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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art&love&sex 아트&러브&섹스-②

2011-09-14


순수와 응용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장식적인 화풍으로 세기를 초월하고 수많은 추종자룰 거느리는 구스타브 클림트. 관능적 여성을 모티브로 성과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했던 클림트는 외설과 퇴폐적 요소로 전통 화단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화풍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글 │ 아트앤컬렉터 김지희 에디터


미치 침머만은 클림트와 육체적인 관계를 지속하며 두 아이를 낳았고, 아이와 미치 침머만에 대한 클림트의 애정은 그의 작품 <희망ⅰ> 에서 드러난다.

반면 에밀 플로게는 클림트의 정신적 사랑의 대상으로, 둘의 사랑은 플라토닉에 가까웠다. 그녀 역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클림트의 소울메이트이자 정신적 부인의 역할을 했고, 둘은 수많은 연서를 주고받았음은 물론 클림트는 마지막 1년중 6개월을 에밀리와 함께 보내며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클림트는 미치 침머만과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었지만, 스페인 독감으로 죽음에 문턱에 섰을 때 애타게 찾았던 여인은 바로 소울메이트 에밀 플로게였다. 사적인 영역과 작품을 엄격히 분리했던 것을 비롯해 그의 사고 전반을 지배하던 분열적 사고가 사랑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친 까닭이었을까. 클림트의 임종까지 지켰던 에밀 플로게의 모습은 둘의 사랑만큼이나 조신하고 정숙한 모습으로 화폭에 자리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은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 육체적 사랑 모두를 함께 나눈 여성이다. 처음 화가와 컬렉터로 만나 클림트의 모델로, 연인으로 발전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은 <유디트> 와 <키스> 를 탄생시켰다.


빛에 녹아내리는 듯한 회중시계가 담긴 초현실주의적 화면으로 사람들의 인상에 각인 된 화가 달리, 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안해했던 그의 세계에 갈라가 찾아왔던 것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였다.

그녀는 걸작을 탄생시킨 창작의 주체는 아니었지만, 예술가에게 내재되었던 예술적 영감을 흔들고 끌어내어 그 주인공으로 탄생했던 20세기 최고의 뮤즈였다. 달리보다 10살이 많은 나이였던 갈라는 달리를 만났을 당시 이미 남편 폴과 딸이 있었고 잠시 머문 에른스트와 부적절한 삼각관계를 지속했다. 이렇듯 종잡을 수 없는 남성 편력의 소유자였던 갈라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로 인해 무명에 가까웠던 예술가들은 창작의 세례를 입고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시인 폴 엘뤼아르, 화가 막스 에른스트,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가 그러했다.


갈라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직감했던 달리, 그에게 있어 갈라의 의미는 단순한 삶의 동반자로서의 연정을 넘는 것이었다. 갈라는 특출 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달리는 갈라의 지성과 매력을 찬미했고 그녀에게 불안하고 광기어린 작가의 정신을 의지했다. 딸과 남편을 버린 갈라와 열 살이 어린 달리가 사랑을 시작하던 당시, 비정상적인 이들의 사랑이 얼마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 손가락질 했던 세간의 비난과는 달리 둘은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같은 시간을 보내며 특별한 사랑을 이루었다.

갈라는 달리의 예술적 영감을 뒤흔들며 달리의 마음을 지배했고, 달리의 화면 곳곳에서는 갈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달리 화면에 등장하는 여성의 대부분은 갈라의 모습으로 태어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갈라는 작품에서 마리아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던 달리는 노이로제에 가까운 자신의 광기가 연인이자 성녀를 의미했던 갈라로 부터 구원받고 치유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달리의 서명은 ‘갈라와 살바도르 달리’로 바뀌게 되기도 한다. 갈라는 일찍이 달리의 감각을 알아보고 달리가 유능한 화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리하였으며, 결국 달리는 2차 대전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흐름을 입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그녀를 평생 사랑했던 폴을 버리고 자신의 딸마저 차갑게 버렸던 갈라. 피로 물든 20세기 초에 도덕의 잣대로 가늠 할 수 없는 팜므파탈적 여인의 격정적인 삶과 사랑은 세기를 아우르는 예술 작품을 탄생 시키며 예술에게 만큼은 구원을 얻게 되었다.

달리의 정신병적 기질을 예술로 환원시켜 캔버스로 이끌어내는 교량이 되었던 갈라, 그리고 그녀가 삶의 전부였던 달리는 세기에 남는 예술가와 뮤즈상이 되어 서로의 삶의 신화로 남았다.


까미유 끌로델, 로댕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삶은 비극으로 마감되었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존재는 영화를 비롯한 각종 컨텐츠를 통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까미유는 ‘로댕’이라는 이름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고, 아름다움과 영민함, 탁월한 재주까지 지닌 한 여성 작가의 삶에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로댕에게 버림받고 죽기 전 30여년을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보내야 했던 그녀의 삶에는 ‘비련의 여인’이라는 떨칠 수 없는 주홍글씨가 선명하다. 로댕은 제자이자 모델이었던 까미유의 아름다움과 재능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천부적 재능을 시기하며 자신을 명성을 빼앗아 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 로댕을 향한 까미유의 열정적인 사랑에 비해 애매하고 비겁한 태도로 일관하던 로댕은 까미유의 재능을 이용했으면서도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조강지처 로즈뵈레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무책임했던 로댕의 여성편력은 까미유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까미유의 애증은 로댕에 대한 원망, 편집증적 집착, 피해망상증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5살 때 이미 흙으로 만든 자신의 작품을 구워서 먹었을 만큼 무정형의 흙에 애착이 강했던 천재 작가 까미유의 창조적 에너지는 거세되었고, 결국 그녀는 79세의 나이로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세월의 먼지를 털고 일어난 까미유의 뜨겁고 음습했던 비운의 삶을 뒤로, 많은 이들이 적지 않은 로댕의 작품에 까미유의 손길이 지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했으며 당돌했던 재인 까미유의 삶은 고독했지만 그녀의 열정과 예술혼은 세월의 벽을 넘어 관객을 응시한다.



빈 분리파의 거목 클림트는 ‘빈의 카사노바’라 불렸을 만큼 안주하지 못하는 여성 편력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모델들과 모두 잠자리를 가졌다는 이야기부터 수많은 염문설을 뿌려 왔지만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이로 인해 클림트의 여인들은 열 네명에 이르는 사생아를 낳아야 했다. 불안하고 분열적인 클림트의 사랑과 예술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여인들은 미치 침머만, 에밀 플로게,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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