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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가상세계의 잠재적 이미지 ②

2011-07-14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에서 놀이를 즐기는 독일 작가 아람 바톨(Aram Bartholl)은 ‘월드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라는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로 옮겨놓았다. 게임 유저들의 화면 속 아바타 위에 떠 있는 녹색의 ID를 현실의 실제 유저들에게 적용시켰다. 그의 ‘WoW 프로젝트‘(2006-2009) 는 2인 1조로 이루어지는데, 한 명이 실제 거리를 걷거나 일상생활을 하면 나머지 한 명은 활동을 하는 사람의 녹색 이름표를 머리위로 들고 따라다니는 것이다

글 | 백 곤 미학


2.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이미지

이는 게임 속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 간의 경계를 허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MAP’(2006-2009)은 구글 맵에서 한 지점을 가르키는 ‘A’표지를 실제공간에 설치하는 것이다. 그에게 가상의 공간은 단지 환영이 아니라 ‘있음’, ‘존재함’의 공간이자 실재하는 이미지이다. 현실세계의 이미지는 가상세계와의 관계에 의해 생성된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Tree’(2007)는 게임 속 나무가 생성되는 단계에서의 버퍼링 이미지, 즉 나무가 생겨나는 순간의 실제도 가상도 아닌 중간단계의 이미지를 현실공간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버퍼링되고 있는 이미지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이 생성되는 찰나의 이미지를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은 바로 가상공간이 실재한다는 믿음을 토대로 한다. 반대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미지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는가?


발터 벤야민(W. Benjamin)이 말한 이미지 복제와 대상없는 이미지, 즉 원본 없는 이미지의 등장이 디지털 가상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상상케 한다고 주장한 바대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생성되는 이미지는 우리들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가상현실, 혹은 가상적 실재의 특징이 바로 ‘상상케 한다’는 것에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유희를 상상케하고, 예술적 가능성을 상상케하여 꿈꾸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가상의, 아니 실재적 이미지인 것이다.


아람 바톨이 가상의 이미지를 실제세계로 끄집어 들였다면, 정연두는 반대로 실제세계에서의 꿈을 가상의 세계에서 실현케 하였다. 그는 현실을 이미지화 하였다. 2001년 발표된 ‘내사랑 지니 Bewitched‘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잠재된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카레이서가 되어 우승 트로피를 든 평범한 주유원의 꿈, 평범한 인력거꾼에서 멋진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변신하는 꿈 등 그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가상의 이미지를 통해 이루게 해 주었다. 이와 비슷하게 ’원더랜드‘(2005)는 아이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화가 아닌 사진을 통한 이미지화인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앞서 설명한 아람 바톨의 이미지와 무엇이 다른가? 무엇보다 정연두의 이미지는 각 개인의 현실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가상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현실의 이미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가 현실을 매개로한 가상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가상을 향하는 것이 아닌 실재의 이미지인 것이다. 인간의 꿈과 이상, 기억과 향수를 담아내는 인생이라는 무대 안에서 펼쳐지는 이미지의 축제이기 때문에 그의 가상적 이미지는 실재한다.



2007년 제작된 ’로케이션‘은 현실과 비현실의 이미지를 뒤섞어 실재하면서도 허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실제 풍경에 약간의 무대적 장치와 소품, 조명을 설치해 마치 그 이미지가 가짜인 것처럼 표현한다. 단순히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실제세계를 가상화 한다는 점에서 이미지는 허상이면서 실재하는 것이 된다. 바로 (실재하는) 아날로그적인 매체를 통해 디지털 가상을 표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이미지가 허구적 이미지를 넘어 환상이자 잠재적인 꿈과 관련된 이미지 그 자체임을 드러낸다.


