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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기억을 부르는 공간

2012-11-09


오는 11월 11일, 2012 광주 비엔날레가 막을 내렸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6인의 아시아 여성 감독이 ‘라운드 테이블(Round Table)’이라는 큰 틀 안에서 그들 각자가 내놓은 주제의 공존과 이해를 담아냈다. 이와 동시에 비엔날레 전시장, 대인 시장, 무각사, 광주극장 등 광주 시내 전역을 무대로 하면서 열린 담론의 장을 실현하려고 했다.

노순택은 한국 근 현대사의 이슈를 담아온 사진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광주 5,18 민주항쟁을 다룬 ‘망각기계’ 시리즈를 비롯해, 북한, 한진 중공업 사태 등의 다룬 83점의 작품이 공개했다. 그의 사진은 사실 그대로를 담은 보도사진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기억의 과정을 담고 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 제공 | 2012 광주비엔날레 사무국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실을 아는 것만큼,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순택의 사진은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각종 언론사에서 사진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포토 저널리즘의 진실과 객관성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사실을 보는 관점에 집중했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들은 노순택이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 근 현대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망각기계'시리즈 중에는 광주 5,18 민주 항쟁 당시 사망한 피해자들의 영정사진이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일반적인 영정사진이 아니다. 이들의 사진은 부식되어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으며, 사진 아래의 이름과 사망 사유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란히 나열된 영정 사진에서는 엄숙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사실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해놓았지만, 정말로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이러한 사실들을 잊고 있었는지를 느끼게 된다. 5.18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지극히 감상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에 집중해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같은 관점은 북한에서 그가 촬영한 사진은 매스게임 이미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북한의 억압된 사상과 체제의 이면을 다루려고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노순택이 촬영한 것은 정말 매스게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과장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담아 드라이하기까지 한 이 사진의 주인공은 역시 그 속에서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오히려 감상을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을 시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그의 작품의 의미를 잘 구현해내는 것이 바로 전시공간이다. 6개의 문으로 된 일시적 건물의 안과 밖에서 노순택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 문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6개의 문에는 입구와 출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문은 전체적으로 기억의 은유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억은 언제, 어느 때건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 문을 따라 들어가, 그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기억하기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전시장의 구조와 전시장 내의 작품 배치 순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발 밑이나, 머리 위 등의 예측 불가능한 공간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의 파편 같다. 그리고 공간 속에 드러난 여백은 책의 한 면 혹은 기억의 틈으로 이해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검은 기둥이 놓여있었다. 이곳에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담긴 전단과 각종 사진 자료집, 농기구 등 실제적인 도구들을 만날 수 있다. 노순택의 사진들은 국가나 권력 아래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모습을 조금 바꾸었지만, 여전히 반복됨을 보여준다. 우리는 노순택과 그 당시의 기억을 나눔으로써 새로운 기억과 마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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