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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혁신도시, 공공미술을 품다

2012-03-09


지난해 11월에 개정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문화예술진흥법(제9조))에 따라 국내 공공미술 사업에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선택적 기금제’ 도입으로 건축주가 개별 부지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하여 공공미술 사업 추진에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일몰제에 따라 3년간 존속된다. 그동안 제도의 이점을 발전시키고, 미비점은 지속 보완해야 되는 상황이다.

글, 기획 | 이정헌 기자
기사제공 | 퍼블릭아트

국가의 공공기관이 대거 지방으로 이전하는 ‘혁신도시사업’은 개정안의 실험무대가 될 수 있으며, 공공미술과 도시계획이 연계된 발전적 대안 또한 마련할 수 있다. 본지는 지난달에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본데 이어, 혁신도시사업(도시계획)과 맞물린 공공미술 사업의 진행사항을 ‘빛가람혁신도시’를 대상으로 살펴봤다.

빛가람시, 공공미술 실험장 될까

2003년부터 추진 중인 혁신도시사업은 국가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국내 주요 공공기관을 지방의 10개 도시로 이전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중점적으로 살펴볼 곳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나주시 금천, 산포면 일대 7,295천m² 규모의 부지에 건설하고 있는 ‘빛가람혁신도시’(이하 빛가람시)다. 빛가람시는 인구 5만 명의 ‘초광역 혁신도시’를 목표 삼아 2013년까지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전파진흥원 등 총 15개의 공공기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나주시 금천, 산포면 일대는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평야지대로 수평적인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주관한 ‘공공미술의 비전과 전략’ 심포지움에서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빛가람시에 대해 “도시계획 차원에서 공공미술을 추진함에 있어 유리한 자연적 요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내다보면서, 1)지형에 따른 조망점, 즉 시각적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 2)도시 상징도로, 도시내부순환축 등에 따른 접근성이 양호함, 3)공공기관 및 주거단지가 설립될 중심지역 앞의 4곳의 큰 공원이 들어서 복합적 문화공간 창출이 용이함, 4)지역 커뮤니티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학교 등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스쿨 콤플렉스’가 2개소 마련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도시 공공 공간의 활용계획도가 타 지역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아, 도시계획 차원과 연계되어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하기 적당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15개 기관의 이전은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많아 건축물미술작품제도 개정안의 실효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실험장이 될 수 있다.

광주시 전라남도의 문화기관 바탕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수립한 ‘제3차 관광개발기본계획’에 따르면 광주시의 경우 “문화예술관광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있지만, 광주비엔날레 등의 경우를 들어 설명하기엔 여타 문화기반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태다. 문광부가 발표한 ‘2011 전국 문화기반시설총람(등록된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대상)’에 따르면, 전남의 문화 기반시설은 통합 142개소(나주시 7개소)로, 16곳의 국내 시도지역 가운데 행정구역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제주(90개소) 다음 15번째인 것으로 나와 있다. 또 광주시의 올해 예산집행계획에 책정된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은, 전체 예산집행 분야 중 최하위인 90억원 남짓으로 집행될 전망이어서, 광주와 전라남도가 함께 추진하는 빛가람시의 도시계획에서부터 문화환경 조성에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될 것으로 보인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빛가람시의 도시계획과 이전 공공기관을 보면, 기존 신도시 개발사업과 큰 차이점이 없다”고 말하면서 “관례적인 하향식 도시개발방식으로 인해 도시에 거주하게 될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수준의 문화 환경 등에 대한 고민이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도시 고유의 정체성이 부재한 선전문구만 남아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며 우려했다.

빛가람시로 이전 계획 중인 15개 공공기관 직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건축도시공간연구소, 「도시계획과 연계한 공공미술 추진방안 연구」, 2011. 10)에 따르면, 혁신도시로 이주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50퍼센트(‘매우 부정적이다’ 24퍼센트, ‘부정적이다’ 26퍼센트)를 차지했고, 다음 ‘보통이다’가 24퍼센트, 긍정적이다가 14퍼센트, 매우 긍정적이다가 12퍼센트를 각각 차지했다.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50퍼센트의 인원을 대상으로 이유를 재조사한 결과, 교육문제(24퍼센트), 업무환경(23퍼센트), 가족과의 유대감(22퍼센트), 문화적 소외(15퍼센트) 등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나주시 일대는 사실상 문화 기관이 7개소로 턱없이 부족하지만, 잠재적 거주민들이 문화적 환경조성에 대한 기대는 높다. ‘광주전남혁신도시에 바라는 부분’에 대한 질문에는, ‘풍부한 문화시설과 문화환경’에 대한 요구가 33퍼센트로 가장 많았으며, ‘편리한 쇼핑 및 교통환경(20퍼센트)’,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정체감(18퍼센트)’ 등이 뒤따랐다. 또한 ‘공공미술 작품이 도시의 브랜드 및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하나’와 ‘혁신도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공공미술 작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와 ‘대체로 그렇다’는 대답이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문화특화지역 형성요인 및 실태 연구(2010)’에서 예술단체 재정자립도를 측정한 결과, 서울시가 36.5퍼센트인데 비해 전라남도의 경우는 25.2퍼센트로 나타나 지역민의 문화 향유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혁신도시 건설 시기에 맞춰 그에 적절한 문화적 기반을 확충하는 기관의 설립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민석 나주시청 혁신도시지원단장은 금천, 산포면 일대가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운 공터”라고 설명하면서, “공공기관의 이전에 따른 새로운 문화시설의 건립, 공공미술 사업의 진행이 기존 주민과 잠재적 시민에게 문화향유의 요건을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뎌지는 혁신도시사업, 공공미술에 미칠 영향

