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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착시 현상이 보여주는 새로운 생각

2012-05-17


수영장 안에 사람들이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대화를 하기도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더 놀라운 것은 수영장 안에는 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된 ‘수영장’이다.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이러한 착시 현상을 통해 사람들의 익숙한 인식을 전복시키면서 현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7월 7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2002년 부산 비엔날레와 2006년 서울국제미디어 비엔날레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전시이다. 그의 작업이 눈에 띄는 것은 시각적 유희로서 착시 현상을 활용하지 않고, 작품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다른 이면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인 시각이 얼마나 쉽고 단조로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송은아트스페이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건축가인 아버지와 지질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예술과 공간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익숙한 공간을 실재와 허구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면서,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2000년 휘트니 비엔날레와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면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4점의 장소 특정적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제목인 ‘Inexistence’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마디로 보여주고 있다. ‘존재하지 않음’ 혹은 ‘실재하지 않음’을 의미는 ‘inexistence’를 in existence로 띄어 쓸 경우 ‘현존하는’이라는 상반되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설치 작품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경험해볼 수 있어 호기심과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 있는 'The Staircase(계단)'은 수직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 계단이라는 상식을 벗어나, 수평 구조의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의 형태는 변형시키지 않고 그것을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다. 'Changing Rooms(탈의실)'은 탈의실이라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을 미로로 탈바꿈시킨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보려고 하는 이 단순한 행위는 겹겹의 문으로 이뤄진 공간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모습으로까지 의미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그의 세 번째 작품, 'The Chairman’s Room(명예회장 집무실 2012)'은 두 개로 나뉘어진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故 송은 유성연 명예회장의 집무실을 재현해 놓았고, 다른 한쪽에는 새까만 방이 있다. 방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준비된 의자에 앉으면, 유리 속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해 보이면서 마치 유령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작품 'The Doors(문)'는 4개의 닫힌 문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관람객이 문을 열면 빛으로 가득한 전혀 다른 곳이 있을 거라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문을 열었을 때와 같은 어두운 방뿐이다. 문을 닫으면 또다시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전시에 소개된 네 작품 모두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바꾸면서 인식의 전환을 꿈꾼다. 이 밖에도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대표 작품과 작가 인터뷰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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