앞서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드린 경우(아람 바톨)와 현실의 세계를 잠재적 이미지로 만든 경우(정연두)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현실에 존재하지만 현실과 가상의 세계에 실재한다고 믿기 어려운 (사실적인) 환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바로 사타를 들 수 있다. 사타는 현실에서 찍은 사진들을 전자가위로 오리고 붙여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커다란 닭 등에 매달린 벌거벗은 남성 ‘Fowl strory’(2006), 나무를 똑 바로 걸어 올라가거나 수면 위를 비스듬히 걸어가는 남성 ‘Sata Air waTer Air-Sata’(2008), 그리고 새와 함께 날아가는 남성 ‘SaTARK#15’(2010) 등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현실의 장면이지만 이미지는 현실을 지칭하지도 가상을 지칭하지도 않는다. 마그리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실 너머에 있는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작용하는 환영적 인식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가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이미지는 상상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의식의 어느 지점을 건드려 감성을 자극한다. 환영은 상징과 환상을 통해 가상과 실재를 연결한다. 다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예술에서 가상적 실재와 현실적 실재의 구분이 가능하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3. 잠재성을 지향하는 예술

얼마 전 아날로그의 감성을 지향하는 한 중견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메일을 보내면서 ‘밤이 너무 늦어서 혹, 지금 보내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바로 21세기 현시점에서 말이다. 가상의 세계는 현실의 공간에 실재한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디지털 혁명의 흐름에 우리의 예술적 감각과 인식마저 디지털에 내맡긴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인간적인 감동을 받을 것인가? 이메일을 보내면서 상대방의 시간을 고려하는 것은 이제 낯선 일이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이 가져온 잠재성(potential)은 분명 예술의 가능성을 극대화 시킨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새로운 실재’가 우위를 차지하는 시뮬라시옹의 세계는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되는 이미지 그 자체를 만들어낸다. 이미지는 비물질적 이미지로 표현되며 현실과 가상 모두를 드러낸다. 디지털 이미지의 잠재성은 재현의 영역에서 벗어나 잠재적 시간성을 가진다. 잠재적 시간이란 ‘거기 있었음’의 과거형도 아닌, ‘지금 여기 있음’의 현재성도 아닌 ‘거기 있을 수 있음’이라는 무시간성을 의미한다. 이제 실재성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 존재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예술은 가상을 만들어내며 또한 그 자체가 가상인 것이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예술이 ‘(상상적) 상상’이면서 동시에 ‘(가상없는) 진리’가 되려는 요구를 내세우기에 ‘(가상없는) 진리의 가상’으로 진실하다고 보았다. 즉, 예술은 그 속에 ‘(가상없는) 진리’가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가상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가상적이면서 가상없는 것의 추구라는 이율배반성을 내포하며,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가상성을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예술의 모방적 기능을 통해 현실을 현실과 다른 타자의 형상으로 변형시켜, 그 현실에 대항하는 ‘자율성’으로의 가상성을 강조한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상과 실제개념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삼는다는 점은 숙고해야 할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실재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를 꿈꾸고 현실에서 가상을 경험하는 현재, 현실과 가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경험의 차원에서 체험되어야 한다. 이미지를 경험하는 인간의 감각과 신체지식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미지는 이제 인간의 신체감각의 모든 것을 확장하고 있다. 미디어가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고 말한 맥루한의 예견은 이제 구석기 시대의 것이 되었고, 상상 그 자체가 예술을 만들어내고 가상의 세계가 예술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의 이종교배가 아닌 자웅동체의 시대 속에서 예술의 이미지는 ‘마치-처럼’을 넘어 ‘이미-그것’ 혹은 ‘잠재적 그것’이 되었다.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는 ‘잠재적 이미지의 예술적 의미’로 변환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예술을 인식하기에 앞서 직접 우리들의 신체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 가상의 세계로 몰입하는 것은 바로 현실세계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자 신체가 기억하는 행위를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잠재성을 지향하는 예술을, 실재하는 예술적 이미지를 경험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글쓴이 백곤은 홍익대학교 미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대안공간네트워크 사무국장, 토탈미술관 에듀케이터, 가능 공간 스페이스 캔에서 전시를 기획했으며, 현재 모란미술관 학예연구사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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