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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웃음과 비극

2011-10-21


전통적인 주제를 습득하면서 현대사회의 표현의 한계에 직면한 그녀는 대학시절 자신의 문제제기에 변화를 시도해야한다고 깨닫게 된다. 전통과의 끈은 놓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주제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 종이인 장지위에 색을 입힌다. 현대 사회 뿐만 아니라, 자연과 예술의 재현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제기가 김지희의 작품세계에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 Jean-Louis Poitevin 프랑스 미술평론가


얼굴들
처음 던진 시선에서 김지희의 작품은 우리를 유년기 혹은 청년기의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빠뜨리는 듯해 보인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안경으로 가려진 얼굴들은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는 순수했던 즐거움과 꿈같았던 어린 시절의 불장난, 놀이들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눈을 돌리자마자 다시 한 번 생경한 인물들에게 시선을 사로잡히게 되고, 이들은 모든 신비로움 속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화폭 위에 드러난 무언가는 호기심을 자아내고 놀라움을 맛보게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마음속에서 두려움의 불을 당기게 된다. 이 얼굴들에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그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답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얼굴의 윤곽과 형태가 확실함에도, 인류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답을 얻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봉착한다.

이런 의문들은 마치 화폭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우리에게 던져진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매일 마주하는 그저 그런 얼굴이나 표정이 아니다. 이 얼굴은 한 인간이나, 특정한 개인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구체화된 세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이 얼굴들은 어떤 신체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 인물들은 어느 누구도 아니다. 우리를 동요하게 하는 존재의 구현일 뿐이다.


웃음과 슬로건
인간은 타인의 얼굴 표정의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능력은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얼굴은 감정과 기분, 근심이나 행복감을 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소구이기 때문이다. 진짜 감정을 숨기는 법을 터득하고, 더 이상 표정에 진실된 감정을 드러내지 조차 않는 오늘날 인간의 모습에 김지희는 의도적으로 얼굴표정을 변형시킨다. 우리는 외부적인 요소로부터 내면의 자아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결국 상이한 가면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이 가면에 자신의 퍼스널리티를 끼워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붓에서 그려지고 있는 현대의 비극이다.

현대인은 표정의 생동감으로 감정을 표현해왔던 자아를 억누른다.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들은 배경으로 삽입되는데, 감정에 대한 각주라기보다는 광고문구와 흡사하다.

<억지웃음> 이라는 타이틀은 그녀 작품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각각의 얼굴들은 자연스럽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과장된 큰 미소를 띠고 있다. 게다가 치아 교정기를 하고 있다. 생기 없이 윤기가 흐르는 얼굴표정이다. 눈을 뜨고 있지만, 어떤 것도 바라보거나 응시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녀는 눈동자의 색깔을 다르게 그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김지희는 점점 눈보다는 원형 혹은 하트모양의 커다란 안경을 그린다. 각각의 안경알에는 다양한 아이콘들이 있다. 여기엔 달러, 저기에는 원, 색색의 점들, 다색의 줄무늬 혹은 티셔츠의 슬로건들이 안경알을 채우고 있다.

각각의 안경들은 스크린 같은 영사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의 썸네일이나 얼굴을 동요시키는 분별없는 욕망의 상영들이 진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인가는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러한 ‘스크린’에 상영되는 모든 것들은 인물들의 시선을 파괴하고 우리에게 고독과 유기의 끔찍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김지희는 사회적 성공의 상징들을 통해 맹목적인 시선을 직시하게 하면서, 현대사회의 대다수 사람들과 관련된 신체적, 사회적 쇠약의 실상을 보여준다.


괴물들
김지희의 작품들은 괴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을 계속해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무성의 존재들은 후광처럼 표현된 재치 있는 가발로써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변형된다. 이들은 단지 21세기의 아이들이 아니라 목신의 후손 혹은 허구의 산물인 그리스신화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같이 김지희가 그려낸 인물들은 양의 뿔과 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처럼 인생의 모순 앞에 우리의 내면의 불안을 발현하고 쫓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

이들은 진정 괴물인가? 이 인물들은 자신의 원죄를 안고,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다. 앞으로 따라야할 바로 그 길을. 혹은 절대 따라서는 안 될 그 길을!

완전한 한 인물을 그린 그녀의 그림에서는 억지웃음을 띈 얼굴이 슈퍼맨의 S가 새겨진 옷을 입은 아기의 몸 위에 그려진다. 김지희는 우리를 계속해서 의혹 속에 남겨둔다. 단지, 어린왕자의 행성 같이 축소된 지구는 지구를 표상하는 침대 한 귀퉁이에 놓여져있다. 이 괴물은 우리를 비웃으며, 한손에는 장미를 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처럼 결국 끝나고 말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가 괴물이 된다면, 누가 우리에게 바른 길을 택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을까.


색과 희망
만화와 팝 아트의 마리아쥬. 김지희의 작품세계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세계의 풍부함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를 찾아 내려가야 한다.

그녀는 6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다. 그리고 스승인 오관진 작가의 가르침과 격려로 동양화를 시작하고 이 분야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전통적인 주제를 습득하면서 현대사회의 표현의 한계에 직면한 그녀는 대학시절 자신의 문제제기에 변화를 시도해야한다고 깨닫게 된다. 전통과의 끈은 놓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주제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 종이인 장지위에 색을 입힌다. 현대 사회 뿐만 아니라, 자연과 예술의 재현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제기가 김지희의 작품세계에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색감과 음산하면서도 멍한 표정의 인물들은 관람자들에게 부인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녀의 작품에는 문제제기의 통찰력과 작품 퀄리티 사이의 눈부신 조화가 있다.

김지희는 중첩되는 감정으로 쇠약해진 존재인 우리 인간들은 완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가 중요한 아티스트인 이유는 우리가 되어버린 존재,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모델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데 급급해 감정적인 뿌리를 외면하는 존재들 말이다.

김지희의 작품들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택했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인간,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육체,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터치와 색의 마법으로 두꺼운 가면 너머의 진실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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