ·잡지 등과 같은 매스미디어를 십 분 활용하였고 대량생산의 방법과 형식을 이용함으로써 그 동안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 던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열었다. 한편에서 앤디 워홀의 예술은 소재의 일상성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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