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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못된척하는 착한 돌

2011-03-03


이런 물건들이 다 어디서 났나 싶을 정도의 ‘싸고, 좋고, 신기한’ 물건들이 바닥에 늘어져있고 북적이는 손님들과 ‘바겐세일’이라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시장통 같다. 판매되는 물건들은 옛날 시골 장에서 볼만한 물건들인데 그 물건들이 자리한 장소는 명동 한 복판에 위치한 한 화장품매장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교묘하게도 잘 어우러진 이 풍경은 조직 'doll'이 ‘의도한 바’이다. ‘돌’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화장품 매장 ‘too cool for school'의 2층과 3층 공간에 판을 벌였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지난달 17일, 명동 한 복판 'too cool for school' 매장은 무척이나 떠들썩했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사람 많은 명동길 그 중간에 자리한 ‘투쿨포스쿨’ 매장에는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했다. 계단으로 연결된 2층은 사람들과 수많은 물건들로 더 복잡했다. 오래된 안경, 타자기부터 빗자루, 슬리퍼, 바퀴벌레 모형까지. 외국 벼룩시장에서나 볼만한 그 물건들이 화장품 매장에서 원래 팔리던 물건들인지, 화장품 매장이 마련한 ‘바자’인지 정확히 구분은 가지 않았지만 수많은 물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화장품들 사이에서 ‘doll’과 ‘the book society’라는 두 그룹이 만들어낸 이 광경은 ‘프라나우 문방구’다.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도 팔고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는 프로젝트. ‘프라나우’라는 말은 발터 벤야민이 수집가와 서재에 대해 쓴 글에서 발견한 말이다. “무책임한 수집을 하다 보니 포화상태가 됐어요. 수집한 물건들이 작업실에 쌓일 만큼 많았는데 시장의 다양성을 위해 필연적인 선택을 하고 새 물건도 구입한 거예요. 직접 외국에서 사온 물건들도 있었고 e-bay에서 구입한 것들도 있었고요.”


그들의 이름은 ‘doll’이다.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몇몇의 친구들이 공부를 해보자고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돌’의 시초다. “홍대 앞에 철도가 들어서면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내쫓았는데 그중 나가지 않고 투쟁을 하시는 분이 계세요. 그분 계신 곳이 두리반인데 홍대 앞 인디밴드라 불렸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공연을 했죠. 가서보니까 건물 중에서 3층을 안 쓰시더라고요. 그곳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그곳에서 ‘미완성포럼’이라는 그룹의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일주에 한 번씩 모여서 각자가 써온 시를 발표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들을 가졌어요. 수양을 하듯 3년간 공부할 계획을 잡았는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락페스티벌에 함께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난 해 5월에 열린 락페스티벌을 위한 공간과 비주얼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생각보다 잘했고 다른 곳으로부터 연락도 받게 됐죠.”


현재 돌의 대장인 유병서 씨에게 투쿨포스쿨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가 미완성포럼의 친구들과의 활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들은 ‘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됐다. “운이 좋아서 돈을 받으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됐죠. 저희가 회사에 큰 이익을 주는 것도 없었고, 저희에게 특별한 요구사항도 없었어요. 그냥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해서 열심히 쓸데없는 짓을 했죠.”


그들이 미완성포럼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기업의 후원을 받게 된 것이 순전 운 때문은 아니었다. 미완성포럼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있어왔던 그들의 활동은 끊임없는, 매일의 숙제였다. 그림을 그리던, 설치를 하던, 어떤 일을 하던 무엇이든 열심히 했던 그들은 사고도 쳤다. “한번은 밤에 몰래 육교를 빨갛게 칠해놓은 적이 있어요. 워낙 센 작업들을 해온 탓에 저희들의 소행이라는 것이 쉽게 발각됐죠. 하루 밤사이 주민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원상태로 돌려놓느라 고생을 좀 했어요.” 이밖에도 그들은 몸을 많이 쓰는, 힘이 많이 드는 작업들을 수없이 해왔다. 그림을 그리고 프린트를 해서 새벽 6시, 시청 앞에서 나눠주기도 하고 눈을 그려 풍선에 프린트하고 길게 연결해 여러 곳에서 띄우기도 했다. “당시 저희들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일반인으로 위장을 해서 자연스럽게 행위를 하면서 뭔가 이상한 광경을 만들어보자고 계획했죠. 저희는 기획하고 설치하고 인쇄하는 모든 것을 다 직접 해요. 그림을 그리고 인쇄도 실크스크린으로 직접 하고요. 기획을 하고 아웃풋이 나오는데 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번 바자프로젝트는 장기프로젝트였지만 길어야 1주일정도이고, 생각나면 바로 하는 편이죠.”
가장 좋았던 프로젝트로도 몸이 가장 힘들었던 프로젝트를 꼽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4층 건물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게 했던 두리반의 락페스티벌 프로젝트는 공간을 거의 다시 만드는 수준의 일이었고 너무 힘들었던 만큼 가장 잘한 일이라고. “노동이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 주려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개인생활이 힘든 부분도 있다고 고백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힘들면 안하면 그만인 이 일을 고생을 해가며 하는 이유에 대해 각 멤버들은 “부와 명성을 위해”, “일상”, “정신적 만족”,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들의 문방구 수익은 꽤 괜찮았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예상의 1/4밖에 판매가 완됐지만, 잘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매장의 수입에 '0'이 하나 더 붙었어요. ‘잘난 척 하면서 돈도 안 된다’는 말 때문에 괴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조금은 만회한 셈이죠.” 투쿨포스쿨의 후원을 받는 돌은 이 일 때문이 아니고도 자주 매장을 들른다. “보이던 말던 매장에 가서 설치를 하나씩 해요. 이번 콘셉트도 그랬어요, ‘이빨에 낀 고춧가루’. 자연스럽고 표 잘 안 나는 거 있잖아요, 매장에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바자’가 열리는 줄 모르고, 바자에 온 사람들은 그곳이 매장인지를 모르고.” 매장과 바자를 착각했던 기자의 생각이 바로 그들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상업주의에 골탕을 먹이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실제적으로 결과를 보고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자 친구보다 더 솔직한 관계’, ‘진실게임’ 같다는 점에 감동을 받았죠. ‘척’하면 상대는 다 압니다. 진실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진지하게 접근할 건 아니고요, 더 가볍게 접근할 생각이에요.” 유병서 씨의 장난스러운 말 안에는 진실이 담겨있다. ‘척’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진실되어야 하는 관계. 그것은 기업과 고객, 아티스트와 관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와 국민, 사회와 개인, 인간과 인간이 그 사이에서 지켜야할 도리이자 진리인 그 이야기를 전하는 그들의 방식이 솔직하고 신선하다. 그들이 말하는 ‘더 가볍게’는 더 진중한 생각과 더 솔직한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들의 집단을 ‘군대’라 부르는 이들의 가장 큰 매력이 그것이다, 진중함과 솔직함. '어떤 그룹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한 그들의 답은 “예의바른 ‘척’하는 깡패조직”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못된 ‘척’, 나쁜 ‘척’, 불량한 ‘척’하는 그들은 '착한' 조직이다.


이들은 4월에 다시 한 번 명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고 5월에는 지난해와 같이 락페스티벌에 참여할 예정이다. 보안여관에서도 작업이 잡혀있다.
“이제야 안티가 생겼어요. 일 년이 지났는데 이제요. 한명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만 앞으로 지켜봐야죠. 우리의 정체를 우리도 잘 모르지만 저흰 너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www.dollg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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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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