하지만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이전 상황이 개정안을 통한 공공미술 실험무대의 걸림돌이다. 이는 빛가람시 만의 문제가 아니라, 혁신도시 전반의 문제기이도 하다.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에 의하면 2011년 청사 착공을 시작한 곳은 총 31곳으로 당초 목표치인 80곳에 크게 못 미친다. 국토해양부 정책과 김정희 주무관은 “용지가 잘 매각되지 않고, 따라서 기반시설 공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 공공기관 이전 역시 늦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빛가람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초 정부는 빛가람시를 대상으로 ‘2012년 15개 기관 준공’ 공언을 했지만, 지난 해 11월까지 한국전력공사와 우정사업정보센터, 단 두 기관만 시공에 착수한 상태다. 반면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6개 기관은 지난해 말까지 건축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 이에 따라 혁신도시의 공공미술 사업 진행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당초 예술위는 올해 1월부터, 15개 공공기관과 나주시 관계자로 이루어진 ‘혁신도시 공공미술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오는 3월까지 ‘혁신도시 공공미술 마스터플랜’을 지자체 등에 제안할 예정 예정이었으나 더뎌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선택적 기금제’의 진행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예술위 측은 개정안 시행 이전, “광주전남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기관이 ‘건축물미술작품제도’ 안에 명시된 선택적 기금제를 활용한다면, 2014년까지 약 18억5,000만원을 도시 차원에서 공공미술 사업에 사용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빛가람시 등 다른 혁신도시 혁신도시 이전 대상 기관 중 기금을 출연한 곳은 현재까지 없다. 개정안이 통과된 시점 이후인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착공에 들어간 공공기관은 경남진주혁신도시의 종소기업진흥원 등 4곳이나, 건설주가 착공 신고 전에 기금제 선택여부를 통보하는 것이므로, 아직까지 모인 기금은 없는 상황. 총 147개 지방 이전 기관 중 지난 해 말까지 착공 승인을 받은 곳은 31곳. 아직 섣부른 기대나 우려를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공공미술 마스터플랜은 진행 중

한편 예술위는 지난해 12월, 경남과 강원, 광주전남 혁신도시를 대상으로 한 공공미술 아이디어 공모전 ‘느슨한 단서, 열린 시나리오’를 진행했다. 이 공모전은 대규모 지방이전에 따라 구성되는 혁신도시의 도시계획과 연계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최우수상에는 박병훈, 한라영(경남 부문)이 차지했다. 수상자들은, “도시계획 차원에서 보행로, 정류소, 공원 등의 공공공간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여 ‘도시순환로’를 만드는” 게 주요 컨셉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전남 혁신도시(빛가람시) 부문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김상윤, 박지호는 ‘Agri-Art Project’를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농어촌공사 등 농업 관련기관 3곳의 이전에 따라 ‘농업 발전지역’이라는 특색에 걸맞게 “농업이 예술이자, 미래다”라는 주제를 건 작업을 제안했다.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큐브 형태의 구조물을 빛가람시 곳곳에 설치하는 형식을 띠고, 큐브끼리 한데 모여 가변적인 형태로 변형, 공원이나 도시기반시설 등에 설치할 수 있다. 또한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공공미술 적립카드’라는 시스템 안을 냈다. 이는 큐브에 담긴 농작물을 판매하면 수익금을 재배자 소유하고, 다시 공공미술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낼 수 있는 프로세스를 지니고 있다. 또 같은 부문에서 김상윤, 박지호의 ‘Memory in Frame’ 프로젝트가 우수상을 차지했다. 김상윤 수상자는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유로운 표현의 욕구, 참여의 욕구를 포착해 보았다”고 컨셉을 설명했다. 이 작품은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중앙호수공원에 설치된 ‘프레임’에 출력하는 형식으로, 빛가람시의 중앙에 위치한 사업 진행장소는 접근성이 양호하다는 점, 그리고 온라인으로 소통 가능한 도시생활 구조를 동시에 구현했다.

심의위원단(위원장 안규철)은 심사평에서 “관행적 오브제 중심의 제안을 배제하고 도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창의적 접근방식에 초점을 두었으며, 이 평가기준에 따라 도시공간을 하나의 연속적인 선으로 연결한 최우수작과 소셜네트워크 환경을 반영한 2점의 우수작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모 당선작은 현재 지자체에 논의 중인 상태. 공모 해당 지역의 특색과 어우러진 작품이 선정돼 장차 이루어질 혁신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비전을 확인한 셈이다. 또한 특정 공간에 ‘기념비 세우기’ 등의 형식이 아닌, 보다 넓은 관점인 도시계획 차원에서 도시의 특성을 부각시키고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성이 제시됐다.

앞서 설명했듯이 개정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는 일몰제에 의해 진행된다. 제도의 존치 차원이 아닌 발전 및 유지의 차원에서 빛가람시 등 혁신도시사업은, 한국 공공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실험장이 될 것이다. 섣부른 판단과 예측은 힘들지만, 혁신도시가 공공미술을 품고,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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