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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공공미술과 지역 그리고 돈

2012-04-23


공공미술로 문화낙후지역을 재생시키는 동시에 “예술인들의 재화 창출 기회 제공” 차원에서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매해 개최되는 이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과 예술계가 ‘윈윈’하는 콘셉트를 지니고 있지만 전적으로 국비와 지방비(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서 누적되는 문예기금 이외에 각 지자체의 지방비와 국비가 합쳐 운영된다)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다.

글│ 이정현 기자
기사제공│ 퍼블릭아트

이렇듯 중앙정부에 책정된 목적사업비가 있지만 프로젝트의 운영이 순조롭다고만 볼 수는 없다.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시행된 이후 그로부터 파생된 음(폐해)과 양(장점)에 대한 의견이 미술계에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와 이 프로젝트가 벤치마킹한 일본의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의 사례를 통해 공공미술에 쓰이는 국비와 지방비의 운영 문제를 살펴봤다.

재정과 운영의 일치=불협화음?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총 3개의 프로젝트로 나뉘어 경북 영천, 경기 김포 등 지자체 10곳에서 진행됐다. 총예산은 24억4,560만원(국비 10억 원, 지방비 14억4,560만원). 그 중 2011 사업의 핵심은 영천의 ‘행복프로젝트’이다. “지원되는 국비의 3억 원 이상을 지원해야 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7곳의 지자체가 행복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최종적으로 ‘신몽유도원도-다섯 갈래 행복길’을 주제로 한 경북 영천이 당선됐다. 이 프로젝트는 영천 일대를 ‘미술마을’로 조성해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삼았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9억 원(국비 3억, 지방비 6억)의 예산이 투입된 행복프로젝트 최종완료 시점은 2011년 11월 20일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일부 작가와 참여인원들은 9월부터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단 한 두 달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라 작품수준 또한 보장 못하는 상황. 이유는 6월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들은 9월 29일에 계약을 최종 완료했는데, 10월까지 두 번에 나누어 예산이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영천 화산면의 옛 마을회관을 ‘우리동네박물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중도하차한 한 작가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7월부터 10월까지 사업계획이 계속 바뀌었으며, 감독이 지명한 작가 가운데 다수의 인원이 물갈이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밝혔다. 또한 “전문 업체를 불러 마을회관 리모델링까지의 기간을 측정해보니 적어도 3개월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예산집행이 더뎌져 착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전 조사 및 다른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참여인원들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어 “추진위측이 영수증 처리를 계약서 작성 이후부터 인정해주겠다고 하여 참여인원들은 사비를 지출해야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사전답사 이후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놓지만, ‘우리동네박물관’의 경우는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해곤 마을미술프로젝트 총감독은 “본래 영천 행복프로젝트는 9월 안에 마무리되기로 계획됐는데, 작가들의 개인 사정, 예술 감독과 작가, 추진위 측과의 의견일치가 안 되거나 불협화음이 잦아 11월 20일로 최종 마감을 제시했다”며 “‘우리마을박물관’의 경우, 참여 인원들의 취지 이해가 부족했다. 환경정비나 인테리어의 개념을 지원하지 않는 게 추진위측이 정한 룰인데, 참여인원들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술 감독에 의해 지명된 지명 작가라고 할지라도 추진위 측의 수정보완을 하는 ‘샤렛 기간’ 등을 거치면서 프로젝트의 성향에 따라 인원변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 부분에 대해서는 “계약서는 프로젝트별로 지급됐으며, ‘우리마을박물관’의 경우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콘텐츠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책임을 추진위 측에 돌리는 경우도 많았고, 결국 추진위가 선정한 후보작가군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내부제도는 확대 해석할 여지를 만들 수밖에 없다. 공공미술 기획자 이섭은 “작가 선정과 프로젝트 진행 권한이 전적으로 예술 감독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바라볼 땐 불필요한 오인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석하면서 “이러한 제도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는 두고 볼 문제이지만, 재정과 운영의 일치화는 문제를 만들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행복프로젝트가 벤치마킹한 일본의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의 경우는 어떨까?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와 행복프로젝트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는 ‘교류인구 증가’, ‘지역정보 발신’, ‘지역경제 활성화’를 슬로건으로 한 세계적인 예술축제다. 이 행사는, 2000년 시작된 지역문화 재생을 위한 미술프로젝트로 올해로 5회(올해는 지진 여파로 개최가 불투명한 상태)를 맞이했다. 역사가 그리 길어 보이지 않지만, 사실 준비과정은 1996년부터 시작되어 준비에만 4년이란 시간을 들었다. 이 기간에 문화NPO와 기획자들이 행사 지역에 상주하며 리서치와 행사예산을 위한 수익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트리엔날레로 인해 인구 5만5000명, 주민 1인당 생산성이 시간당 한화로 2000원에 불과했던 이 전형적인 소외지역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첫 회 트리엔날레에는 비토 아콘치, 다니엘 뷔렝, 오쿠이 엔위저 등 32개국의 18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문화NPO들이 투입되어 세계 최고의 ‘대지아트’를 선보이는 국제적 명소로 탈바꿈했다. 2000년 1회 때 16만명, 4회째인 2008년 40만 명을 동원했다. 행사 기간이 아닐 때에도 영구적으로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고 운영위원회에서 여는 이벤트에 참여하고자 많은 관광객이 이 지역을 찾는데, 트리엔날레 측은 광고효과 200억, 경제효과 1,200억의 수익을 내고 있다고 추산한다.

