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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장샤오강 (張曉剛, Zhang Xiaogang)

2011-10-04


표정을 잃고 극도로 침잠하는 얼굴들, 서랍 속 빛바랜 흑백사진을 연상시키는 음습함 속에 우수에 찬 눈을 뜬 인물이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 경직된 표정은 인조인간처럼 견고하고 창백하면서도 아련한 온기가 배어 있는 것 같다. 가족을 연상케 하는 인물들 사이로 붉은 끈이 선회하는가 하면, 한 조각 떨어져 나온 빛이 인물의 뺨을 어루만지는 모습도 보인다. 상흔과도 같은 빛의 조각은 마치 마음을 할퀴고 간 생채기처럼, 언어를 아끼고 침묵하는 비밀처럼 그곳에 머물고 있다.

글 | 아트앤컬렉터 김지희 에디터



의례 중국미술 하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회색 톤의 표정,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장샤오강의 화면은 그렇게 철학적 사유의 여지를 남겨둔 채 침묵하고 있다. 고요 속에 몸을 감춘 것은 시대의 흉터와 혼란이다.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로 평가되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세상의 광기를 체험해야 했던 세대의 작가에게 역사의 기록은 곧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중국 2세대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장샤오강을 비롯해 팡리준, 위에민준 등은 직접 홍위병 활동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사회주의 사상교육을 강하게 받은 세대다. 이들에게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에 이은 아방가르드 운동과 냉소적 사실주의, 자본주의 파도 이면에 드리워진 극심한 빈부의 격차가 이어진 일련의 역사는 끝난 세대의 사건으로 정지될 수 없었다. 시대의 변주를 체험해야 했던 작가에게 기억은 역사 속에 갇히지 않았고, 의식은 여전히 이념적 투쟁을 거듭했다.



혼란스러운 역사를 거친 작가는 우연히 가족의 옛 사진을 발견했고, 집단주의 세례를 받은 세대에서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 전통적인 사회 속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 비밀을 품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은 중국인의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던 것이다. 작가는 무채색의 담담한 가족의 모습을 담았고, 오랜 전체주의 시대를 지낸 사회에서 개인의 심리에 질문을 던진 <혈연> , <대가족> 연작은 해풍을 타고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

‘시대가 선택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장샤오강은 보편적 감성을 업고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가 좁은 작가로 비약한다. 이후 작가는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굴지의 옥션을 비롯 세계를 무대로 한 전시에서 연일 이슈를 낳으며 저돌적인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트렌드처럼 번진 중국의 이념 의존성 화풍과 버블현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샤오강의 작품은 차분한 자기성찰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여전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존하며 말할 수 없는 비밀과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을 잉태한 도시.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상처, 기억과 망각이 만들어내는 삶의 편린을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화면 속 인물은 차라리 입을 닫고 감정을 억제한다.

이데올로기적 방황과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보다 고요한 침묵으로 값을 치루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아련한 노스텔지아를 자극하는 것이 장샤오강이 중국을 넘어 세계 속에서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는지.

평론가 뤼펑은 장샤오강의 작품을 두고 “우리의 영혼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몽환의 왕국’을 설계한다.”고 술회한 바 있다. 몽환의 왕국에서, 강하면서 온화한 까만 눈망울을 응시하는 소녀는 여전히 더 많은 언어를 안은 채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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