트리엔날레에는 매회 약 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예산은 지자체에서 일부 운영비만 부담하며, 나머지는 운영위원회 측에서 수익사업을 부대적으로 실시하여 지속적인 지역문화, 지역경제 살리기에 앞장선다. 기타가와 프람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의 총감독이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 개최 이전 세미나에서 밝힌 운영철학은 명료하다. ‘운영위원들이 바뀌면 안 되며, 롱런 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을 것’ 그리고 ‘자립경제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에치고츠마리를 비롯한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주로 문화NPO에 의해 진행된다. 국비나 지방비에 의해 운영비가 지급되면 이를 위탁 운영하는 주체인 문화NPO는 자체적인 문화예술분야로 수익성 사업을 벌이고, 프로젝트를 운용하게 된다. 즉 행사를 꾸려나가는 단체가 예산을 지불하는 측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행사를 꾸민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일본과 독일 등지에는 지역재생과 활성화를 위해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위원회 또는 공익법인 등 법적 조직이 재정을 담당하는 단체 내지는 기관과 별개로 설립되며, 이러한 조직들이 정부와 민간 기업으로부터 지역재생과 활성을 위한 문화예술사업을 위탁받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느는 추세다.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는 미술, 문화로써 지역 살리기라는 과업을 이루어낸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이외에도 요코하마 BankART1929, 나카노죠비엔날레, 니시수가모 창작사 등의 사례가 있는데, 규모는 저마다 틀리지만 예산운영방식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단지 국비와 지방비에만 의존해 추진돼서는 목적의식과 진정한 공공미술 인프라를 구축하기엔 버거울 수 있다. 전액 국비만을 사용하여 단 몇 개월 만에 만들어지는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지방비와 수익사업을 합친 약 30억 원의 예산과 4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를 벤치마킹하기엔 아직까지 무리가 따른다.

국비와 기금, 상호보완
이미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국비나 지방비로 운영되는 프로젝트는 정권 교체나 프로젝트의 수장이 바뀌면 방향성이 틀어져 뚜렷한 목적의식을 유지하기 힘들다.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전신인 ‘아트인시티’나 ‘서울 도시갤러리프로젝트’가 그랬듯 애초에 계획한 콘셉트를 유지 발전시키지 못하고 중도에 변모될 수 있는 우려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국비는 기업비나 기금과 달리 로또 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금이다. 김이순 홍익대 교수의 지적대로 국비에 의해 운용되는 마을미술프로젝트는 “개인이 아닌 대중에게 의미 있는 미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문제는 문화정책의 견고함과 일관되고 명료한 실행능력이다.

공공미술은 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건축물미술작품제도’의 선택적 기금제에 의해 운영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말이다. 문예기금에 의해 실행될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문광부에서 국비를 받아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성격이 서로 다르지만, 각자 지속 유지되고 연계될 때 공공미술 인프라, 지역공동체기반 공공미술이 서로 상호보완 되어 여러 불협화음이 조금씩 잦아들 것이다. 지난 3개월에 걸쳐 살펴본 바처럼 문예기금에 의해 진행될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문화예술행정, 정책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프로젝트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예상은 아직 조심스럽다. 다만, 기금을 통해 추진할 수 있는 ‘지자체 공공미술 활성화 사업계획’을 추진함에 있어서 1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기금을 배분, 사업평가 등 공공미술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추진되기에 마을미술프로젝트 등 국내 공공미술 사업에서 보였던 예산과 기간의 문제점 상호보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추진단계이지만, 출연된 기금으로는 2013년에 지자체 공공미술 지원에 35억 원, 우수 공공미술시범 사업에 10억 원 등이 책정되어 있고, 2014년에는 지자체 지원금은 65억 원으로 느는 등 점차 확대되어 인프라 구축과 공공미술 환경개선에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3월 22일에는 2012 마을미술프로젝트의 3차 최종심사가 열려 행복프로젝트, 기쁨두배프로젝트, 예술의정원프로젝트 등에 참여할 팀이 일부 정해졌다. 올해 ‘행복프로젝트’의 대상지역은 제주도 서귀포시다. 한만영 심사위원장(2012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장)은 “지자체와 작가들의 호응에 따라 발전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지역의 환경, 생태, 역사, 예술성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다”고 총평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눈길을 끄는 점은 기존에 있었던 예술 감독 대신 전시지원팀장이 나왔다는 점이다. 김해곤 총감독은 “작년의 잦은 불협화음으로 인해 총감독과 마을미술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이 직접 나서서 지자체와 추진위 그리고 작가 사이에서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작년에 투입됐던 팀 가운데 일부를 올해에도 참여시켜 프로젝트의 연장성과 내실을 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짧은 사업기간과 국비에만 의존한 예산 문제에 의해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늘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결코 쉽지 않지만, 에치고츠마리의 사례를 볼 때 프로젝트의 본질적 콘셉트의 실현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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